나는 지방 사립대학의 학과 조교로 일하고 있다. 졸업후 2년이 지난 올해 초,25세의 한참 젊은 나이에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99년, IMF 체제에 들어선 우리 나라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냉엄한 현실 뿐이었다.

지방대생으로서, 여자로서 그 때 내가 마땅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손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방문 교사였다. 그러나, 아무 준비없이 사회에 내던져진 내게 그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막연히 이상만 꿈꾸며 현실감각이 부족했던 나는 이 세상 속에서 무참히 깨어져야 했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내가 얼마나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신앙을 교만하게 자랑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대학 4년동안 선교단체를 통해 훈련받으며 나름대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으리라 자부했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지만, 오늘의 시대를 사는 수많은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비슷하다.

"대학 시절에는 그런대로 사람들도 양육하면서 열매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 하면서는 신앙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요."

"일주일 중에서 주일만 기다리고 있어요. 직장에 나간다는 게 지긋지긋해요."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적용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급변하는 현실 상황 속에 살아남으려는 청년들, 그 중에서도 청년 그리스도인의 고민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이 세상에 섞이지 않으면서 빛과 소금의 영향을 미쳐야 하는 과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이들의 신앙을 도와야 할 교회나 선교기관에서는 현실 상황을 도외시한 신앙교육이 그저 습관처럼 행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보수적 복음주의라고 자처하는 교회나 선교기관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네가 지금 졸업반이지만 진로는 다 주님께 맡기고 한 영혼이라도 건져야지."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책임져주시니 여러분은 교회에 더욱 충성하십시오."


나는 믿음을 가지지 말고 현실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그에 대한 적용이 없는 신앙생활에 대한 가르침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당혹케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주님은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으로 친히 오셨다. 그 분은 단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우리의 구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이 낮은 곳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어 온갖 고난과 멸시 가운데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우리의 청년들에게 무어라 말씀하실 것인가. 마땅히 이 땅 가운데 사람들 속에 친히 들어가 우리의 빛과 소금됨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그래서 2000년전 제자들을 이끌고 이 땅 이 곳 저곳을 다니며 훈련시키셨듯, 오늘날 여러 삶의 현장과 일터를 이 곳 저 곳 보여주시며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오늘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많은 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마땅히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말이다. 청년들을 단지 교회나 선교기관 안에 붙잡아두려 하지 말고, 그들을 독려하고 격려하여 세상 밖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당당히 현실을 직면하며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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