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인홀드 니버> / 리처드 해리스 지음 / 안태진 옮김 / 128쪽 / 7,000원

인간의 실존

인간은 두 개의 물음에 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첫째는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나는 누구인가', 둘째는 행위적 물음으로 '나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가'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적 실상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하위 질문이 주류를 이뤄 '인간'과 '인간다움'이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인간에게 '객관'은 영원히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자아 분리'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욕망, 목표, 욕구 등이 정말 자신에게 진정으로 유익한지, 하나님께서 기쁘게 허락하신 것인지를 자기와 분리해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 '합리'와 '초월', '언약'과 '성취' 등의 사이에 존재한다. 인간이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은 영원토록 불변한 운명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은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인간에게 완전한 것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종교 안에서 종교 밖으로

라인홀드 니버는 기독교와 근대 사회에서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아직도 논란을 불러오는 목회자이며 사상가이다. 보수적 기독교가 주류인 한국 기독교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필자는 보수적 기독교를 두 종류로 나눈다. 개혁적 보수와 그냥 보수적 기독교이다. 필자는 한국교회 주류는 개혁적 보수가 아니라 그냥 보수적 기독교라고 본다.

필자는 스스로 개혁적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이 책을 10년 전에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볼 때 개혁적 보수주의자라고 해도 라인홀드 니버는 쉽게 받아들여지는 기독교 사상가가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본서를 읽으면서, 그가 이룬 업적이나 이루고자 했던 것보다 '왜 니버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가'를 더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 때문에 보수 기독교는 그를 이단적 사상가로서 배척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하나님나라에 대해 내세적인 부분과 종교적 소명 부분을 배제시키고 있어서 분명 자유주의 학자에 속한다. 그러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점은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적 개혁으로 이어져 인본주의로 이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 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안에서 교회 밖으로 확장되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지금의 교회들은 이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가 던지고 간 숙제를 계속 이어 가야 한다.

꺼지지 않은 불씨: 인간의 자유의지, 이레니우스

필자는 칼빈이 이야기한 '인간의 전적 타락'을 지지한다. 하지만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의 부분적 타락을 주장하는 '이레니우스'의 '인간의 부분적 타락'을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접근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회적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이 관점은 종교적 행위에 비중을 많이 두는 보수주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니버의 연구는 자유의지에 대한 개혁적 보수주의의 종교 편향적인 생각을 수정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줄 만한 소스를 가지고 있다.

참자기로 살기 위한 두 가지 질문

본서의 저자는 현재 수많은 기독교 학자가 라인홀드 니버를 비판하는 현실을 보며 니버를 변호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본서에서 필자가 받아들여지고 인정되는 변론은 두 가지다. 라인홀드 니버가 하나님나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 그가 경험하고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부분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수많은 기독교적 문제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분명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지는 놀라운 사실은 니버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누구인가',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인가'에 대한 성실한 삶과 그것을 실제 현실 속에서 담아내려고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 사상은 자유주의에 속한다. 그가 생각했던 하나님의 나라, 기독교적 윤리관, 내세관 등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천국을 이상에서만 찾지 않고 현실로 가져왔다는 점, 현실의 문제점을 하나님께 떠넘기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품고 이상적 천국을 향해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노력 앞에 필자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니버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모든 문제점은 그가 삶으로 감당한 소명, 그가 경험한 현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그의 책임 있는 삶으로 변호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라인홀드 니버에게 원하신 것이 바로 그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교리를 믿는가는 그 사람 인생 방향을 결정한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교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고 확신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충실히 답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그 어느 시대에도 완벽한 인간, 완전한 인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불완전과 완전의 사이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스스로 불완전을 합리화해서도 스스로 완전하다고 자만해서도 안 되는 사이에서 충실히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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