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아무것도 아니지만(A small, good thing, 2016)' 일부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기자 주
영화 '아무것도 아니지만' 스틸 컷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어느 날, 선생님에게 지난해 졸업한 민건이의 엄마가 방문한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신경질적이었다. 지체 장애가 있는 철수가 유독 힘들게 했다. 자기 머리를 아무 곳에나 들이받는 습관이 있는 철수는 그날도 선생님 머리를 수차례 박았다. 하지 말라고 다그치니 이번엔 책상에 꼬라박는다. 화가 난 선생님은 자리를 박차고 교무실을 나왔다. 그때, 문 앞에 서 있는 민건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선생님은 갑자기 찾아온 민건 엄마가 부담스럽다. 민건이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지만, 시골까지 찾아온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전할 말이 있다면 전화로 해도 될 텐데.

민건 엄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생님, 민건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이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시간이 저는 그렇게 좋았어요."

아침에 자녀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엄마들은 평온한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만큼은 자녀에게서 해방이다. 민건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다방 커피를 한잔 타 마시는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행복했다.

민건이는 지난해 학교를 졸업했다. 이제는 아침에 편안하게 커피 한잔 마실 수 없게 된 민건 엄마. 몇 년 동안 자신을 대신해 민건이를 돌봤을 선생님이 떠올랐다. '쉽지 않았을 텐데.' 고마움을 표해야겠다는 마음에 시외버스를 타고 선생님이 있는 시골 학교를 찾아왔다.

민건 엄마는 선물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부담스러운 마음에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그게 아니라, 선생님." 민건 엄마가 고개를 돌린 채 머뭇거린다. 선물이 무엇일까.

관객들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를 때. 민건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선생님 눈시울이 붉어진다. 관객들 눈시울도 빨갛게 물든다.

아무것도 아닌 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별거 아닌 '노래'가 심금을 울리고, 사소한 한마디에 일의 보람을 발견한다. 황지은 감독은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했을 '순간'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든 순간이 그럴 것이다. 일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순간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찾아온다. 타인이 느끼는 순간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사회는 더 따뜻해진다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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