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분석가나 정치 평론가도 아닌 한 시민단체 활동가 눈에 비친 현재의 정국을 보면 시한폭탄의 뇌관 가까이에 타들어 가고 있는 심지의 형국을 보는 것 같다. 전례 없이 갑자기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처럼 온갖 악취 나는 아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거기에 몇 가지 바람들이 엮어지고 상승작용을 일으켜 강력한 돌개바람이 불면서 점점 더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어서 궁지에서 더 복잡한 궁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염려와 비통함이 무겁게 다가온다.

바다에서는 세월호 비극으로 인한 풍랑이 아직 거세고, 하늘은 사드 문제로 어둠이 깔리고, 땅은 지진과 핵발전소 안전 문제로 요동을 치고 있다. 공간을 좀 더 확대해 밖을 보면 북한과 미국은 최후 담판을 향해 서로 비장의 무기를 들고 돌진하고 있고, 안으로는 백남기 농민 죽음에 결집하는 시민 세력과 공권력 간의 전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권력형 비선 비리에 대한 언론 폭로와 청와대 간에 뜨거워지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겹겹이 서로를 흡수하여 폭풍우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복합 전선 뒤에는 조선 및 해운의 몰락에 이바지한 정치·금융 엘리트들의 담합, 판검사 비리, 고통스런 위안부 문제 관련 미숙한 정리, 4대강 운하의 부메랑이 되어 오는 녹조 라떼와 생태 학살의 비극, 성장을 멈추어서 이제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창조 경제' 아닌 '혼란 경제'의 상황과 역설 관계에 있는 가계 부채 폭탄 등등의 것들이 뒤의 사고가 앞의 사고를 덮는 방식으로 중첩되어 있어서 이러한 폭풍우에 에너지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 관료들은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전 정권에서 이월되거나 국제적인 부정적 요소 영향에 대해 부담을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실제 문제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모든 일을 더욱 크게 심화 확대하고 있다는 게 비판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무자가 10명도 안 되는 단체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소통과 대화가 단체의 안전한 운영과 성장의 에너지가 되거늘, 국가 살림의 복잡성과 모호성에 있어서야 어떻게 대통령 한 사람이 다 알아서 지시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맡길 수 있겠는가?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경험하고 프레임으로 각인된 피살당한 육영수, 박정희 부모에 대한 이념적 기억과 아버지 군부 측근인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망각과 홀대의 냉혹한 정치 현실의 경험, 그리고 '우리 vs. 그들'의 분단된 한국의 배타적 논리, 그리고 여기에 야합하는 정치·경제계의 탐욕의 먹이사슬 구조가 복합적으로 만드는 박근혜 개인에 대한 리더십의 기대와 필요가 실재(reality)를 대면하는 굴절된 견고한 프레임을 작동시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어나는 사건 모두에 대해 자신은 모든 시간을 다 바쳐 공적인 것에 헌신하는 데 남들이 몰라준다는 논리로 나홀로라도 자신의 길은 간다는 경직화된 신념의 투사(?)로, 그리고 권력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득권층 엘리트들의 필요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나비효과처럼 개인의 사적인 신념이 국가 신념이 되어야 하는 비극으로 가속도를 밟고 있다.

비극이라 함은 그러한 신념의 인물이 한 지역이나 한 부류의 정당인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최고 수장이 되어 전체에게 '예'와 '아니오' 판단을 내리는 영향을 미치고, 상대방에 의해 자신은 수정받지 않는다는 것, 가속도가 붙은 운전에서 치인 사람들의 부상에 대해 국가를 위한 헌신이라는 목표 아래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장·차관 워크숍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소개한 자신의 애창곡 윤상의 '달리기'와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 가사에서 보듯이, '입이 바싹 마르고 눈물 나게 억울해도, 어리석은 세상이 몰라주어도 겁내지 말고 날아오르는' 마이 웨이 프레임을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재건의 순교자'란 과거 이념 프레임이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서는 '우리 vs. 그들'의 입장에서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 정세를 살펴보면 박 대통령이 생각한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사드 국면'의 '위기 상황'보다 그녀의 통치 스타일이 가장 최고의 '위기 상황'이고, 그녀의 권력을 필요로 하는 주변 인물들이 자신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향후 정국은 더욱 위태한 경로를 향해 나가고 있음이 보여진다. 뇌관의 심지 불꽃이 거의 다 타고 있는 형국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향후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와 11월 말에 발표될 국정교과서의 실체가 공표되면 정국은 휘발성의 뇌관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뇌관이 박 대통령 배후 지원자인 최순실을 건드리는 것을 정권의 최대 위협으로 보고 있는 반면, 실상 일반 시민들을 뒤흔드는 최대 뇌관은 이미 세월호 비극이 단초를 마련하였고, 이제 직면한 고 백남기 선생 죽음에 대한 납득할 만한 처리 문제로 불길이 점화되어 국감에서 교육부장관의 말처럼 '국가 안보'를 이유로 현재 밝힐 수 없다고 한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11월 공개로 인한 대규모 시민 저항의 불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움직여질 때 그 불길은 활화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우에 불과하길 바랄 뿐이지만, 지금의 정국은 점점 그 가능성을 보게 만든다.

촛불 집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러나 이러한 변혁의 시점에서도 이미 2008년 촛불 집회의 양상을 통해 배운 쓰라린 교훈으로 볼 때 이것이 민주주의를 향한 변혁 운동으로 승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가 자초하고 있는 고통의 궁지에 대해 비참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시민운동의 또 다른 궁지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촛불 집회의 결과에 대한 엄중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기존의 시위 주도 단체에 의해 이끌려 가는 형태가 아닌 자발적인 개인과 소그룹들의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시킨 촛불 시위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은 두세 번 사과를 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행한 조치는 문민정부에 있던 남은 인사들을 교육, 정치, 언론 권력의 자리에서 소거하는 작업을 소리 없이 대대적으로 감행해서 강력한 보수 진영을 구축한 것이다.

심지어 내가 속한 평화통일 진영에서 그간 정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살아온 자생적인 수많은 통일 단체들은 통일부 정책에 동의하는 일부 단체와 명망가 중심 단체를 제외하고는 그 이후 3년 안에 1/3 이하로 감소되어 잘 알고 지내던 단체들이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엄청난 사회적 제거 작업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촛불 집회의 결과는 권력자들에게 경종을 불러 일으켜 반대 진영 소속 멤버들에 대한 소리 없는 제거와 그간에 조금이나마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개될(특히 11월 12일을 중심으로 일어날 민중총궐기 대회를 포함하여) 일련의 양심적 시민 세력의 분노의 목소리의 응집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만 않은 또 다른 궁지가 가슴을 누른다.

이것은 내가 염세적이어서가 아니다. 나는 파머가 제기한 민주주의 심장을 치유하는 5가지 마음의 습관이 우리에게 아직 아무런 기반 조성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이기도 하다. 그는 민주주의의 심장인 마음의 5가지 습관과 이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인프라 구축에 의해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민주주의'가 가능함을 역설하였다. 그 5가지는 다음과 같다.

- 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낯선 이들과의 상호 의존의 심층적인 얽힘에 대해, 그리고 그 낯선 이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얼마나 우리는 자각을 하고 있는가?

- 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대 그들'이 아닌 '우리와 그들'로 낯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환대하여 차이 속에 깔려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 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우리 삶에 가득 찬 열망과 행위 및 신념의 간극과 모순이 주는 긴장을 통해 마음이 위축되거나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타인의 삶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어떻게 우리가 긴장을 끌어안을 수 있겠는가?

-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시민 각자가 침묵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진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되, 타인의 진리에 대면하여 자신을 수정하면서 어떻게 여기서 나오는 통찰력과 에너지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 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어린이 한 명이 제대로 양육되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듯이, 우리의 결연한 행동을 사회 변화로 전환하기 위해 어떻게 우리는 비폭력 평화 공동체를 형성하여 시민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다섯 가지 마음이 체질화된 습관으로 형성되지 않으면 '살아 있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사실상 우리가 처한 현실은 사회 변화를 꿈꾸는 개인들에게도 이 5가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는데, 어떤 진정한 변화를 우리가 가져올 수 있겠는가? 불의에 대한 분노 폭발에 따른 말함과 행동은 다시 분출되겠지만 지난 촛불 집회 결과처럼 그것은 곧 스러지고 말게 된다. 민주주의의 마음 형성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마음으로 대안 만들자

박근혜 정부가 갖는 통치 프레임이 오늘의 비극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참함의 궁지가 한편에 있다면, 또 하나의 비극적 궁지는 분노와 저항으로 나서는 개인들이 민주주의의 마음과 민주주의 인프라에 대한 공공선으로 나가는 시민 역량으로 나서지 못하여 사회 변화가 중도에 좌절되는 비참함의 궁지가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본성상 매우 취약한 것이어서 민주주의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고 그 적용에 대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분노를 통한 시위는 요동을 치게 만들어 기존 질서에 충격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다음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가는 더 시급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 건설에 대한 상상력과 새로운 패턴의 마음 습관 그리고 공공성을 책임 질 수 있는 민주시민의 핵심 역량 구축과 인프라 없이는 원하는 새로운 실재를 불러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지금 무엇 하나 가볍지 않은 시한폭탄의 사회적 이슈를 복합 중층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우리가 들어서고 있다. 어떻게 보면 창조적 에너지가 새롭게 출현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우리가 있는 셈이다. 나도 이에 대해 명확한 확신의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습 순환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배움으로 가져갈 수는 있다.

그것은 일어난 현상에 대해 관찰하면서 누가 나쁜가보다 더 깊이 이 다양한 다른 사건들 이면에 어떤 공통된 작동 패턴이 숨어 있는가를 살펴서, 그 작동 패턴 뒤의 고정 신념이 무엇인지까지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사건의 현상-작동 패턴-정당화를 주는 고정 신념을 이해해서 지배 체제의 본성을 파악하고, 나의 진정한 바람과 열정이 무엇인지 확인하여 함께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여 공동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의 표어 '개인적인 것은 공적인 것/정치적인 것(the personal is the public)'이란 말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그리고 공공 영역에서 존중과 공공성을 향한 실습의 영역을 확대하는 게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사방에서 다치고 신음하며 힘들어하며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소리들이 일어나고 있다. 풀뿌리 시민들의 목소리가 폭발을 하든지 아니면 대선 정국에 휩싸여 주요 정당들이 표를 인식한 표정 관리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 프레임 속에 시민들의 비참함에 무관심하든지 간에 한국의 현대사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한 가지다. 변화의 근본은 민중이 자신의 진실한 공동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과 그 변화의 물결에 물꼬를 잘 터서 창조적 에너지로 연결하는 민주적 시민 역량과 리더십이 세워지는가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참한 사건들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탄핵감에 해당하지만 박근혜 지지율은 고정 3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의 천사는 아직도 진보 진영 손을 들어 줄 것 같지는 않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여기엔 또한 미국의 이익 유지라는 관점에서 미국이 컨트롤할 수 없는 정권의 탄생을 반기지 않는다는 외부 요인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극 끝내기 위한 동반자로 나서야

그렇다면 야당이 무엇인가 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 각자가 일상에서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로서 마음의 5가지 습관에 대해 깊이 성찰하여 자신의 삶과 관계, 그리고 시민 영역에서 그 근력을 강화하는 습관에 대해 치열한 적용 훈련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김대중 정권이 인권 투쟁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국가 부도 사태로 인한 심판으로, 전 정권의 무능으로 국정을 이양받았을 때, 정권 참모들이 가이드로 가지고 국정 통치를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화 경험이 아니라 삼성재벌연구소의 저술들을 통해 확립한 국가 이미지 브랜드화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간 힘든 저항과 희생이 있었지만 정작 정권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통치 패러다임은 삼성의 싱크탱크에 의한 자본 논리였다.

몸은 바뀌었어도 영혼은 그대로 기존 패러다임을 이식받았다는 것은 시민운동에 깊은 고뇌를 안겨준다. 저항과 더불어 대안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일관된 실천 대안과 비전이 지금 역량으로 형성되고 있는가? 세월호의 비극과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이 주는 시대적 부름은 단순히 추모와 저항만이 아니라 이제는 대안과 건설에 대한 상상력과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비극을 끝내는 그러한 건설에 결의를 하고 우애 어린 동반자/동지가 될 수 있겠는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박성용 / 평화서클교회 담임목사,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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