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뉴스앤조이>에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문화 선교'를 내걸고 있는 'B사'에서, 신앙과 훈련을 빌미로 단원들의 노동력과 금전을 지속적으로 착취해 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보자들은 이 단체 대표 A 씨가 단원들 사생활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취재한 내용을 기사 세 개로 나눠 보도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노예 계약'. 연예계 불공정 계약이 문제된 적이 있다. 유명 아이돌도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노예 계약을 맺었다. 권리를 찾기 위한 연예인들의 노력이 이어져 지금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하는 표준 계약서를 기준으로 계약을 맺는 것이 상식이 됐다.

기독교 문화 선교 단체를 표방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단순히 연예인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고 선전한다.

B사는 훈련생을 모집할 때 계약서를 작성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하는 표준 계약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7년 유효 계약서다. B사 전속 계약서 제2조 2항을 보면 매니지먼트가 지켜야 할 의무가 명시돼 있다.

"갑(B사)은 을(훈련생)이 자기의 재능과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성실히 매니지먼트 권한을 행사하고 갑의 매니지먼트 권한 범위 내에서의 활동과 관련해 을의 사생활 보장 등 을의 인격권이 대내외적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8월 말, B사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동안 훈련받다 지금은 단체를 탈퇴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젊은 날을 A 대표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무대에 서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왔다가 노동력과 돈을 착취당했다고 분노했다.

다음 내용은 제보자들의 증언과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B사가 한 모든 일이 계약서에 명시된 "을이 자기의 재능과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성실히 매니지먼트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독자들이 판단하길 바란다.

인테리어 공사가 음악 훈련?

A는 2008년 지인 소개로 B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유명 기획사에서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는 A 대표 경력을 보고 배울 점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던 A는 '문화 선교'를 말하는 A 대표 밑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가수가 되기 위한 연습생이었음에도 A가 하는 일은 음악과 관련 없는 일이 더 많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한 일은 녹음실 개·보수 공사였다. 인테리어의 '인'자도 들어 본 적 없던 그는 A 대표 강요로 공사 일에 투입됐다.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화장실을 고쳤다. 일주일에 세 번씩 A 대표 차를 세차했다.

B사는 2010년 극장을 인수했다. A를 비롯한 동료 훈련생 모두 이 극장 공사에 동원됐다. A 대표는 B사 모든 구성원이 공사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훈련생도 마찬가지였다. 건축 일을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극장에서 밤잠을 자며 야간 노동에 시달렸다.

객석 벽에 흡음재를 부착하는 일, 바닥에 철근을 깔아 무대를 세우는 일, 타일을 붙이는 일, 페인트 칠, 천장 보수공사, 마감 작업 등 모두 단원들이 도맡아 했다. 하기 어려운 공사는 전문가를 하루 불러 옆에서 보고 배우게 했다.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단원들은 밤낮없이 공사에 동원됐다. 안전 장비도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공사 노동에 따른 대가도 없었다. 밤새 공사하고 아침에는 돈을 벌기 위해 나갔다. 쪽잠을 자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대관 공연이 가능할 정도의 극장을 만들었다. 돌아오는 건 없었다. 모두 공연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조는 사람 깨우라며 뺨 때리라 지시

남자 단원들이 공사에 동원될 동안 여자 단원들은 주로 홍보 업무에 시달렸다. B는 2010년 5월부터 단체에서 일했다. B 또한 기독교인으로 A 대표가 제시하는 기독교적 비전에 마음이 끌려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B 역시 청소 업무부터 시작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B가 지원한 분야는 글쓰기였지만 주어진 업무는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을 때가 많았다. B는 다양한 업무를 소화했다. 낮에는 공연 각색을 하고 밤에는 배우들 공연 연습을 도왔다. 공연을 시작할 무렵에는 인터넷에 홍보 글을 올리는 일을 전담했다.

C는 악기 특기자로 단체에 들어왔지만 주어진 업무는 말 그대로 잡무였다. 몸 상태가 어떻든 주어진 업무는 반드시 완료해야 했다. 병원에서 결핵 의심 진단을 받았다 해도 믿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체에서는 아파서 병원에 가려면 A 대표 허락을 받아야 했다.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의사 권고 사항을 들려 줘도 A 대표는 C가 의사를 매수했다고 주장했다.

C는 병원에서도 원격으로 업무를 봤다. 인터넷 카페를 관리하고 광고 글을 지우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잠을 자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도 뭐가 두려웠는지 병원 침대에서 업무를 봤다. 아프기 전까지는 부모님도 C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 결국 C는 이 일을 계기로 단체를 탈퇴할 수 있었다. 단체를 탈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C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 위에 올랐다. 과중한 스트레스 외에는 별다른 발병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업무를 제대로 완료하지 못하면 체벌을 받았다. B사 단체 카톡창을 보면, A 대표가 직접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등을 지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록을 보면 C는 팔굽혀펴기를 400회 한 날도 있었다. 단체 카톡에서 그를 연민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A 대표 지시를 따르기에 바빴다.

업무 지시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새벽 1시, 2시에도 계속됐다. 30분, 1시간만 자겠다고 보고해야 쪽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이마저도 A 대표가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한번은 A 대표가 조는 사람을 깨워야 한다며 수화기 너머로 뺨을 때리라고 지시했다. 이후 단체 카톡 창에는 '뺨 때리기 수행 완료'라는 글이 올라왔다.

▲ B사 단체 채팅창의 내용을 재구성했다. 푸쉬업 200번을 제안한 건 기획실장 K 씨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졸았다는 이유로 푸쉬업을 제안했고 실제로 두 시간 정도 지난 후 임무를 완수했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알바 뛰어 레슨비 마련…정작 레슨은 없었다

가수·극작가·배우를 꿈꾸며 B사에 들어간 단원들. 하지만 단체에서 시키는 일이 꿈과 어떤 관계가 있나 의심 들 때가 많았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공사, 밤낮없이 이어지는 업무를 계속하면서도 성공을 꿈꾸며 꾹 참았다. A 대표가 매달 훈련비를 요구할 때도 말없이 내던 그들이었다.

단원들은 '레슨비' 명목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A 대표에게 지불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단체 안에서는 당연시됐다. 학교를 휴학한 사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B사에 들어온 사람 모두 아르바이트를 해서 레슨비를 냈다. 버는 사람 능력에 따라 레슨비 금액이 결정됐다.

D는 가수를 꿈꾸며 다니던 보컬 학원에서 A 대표를 만났다. A 대표는 자신이 서울예대 출신이며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대형 기획사에서 음악 프로듀서를 역임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등학생이었던 D에게 대학에 가는 것보다 자신 밑에서 보컬 레슨을 받는 게 낫다고 설득했다.

D는 B사에 처음 들어간 2007년부터 매달 50만 원을 현금으로 단체에 냈다. 2009년부터는 30만 원씩 냈다. 하지만 제대로 보컬 레슨을 받은 적은 없다.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극장 보수공사, 차 세차, 전선 정리, 오디션 홍보 글 작성을 주로 했다.

피해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A는 오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극장으로 향했다. 밤새 보수공사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후 또다시 편의점으로 향하는 날이 반복됐다. 단원 대부분이 비슷한 생활을 하며 레슨비를 마련했다.

여행 경비 명목으로 돈 받아 놓고 감감 무소식

B사는 2007년부터 '공연 투어'라는 이름으로 해외 여행을 떠났다. 여행할 사람은 A 대표가 직접 골랐다. A 대표는 기도한 후 같이 갈 사람을 지목했다. 여행 멤버로 지목된 사람은 좋든 싫든 함께 여행을 떠나야 했다.

무료 여행이 아니었다. 투어 멤버로 지목된 사람들은 A 대표에게 돈을 내야 했다. D는 2007년 투어 당시 600만 원을 지급했다. B는 2011년 여행비 명목으로 810만 원을 냈다. 여행 기간은 3주를 넘지 않았다.

'공연 투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딱히 공연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해외에 있는 한인 교회 목사 사택에 머물며 주일예배에서 찬양 부른 것이 전부였다. 밥도 직접 해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것은 손에 꼽았다.

610만 원을 낸 여행치고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공연 투어를 진행했지만, 투어비가 어떻게 쓰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A 대표는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만큼 단체에서 A 대표 영향력은 강했다.

2011년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A 대표는 또다시 해외 여행을 가겠다며 매달 여행비를 강요했다. B는 2012년 투어 멤버로 뽑혔다. 2011년에 다녀왔지만 한 번 더 지목됐다는 이유로 매달 일정 금액을 송금했다. 그는 2014년까지 총 600만 원을 투어비 명목으로 송금했다. B만 계속 송금한 것이 아니다. 그 외에도 여러 피해자가 있다.

B사는 2011년을 마지막으로 공연 투어를 간 적이 없다. 2011년을 마지막으로 여행은 없었지만 투어비는 계속 모았다. 단원 중 한 명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해외 여행비를 모았지만 결국 이 돈은 여행에 쓰이지 않았다. 투어비를 꾸준하게 낸 단원들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A 대표의 아내 Z 씨는 단체를 떠난 뒤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E에게만 갑자기 연락해 투어비를 돌려주었다.

공연 수익은 모두 어디로?

B사는 2011년부터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적어도 하루 3차례씩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배우로 등장하는 사람은 주로 네 명. 나머지 단원은 길거리에 나가 관객을 찾고, 티켓을 팔고, 조명 및 음향을 담당하고, 행정 업무를 보는 데 동원됐다. 모두 A 대표가 제시하는 비전에 이끌려 온 사람들이었다.

B사가 첫 번째로 올린 공연에서 수익을 올렸지만 단원들은 한 번도 수익금 일부라도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다. 외부에서 데려온 스텝에게만 월 30만 원 정도를 제공했을 뿐이다. 공연을 위해 동원된 단원들은 언제나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무임금 노동을 강요당했다.

단원들에게는 매월 재정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재정 훈련을 한다는 이유로 매월 정확한 수입과 지출을 기입하게 했다. 집에서 보내 주는 돈까지 보고서에 들어갔다. 돈을 쓰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데 돈을 쓰면, 낭비가 심하다며 따로 불러 혼내는 일이 잦았다. 십일조, 재정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헌금을 강요했다.

단원 대부분이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 하지만 A 대표는 교회 대신 단체에 헌금을 하라고 강요했다. 십일조와 비슷한 명목이었지만 이름은 달랐다. '심는 헌금'. 심는 헌금은 매주 단체 예배 시간에 내는 것이었다. 헌금을 내지 않으면 설교 시간에 공개적으로 정죄하기 일쑤였다.

'근로자' 아니라는 고용노동청

단체를 탈퇴한 몇몇은 그동안의 내용을 정리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했다. 자신들의 부당한 노동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8명이 함께 진정서를 냈다. 훈련 대신 공사에 시간을 보낸 내용, 각종 잡무에 시달리던 것을 정리했지만 고용노동청은 A 대표 손을 들어 줬다.

고용노동청이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은 까닭은 전속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계약금', '수익 분배'에 관한 내용이 명시돼 있다. 실제로 누구도 계약금을 받거나 수익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적은 없지만, 계약서에 이 조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단원들은 그동안 단체를 위해 헌신한 세월이 아깝기만 하다. 도대체 왜,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성인들이 B사에 남아 A대표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까. 다음 기사에서 소개한다.

제보를 접한 후 A 대표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처음에는 A 대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태도를 바꿔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B사 기획실장 K 씨와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제보자들이 담합해서 악의적으로 허위·과장된 스토리를 여기저기 제보하고 다닌다. 만약 B사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제 많은 회사라면 법적 소송이라도 진행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여러 명이 같은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다. 우선 공문을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K 실장 요구에 따라 B사 A 대표에게 팩스로 공개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라도 B사에서 반론을 제기한다면 이를 성실하게 반영할 것을 약속합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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