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영도(影島), '그림자 섬'이라는 뜻을 가진 곳. 여기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 한진중공업이 있다. 수십 년간 '조선소 맨'의 터전이 된 곳. 제대로 된 노조가 없던 1980년대 초까지 배를 만들다 죽은 사람들도 여럿이다.

높은 곳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또 누가 깨졌구나"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던 일터. 개죽음을 늘 접해도 술 먹고 부인 패기 바쁠 뿐, 회사에는 아무 말 하지 못했던 노동자들. 침묵은 1986년 깨졌다. 김진숙이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인간답게 살아 보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은 이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담았다. 노동조합 30년 역사를 담았다. 사건이 있을 때만 단편적으로 보도되던 '한진중공업' 이야기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긴 호흡으로 다뤘다. 고공 크레인에서 100일 넘게 버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열사. 박근혜 정부 이후 대량 해고된 노동자들 이야기가 눈물겹다.

▲ 1980년 그 시절, 한진중공업의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도시락 위에는 까만 콩처럼 보이는 쥐똥이 늘 있었다. (영화 스틸컷)

쥐똥 골라내며 밥 먹던 사람들, 집 사는 게 꿈

'그림자들의 섬'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작은 사진관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1980년대부터 일했던 쉰이 넘은 이부터 2000년대에 일을 시작한 삼십 대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얼굴이 나온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김진숙을 포함, 네다섯 명의 노조원이 번갈아 등장한다.

보수 언론에서는 '폭력', '귀족' 단어로 이들을 묘사하지만, 함께했던 사람들 기억은 다르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술 먹고 다음날이면 또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들 '조선소 맨'이 꿈이었다. 김진숙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조선소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사연을 듣고 입사했다.

월급 일부는 사글세 내고 얼마는 저축했다. 막연하게 돈 벌어 나중에라도 대학 가는 게 또 다른 꿈이었다. 또 어떤 이는 돈 벌어 집 사고 결혼하는 게 꿈이었다. 우리 곁 아버지, 삼촌이 바라는 평범한 것들을 그들도 원했다.

일터는 열악했다. 제대로 된 식당도, 번듯한 화장실도 없었다. 아침에 도시락이 배달되면 한데 모여 먹고 한쪽으로 치웠다. 산처럼 쌓였다. 도시락 위로 검은콩 같은 게 보였다. 쥐똥이었다. 노동자들은 순한 양처럼 쥐똥을 골라내며 먹었다. 화장실이 없으니 배 위에서 오줌발을 날렸다.

일한 지 5년쯤 지나, 동료의 죽음을 보고 김진숙은 대의원에 출마했다. 그 전에는 노동자들 대표가 없었다. 어용 노조였다. 그의 동료는 "김진숙 발언은 오래 일한 사람들도 오줌 지리게 할 정도로 힘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진숙은 뽑힌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고됐다. 지리한 싸움이 시작됐다.

▲ 김진숙은 300여 일을 크레인에서 생활했다. 지리한 싸움을 하다 숨을 거둔 동료 김주익을 생각하며 올랐다. 희망버스가 찾아와 힘을 보태는 걸 보며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숱한 죽음에도 회사는 말이 없다

노동자들은 도시락을 거부하며 권리를 찾아 헤맸다. 근로 환경, 산재 보장, 대량 해고를 놓고 싸웠다. 그 사이 4명의 노동자가 곁을 떠났다. 박창수(1991), 김주익·곽재규(2003), 최강서(2012). 

노조원들은 동료 열사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손해배상청구·가압류 문제에 대항해 크레인에서 129일을 지냈던 김주익이 싸늘한 몸으로 내려오자, 동료 곽재규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참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동지들을 보내고 나서야 조합원들이 원하는 바가 일부 이루어졌다. 요구하지 않아도 사측이 직접 복지를 챙겼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 이후 상황은 악화됐다. 회사 상황이 안 좋다며 정리 해고 카드를 꺼냈다. 노조는 사측에게 해고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진숙이 다시 크레인에 올랐다. 김주익을 떠올리며 300일 넘게 크레인에서 생활했다. 시민들은 '희망 버스'로 힘을 보탰다. (관련 기사) 결국 해고된 사람들에게 복귀 명령이 내려졌다.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158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복귀 명령을 철회했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강서. 그는 동료들에게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회사는 "지극히 개인적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 다큐멘터리에는 노동자 네다섯 명이 번갈아 등장한다. 자신의 기억을 꺼내 놓으며 울기도 웃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 냄새가 난다. 

종교계 '그림자들의 섬'을 위해 모이다

9월 19일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공동체,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과 나눔의집협의회,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 70여 명이 모여 '그림자들의 섬'을 관람했다. 한자리에 쉽게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 영화를 매개로 함께했다.

당일, 전체 누적 관람객이 3,000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천만 관객 시대, 누군가에게는 3,000이라는 숫자가 비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노동 다큐멘터리인 점을 감안하면 적은 관객 수가 아니라는 이야기, 극장 상영도 오랜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림자들의 섬은 사회문제를 다룬 기존 영화와 다른 느낌이다. 김정근 감독은 현장 중심의 투쟁 장면을 연속적으로 나열하기보다 사람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이어간다. 관습적인 장면을 최소화한다. 민중가요 대신 이문세, 윤영배 노래가 나온다.

켜켜이 묵힌 사연을 꺼내 들고 웃고 울며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을 보다 보면,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저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고백하는 사건이 빨간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다른다.

김정근 감독은 2010년부터 5년간 노동자들의 표정과 몸짓을 영상에 담았다. 세월의 무게만큼 깊은 울림이 있다. 함께 라면을 먹고 소주를 마시며 쌓아 온 관계가 주는 편안함이 영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김 감독은 5년 세월을 노동자들과 지내면서 왜 그들이 30년 넘게 싸우고 있는지, 궁금증이 해결됐다고 밝혔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 노동조합이 패배한 이유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김 감독은 노동조합이 탄탄했을 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꼽았다. 그 부분을 매듭지었다면 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는 아니라고 했다.

"절반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동조합 역사는 판판이 깨지는 역사라고 말한다. 어딜 가나 승리한 적이 없다. 그나마 한진중공업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김주익 열사가 죽고 난 뒤 단협 만든 일, 희망버스 때문이다. 그게 승리다. 그 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다. 그 부분만 보면 절망되고 패배라고 인지되지만 절망감 대신 그간 싸워 온 일들을 강조하고 싶다."

'그림자들의 섬'을 공동체 상영으로도 만날 수 있다. 배급사인 시네마달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가 상영 공간, 재생용 기기, 빔프로젝트, 스크린, 음향 시설을 준비해야 한다. 사용료는 별도로 책정되어 있다. 감독과의 대화를 원하면 미리 신청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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