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교회문 두드리는 아기 예수
  • 채희동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00.10.08 18:18
눈은 내리지 않았다
강가에는 또다시 죽은 아기가 버려졌다
차마 떨어지지 못하여 밤하늘에 별들은 떠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았다
육교 위에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자가 앉아 있었고
두 손을 내민 소년이 지하도에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소년원에 간 소년들은 돌아오지 않고
미혼모 보호소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 나온 처녀들은 골목마다 담배를 피우며
산부인과 김 과장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돈을 헤아리며 구세군 한 사람이 호텔 앞을 지나가고
적십자사 헌혈차 속으로 한 청년이 끌려갔다
짜장면을 먹고 눈을 맞으며 걷고 싶어도
그때까지 눈은 내리지 않았다
전철을 탄 눈먼 사내는 구로역을 지나며
아들의 손을 잡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사랑에 굶주린 자들은 굶어 죽어갔으나
아무도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용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업은 한 사내가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었고
등불을 들고 새벽송을 돌던 교인들이
그 사내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멀리 개 짖는 소리 들리고
해외 입양 가는 아기들이 울면서 김포공항을 떠나갔다

                        - 정호승 -



눈은 내리지 않았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 아기 예수 오신 날, 사람들은 눈을 기다리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이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뒹구는 거리에 사람들도 아직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기 예수는 정말 오셨을까. 높다란 종탑 위로‘축 성탄’깜빡이는 요란스러운데,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다.
  
시인의 눈에는 왜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아기 예수는 보이지 않고‘강가에 버려진 아기’,‘육교 위에서 젖을 먹이는 여자’의 모습만이 보일까?
  
아기 예수는 어디에? 혹시 강가에 버려진 아기는 아닐까. 육교 위에 쪼그려 앉아 마리아의 품에서 차가운 젖을 빠는 아기는 아닐까. 두 손 내민 소년은 아닐까. 소년원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소년들은 아닐까.
  
우리는 아기 예수를 강가에 버려 두고 담배를 피우며 히히덕 거리고 있다.“너, 크리스마스 이브 날, 뭐 할꺼니?” 우리는 또 아기 예수 오신 날, 육교 위에서 젖 먹여야 할 아기를 가졌다. 우리의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할 소년원으로 보내고 우리는 또 크리스마스 이브를 꿈꾼다.


교회에는 말구유가 없다
  
‘짜장면을 먹고 눈을 맞으며 걷고 싶어도 그때까지 눈은 내리지 않았다.’끝내 눈은 내리지 않을 모양이다. 모두들 눈이 내리기를 원하지만 눈처럼 살지 않는다. 모두들 아기 예수 오신 날을 즐기지만, 예수처럼 살지는 않는다. 시인은 노래한다.

  사랑에 굶주린 자들은 굶어 죽어갔으나
  아무도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교회 밖에서는 사랑에 굶주려 죽어 가는 이들이 많으나 교회는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사랑의 나라가 교회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교회는 눈먼 사내와 그 아들이 잡은 손의 온기도 못 느낀다. 구로 전철역에서 들리는 성탄절의 하모니카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화려한 성가에 의해 가리워 진다. 교회는 지금까지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따스한 온기와 사랑의 나라를 교리와 교권의 이름으로 지우기에 바빴다. 아기 예수는 어디에.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는 시장처럼 대목이다. 추수감사절과 더불어 성탄절은 교회의 한해 농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교회는 알곡을 거둬들이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곳간 문을 여는 데는 인색하다.

아기 예수 오신 그 날부터 지금까지 교회에는 말구유가 없다. 다만 교회 건물만 있을 뿐이다. 교회는 언제나 채워져 있을 뿐 비우는 일을 못하기에 말구유가 아니다. 교회 안에 속한 이들의 기도는 언제나 채우는 기도였을 뿐, 비우는 기도는 오히려 저주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자연스레 교회는 채우는 곳이다. 저금통에 이자돈이 차곡차곡 쌓여가듯 신도들의 축복도 쌓여간다. 교회와 신도들에게는 아기 예수를 모실 말구유가 없다.


교회문 두드리는 아기 예수

육교 위에서 마리아의 품에 안겨 차가운 젖을 빨던 아기 예수는 교회의 화려한 성가에 질식되어 죽어갔다. 교회 안에는 아기 예수는 없는데, 저들은 왜 나를 위한 성가를 부르는 것일까, 어쩌면 아기 예수를 위한 성가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성가일 꺼야. 차디찬 육교 바닥에 눕혀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예수는 제발 제발 위선에 가득 찬 성탄의 노래와 불빛들을 가려달라고 손을 내 젖는다. 내가 누울 곳이 없다. 나는 말구유에 눕혀야 하는데, 교회에는 말구유가 없다.

육교 위를 지나던 한 사내가 쓰러져 있는 아이를 등에 업고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린다.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업은 한 사내가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었고
  등불을 들고 새벽송을 돌던 교인들이
  그 사내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신도들은 못 보았다, 성탄절 날에 오신 아기 예수를. 교회는 못 보았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오신 아기 예수를. 사내는 죽어 가는 아기 예수를 등에 업고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린다. 열리지 않는 교회 문을 두드린다. 거리에 쓰러진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이들, 소년원의 아이들, 전철 안의 하모니카를 부는 아이들, 이런 이들에게 교회 문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
  
그저 새벽송을 돌던 교인들처럼 힐끔 세상 밖을 볼 뿐, 교회는 교회 안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아기 예수는 떠나갔다

  멀리 개 짖는 소리 들리고
  해외 입양 가는 아기들이 울면서 김포공항을 떠나갔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끝내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눈은 내리지 않았다. 멀리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눈은 내리지 않았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아기들은 이 땅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땅으로 떠나갔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아기 예수는
  이 땅을
  떠나갔다.

  아기 예수는
  끝내
  교회를
  떠나갔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채희동의 다른기사 보기

추천기사

line [별의별평 2019년 11월호] "주체적으로 신학하는, 끊임없이 반성하는 한 인간" [별의별평 2019년 11월호]
line 톨게이트 노동자들, '직접 고용' 요구하며 오체투지 "마음속으로 '주여', '주여' 외치며 기도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 '직접 고용' 요구하며 오체투지
line 신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자크 엘륄, 21세기 '기후변화' 보며 뭐라 말할까 신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자크 엘륄, 21세기 '기후변화' 보며 뭐라 말할까
기사 댓글 2
  • 소망 2001-12-21 11:18:18

    맞이 할 수 있는 그날을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눈이 더욱 주님을 바라고
    우리의 가슴이 주님의 가슴이 되어
    병들고, 소외된 영혼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을수
    있는 진정한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눈빛이 온통 크리스쳔으로 솔릴 수 있도록 세상의 눈이 온통 교회로 솔릴 수 있도록 우리 먼저 믿는 많은 크리스쳔들이 참으로 세상의 빛으로서, 세상의 소금으로써, 세상의 향기로써. 세상의 한 자루 촛불로써 살아가는 그날을 소망합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이것을 위해 작은 실천이 일어나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런 詩가 아니라 정말 따뜻한 싯귀가 우리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시간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아닙니다.
    이미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 뿐입니다.
    세상에는 이미 소망이 있습니다. 나에게 단지 그런 소망이 없었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사람도 많고 그런 일도 많습니다. 우리의 눈이 따뜻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먼저 내가 마음 따뜻한 사람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삭제

    • 2001-12-20 15:15:12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