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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현상에 드러난 미국 기독교의 민낯
백인 복음주의자 81% 트럼프 지지…기독교 신앙은 무엇인가
  • 김영봉 (bong-320@hanmail.net)
  • 승인 2016.11.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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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버지니아에는 지난밤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창밖으로 흩어지는 빗줄기와 힘없이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을 보고 있다. 그 쓸쓸한 모습이 지난밤 선거 결과를 마주한 내 마음과 닮았다. 내 마음 안에도 겨울비가 내리고 있고 차가운 바람에 낙엽이 흩어지고 있다. 우울하고 스산하다.

처음엔 조크라고 생각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중도에 탈락할 것이라 예상했다. 한두 번 그런 위기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막말과 욕설과 모함, 농담과 선동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군중은 거짓말처럼 그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공화당 후보 공천을 얻어 냈다.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선거 직전에 거의 모든 미디어는 80% 이상 힐러리의 당선을 점쳤다. 선거운동이 전개되면서 트럼프의 마각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공인으로서의 어떤 품위도 거부했다. 말과 행동에서 비열함과 야만성이 연일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여론은 출렁였고, 힐러리의 낙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때마다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다른 후보였다면 이미 오래 전에 퇴장했을 일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그는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트럼프가 그동안 대중에게 보여 준 모습 때문이었을까. 웬만한 추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선거기간 중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아 비꼬고 조롱하는 것을 주된 공격 무기로 삼았다. 그에게 계속 조롱당하던 예비 후보 마르코 루비오가 한번은 트럼프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응수한 적이 있다. 그 공격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은 트럼프가 아니라 루비오였다. 보통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공격술인데, 트럼프가 사용하면 군중이 열광했다. 그것이 트럼프였다. 모든 이들을 깔보는 듯한 오만한 표정과 눈길, 선동가적인 언어 구사, 방자한 몸짓 그리고 추한 과거 행적이 그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떤 면으로 보면, 트럼프를 대통령이 되게 한 가장 큰 공헌자는 힐러리 클린턴이라 할 수 있다. 선거기간 내내 나는 자주 그런 아쉬움을 느꼈다.

"힐러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선거는 일찍 결판났을 것이고 '대통령 트럼프'라는 황당한 현실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힐러리의 지나친 권력욕이 다른 사람의 출마를 막고 버니 샌더스를 부정하게 따돌렸다. 힐러리는 워싱턴 정치인들 중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 중 다수가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선택할 수 없어서 선택했다. 반면, 트럼프를 선택한 사람들은 다수가 그에게 열광했다.

트럼프는 거의 혼자 선거운동을 했다. 성적 추문 테이프가 공개된 후 공화당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들 중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화당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동분서주하면서 선거운동을 치렀다.

반면, 힐러리는 오바마 대통령 부부, 바이든 부통령, 고어 전 부통령 등의 도움을 받았고, 비욘세, 스프링스틴, 본 조비 같은 유명 연예인의 지원도 받았다. 또 주류 미디어의 90% 이상이 대놓고 트럼프 낙선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힐러리의 패배는 그만큼 더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트럼프는 의기양양할 수밖에 없다. 자격 없는 후보라고 그에게 등을 돌렸던 공화당 위원들이 적잖이 당혹스러운 지경에 처했다.

거듭난, 백인, 복음주의자

개표 결과에 있어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 당선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전국적인 통계로 본다면, 가톨릭과 개신교인들은 힐러리보다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유대교와 기타 다른 종교인들은 반대로 나타났다. 개신교인으로서 이 사실도 부끄럽다. 그런데 더 한심한 통계가 있다. 개신교인들 중 소위 '거듭났다고 하는' 백인 복음주의 신자들만 따로 뽑아 보면, 8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현상의 절대적인 공헌자가 된 것이다.

트럼프의 언행이나 삶의 이력 혹은 그의 정책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 그의 성적인 부정행위도 그렇고, 소수 인종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미국만의 이익을 위하겠다는 정책도 그렇다. 사실 그의 정책들 중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정책이라기보다는 구호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가 선동가요, 포퓰리스트라는 사실이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내가 아는 기독교적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그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한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이슈 때문이다. 트럼프가 비록 여러 가지 오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에서 이루어진 동성 결혼 합법화를 뒤집어엎고 임신 중절을 금지하려면 그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방 대법원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4:4로 균형을 잡고 있다. 얼마 전 타계한 스칼리아 대법관 후임을 차기 대통령이 추천하게 되며, 차기 대통령 임기 중 고령의 대법관 몇 사람이 타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연방대법원을 보수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트럼프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인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최근 일어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화라고 반겼다.

트럼프의 자유분방한 성적 편력을 감안해 보면, 그가 동성애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는 유세 중에 한 번도 동성애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그는 어떤 도덕률을 가지고 살아 온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의 말과 행동에서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트럼프는 마지막 후보 토론회에서 자신이 마치 생명에 지극한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인생 여정과 언행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 발언이었다. 그는 생명을 중시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렇게 발언했을 뿐이다.

선거 진행 중에 나의 심기를 계속 불편하게 만든 것이 있었다. CNN에 패널로 나와 트럼프를 변호했던 켈리 맥켄니가 항상 십자가 목걸이를 보란 듯이 걸고 나왔다. 그는 트럼프 추문이 터질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변호했다. 하버드 법대 출신의 고급 능력을 그렇게 허비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와 함께 토론하던 패널들은 자주 고개를 흔들며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왔다. 그 모습은 마치 "기독교인은 이렇게 생각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지금도 켈리 맥켄니의 믿음의 정체를 알고 싶다. 그것이 진실 된 고백의 몸짓이었다면 그의 믿음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는 전략적으로 기독교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트럼프 진영이 지난 1년 동안 사용해 온 전략이다.

트럼프는 최근 등장한 대통령 중 가장 비기독교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사람이다. 그는 선거 유세 중 성경을 들어 보이면서 자신은 장로교인이며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어느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대답했다. 트럼프다운 구절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 율법은 복수하라는 허가증이 아니라 복수를 제한하는 율법이었으며, 예수께서 무제한적인 사랑의 가르침으로 대치한 율법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망가진 자본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해 왔고, 거대한 부를 누리면서도 세금을 회피해 왔다.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도 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데, 기독교인은 그런 사람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그 무엇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거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무엇에든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어 한다. 호텔·대학·카지노·스테이크 그리고 심지어 포도주 병에도 자기 이름을 새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그의 자아다. 그렇게 거대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는 "오직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다녔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는 증거다.

이토록 언행과 삶의 이력이 기독교적 가치와 정반대되는 사람을 아낌없이 밀어준 것이 소위 '거듭났다'고 고백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진다. 이는 미국 기독교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백인 복음주의가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독교적인 가치 전체를 보지 않고 한두 가지 지엽적인 문제에 붙들려 이 지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식 복음주의 기독교를 그대로 번역하여 수입해 온 한국교회가 최순실 사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힐러리의 신앙은 무엇이었나

앞에서 말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감리교인으로 자랐다. 그는 아버지가 매일 침대 곁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그 영향으로 기독교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았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그를 지도했던 돈 존스 목사는 2009년 작고하기 전까지 그의 멘토였다. 남편이 르윈스키 스캔들에 연루되었을 때 힐러리는 존스 목사와 여러 번 상담했고 그 힘으로 어두운 골짜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새벽 5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영적 멘토 중 한 사람이 매일 새벽 5시에 이메일로 그에게 묵상을 보내 준다고 한다. 그를 가까이에서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실제로 매일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증언해 준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두세 가지 가치에 사로잡혀 민주당 정책을 반대해 왔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민주당의 가치가 기독교적 가치에 더 가까운데도, 그들은 몇 가지의 이슈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힐러리는 그의 정책에 동조하는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주류 기독교인들과 가톨릭 교인들에게까지 거부당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비호감'이다. 사람들에게 비친 그의 인상은 '믿을 수 없음', '부정직함', '교활함', '표독함', '냉혹함', '집요함'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지지율을 48%에 묶어 둔 가장 큰 요인 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힐러리 추문은 일반인이 평소 가지고 있던 그의 인상을 재확인해 주었다. 민주당 고위직 위원들과 협잡하여 버니 샌더스를 부정하게 따돌린 것도 그렇고, 공적 이메일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도 그렇다.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후보 토론회의 질문을 사전에 제공받은 것도 그렇다. 이 모든 사건은 힐러리가 얼마나 부정직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줬다.

나는 힐러리가 어떤 믿음을 지녔는지 알고 싶다. 기독교 신앙은 과연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많은 기도와 예배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그 기도는 대체 무슨 기도일까? 힐러리는 기도로 무엇을 구했을까? 어떤 믿음이기에 수많은 신앙 행위에도 그는 가장 믿을 수 없는 정치인이 되었을까? 기독교 신앙은 싸워 이길 힘을 구하는 도구에 불과했을까? 정의·진실·겸손·용서·자비·평화·희생 그리고 사랑 같은 덕목들은 신앙에서 어떤 의미였을까?

복음주의 기독교, 나라 망하게 할 수도

나는 하나님의 궁극적 통치를 믿는다. 인간은 악을 선택해도 하나님은 그 악을 이용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걸 믿는다. 트럼프가 모두의 우려를 부끄럽게 할 만큼 정치를 잘해 주기를 기대하고 기도하지만, 설사 그가 악수를 택하여 나라를 고통스럽게 한다 해도 하나님은 그것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으실 것을 믿는다. 그러기에 최악의 결과가 나왔지만 잠잠히 머물러 그 결과를 받아들이려 한다. 트럼프에게서 최선의 것이 나오기를 기도한다. 백인들이 갈망했던 변화가 희망을 위한 변화가 되기를 기도하며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왜곡상의 민낯을 숨김없이 드러낸 미국의 기독교를 위해 기도한다. 레이건 시대부터 보수화해 권력자 편에 서 왔던 복음주의 기독교가 트럼프 시대에는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 기독교는 언제나 정권과 거리를 두고 비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를 탄생시킨 모태 역할을 한 복음주의 기독교는 기득권에 안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복음주의 기독교는 더 심하게 왜곡되고 타락할 것이며, 나라를 깨우고 구하는 힘이 아니라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올무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망할 때도 그랬고, 유다가 멸망할 때도 그랬다. 호세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울린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호 4:14)

김영봉 /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사귐의 기도>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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