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언 9:10)이라고 한다. 여기서 경외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우리는 경외를 하나 하나님은 겸손을 보신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경외는 하나님 앞에서 갖는 겸손이라는 말이다. 사실 겸손의 자세와 태도도 쉬운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교만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도 스스로는 겸손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만의 또 다른 이름은 자기애(나르시시즘)이다. 현대인의 병 중 심각한 것이 바로 자기애적 성격장애이다. 거대한 자기를 추구하고 이상화된 자기상을 추구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어려서부터 나와 관계된 모든 것에 등수와 순위를 매기고, 보이는 이미지에 취중하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을 보여 주는 자화상이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허트 박사는 사이코패스도 극단적인 나르시스트라고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힘과 돈과 그 무엇)을 가지려는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수많은 권력기관, 종교 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들, 손에 칼만 들지 않았지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람도 엄밀히 말하면 사이코패스다.

자기애에 물들면 여호와를 경외할 수도, 겸손을 가질 수도 없다. 마음에 교만을 가지고 여호와를 경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겸손과 교만 사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먼 듯한 가까움이 있다.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서로를 피해 가장 멀리 도망한다고 했지만 가장 멀다고 느낀 그곳이 가장 가까운 것과 같은 이치다. 교만을 피해 도망하지만 결국 만나는 것은 겸손을 가장한 또 다른 교만이다.

우리는 그래서 교만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직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을 결코 겸손하다고 생각지 말라. 당신은 겸손하지 않다. 지진과 전쟁이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아니라 교만이라는 정신적인 병이 우리를 둘러쳐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 겸손과 교만이란 세상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표현하고 싶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우리는 여호와 앞에 겸손으로 무릎 꿇고 말씀으로 자신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움켜쥔 손을 펴 가진 것을 내려놓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겸손은 나보다 겸손한 자들을 만날 때에만 발견되는 하나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프레이포유 거리의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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