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대학교 시절, 신앙 서적 꽤나 읽는다 소문난 교회 선배들은 하나같이 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를 최고로 쳤다. 특히 그의 14권짜리 '로마서 강해'(CLC)와 3권짜리 '교리 강좌 시리즈'(부흥과개혁사)는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졌다. 설교 비평집으로 화제가 됐던 정용섭 목사(샘터교회)도 로이드 존스 설교의 한계점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이런 설교자가 있는 줄 몰랐다며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말도 있었다. "로이드 존스의 책은 침대에 누워서 읽다가 앉아서 읽게 되고, 앉아서 읽다가 무릎을 꿇고 읽게 된다." '뭐 그렇게까지야….' 생각했지만, 가벼운 마음에 <산상설교집>(정경사)을 읽다가 항간에 떠도는 그 말이 진지한 이야기였음을 새삼 느꼈다.

로이드 존스를 어떻게 평가하든, 한 세기 기독교사에 획을 그은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로이드 존스의 동역자 이안 머레이가 쓴 2권짜리 전기가 가장 유명한데, 한국에서는 부흥과개혁사에서 3권으로 번역·출간했다. 문제는 이 전기가 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는 사실이다.

이안 머레이는 일반 독자를 위해 문턱을 낮춰, 2권짜리 책을 1권으로 축약하고 수정한 뒤 새로이 로이드 존스 전기를 묶었다. 이 책은 얼마 전 복있는사람이 <마틴 로이드 존스 –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의사의 길 버리고 택한 설교자의 길

로이드 존스가 촉망받는 의사였지만 후에 의사직을 내려놓고 설교자의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1923년 왕립 주치의 밑에서 수석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세인트바톨로뮤병원 의학과 조교수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미련없이 설교자가 됐다.

신학대학을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아 사역을 이어 갔던 로이드 존스의 모습은 뭇 설교자에게 본이 된다. 성경 해석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설교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한결같이 한길을 걸어갔다는 측면에서는 귀감이 된다.

이안 머레이는 보수 복음주의자 로이드 존스가 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컬 진영 연합 문제로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같은 당대 복음주의 거장과 입장을 달리하는 모습도 시대적 상황과 함께 비중 있게 조명한다. 당대 신앙 조류와 불화한 로이드 존스는 교조적이라는 비판, '분리주의자'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웠다.

의사의 길을 포기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로이드 존스가 연설한 내용 중 당대 교회를 비판한 대목을 보면, 그가 자신의 부르심과 '설교'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의 나이 25세 때 일이다. 동년배들과 다른 단호함이 곳곳에 서려 있다.

"설교하는 일은 대부분 하나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짜 기독교식 설교가 아니라 간접적인 심리학 강해를 듣습니다. 설교자들은 회중이 요구하는 것을 전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설교자 자신이나 그 설교를 듣는 회중 모두에게 이 얼마나 끔찍한 정죄인지요! (중략) 오늘날 우리네 교회 강단은 무기력하고 무능합니다. 현대 웨일스의 비극을 마지막으로 완성한 것이 이것입니다!" (122쪽)

그가 설교자로 부름받는 장면은 그렇게까지 극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로이드 존스가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고 소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은 계기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로이드 존스의 어렸을 적 경험은 이어지는 사건의 배경처럼 자리한다. 그는 본래 축구와 놀이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가 10살이던 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잡화점이 불타면서 가족은 전 재산을 잃게 된다. 이후 닥친 재정적 어려움은 로이드 존스의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줬다.

로이드 존스는 학업을 이어 가면서 한동안 우유 배달을 했다. 1918년에는 스무 살이던 형 해롤드가 유행성 독감에 걸려 죽음을 맞았고, 4년 뒤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이때를 계기로 로이드 존스는 '죽음'과 죽음 이후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 <마틴 로이드 존스 - 20세기 최고의 설교자> / 이안 머레이 지음 / 오현미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799쪽 / 3만 8,000원 ⓒ뉴스앤조이 강동석

세인트바톨로뮤병원에서 일할 당시 갖게 된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거짓 회심'에 대한 통찰력을 주었다. 1994년 생명의샘에서 출간된 <회심 심리적인 것인가, 영적인 것인가>를 보면, 이 주제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진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외과의가 수술을 집도하듯 성경 각 절을 낱낱이 파헤치는 로이드 존스 설교 스타일에 대해서도 단서를 던져 준다.

로이드 존스 설교에서는, 하나님 은총 외에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과 죄인 된 인간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종말론적 강조가 부각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은 기독교인일 수는 없다는 통렬한 인식이 존재한다. 그의 설교 저변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복음의 근본성을 잘 드러낸다.

그가 향수병, 우울증을 앓는 모습, 첫 사역지에서 탈진해 사역을 내려놓고자 했던 점, 성경이나 경건 서적을 읽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대목에서는 연약한 인간과 하나님 은혜를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개혁주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로이드 존스의 생애와 사상이 독불장군처럼 다가올 수 있다. 보수 복음주의자 입장에서는, '해설의 글'을 쓴 박영선 목사 지적처럼 그가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로이드 존스는 세상의 것과 비견될 수 없는 복음의 본질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최전방에서 홀로 지켜 낸 복음의 수호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손길로서, 자기 책임을 다한 위대한 증인이었다." - 박영선 목사(남포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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