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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딸들의 친정엄마 김선옥 목사
[인터뷰]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늘푸른자립학교 운영…거리 위 아이들 보살핀 지 20년
  • 최승현 기자 (shchoi@newsnjoy.or.kr)
  • 승인 2016.09.05 14:26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목사인데도 목사 호칭 대신 엄마로 불리는 여자가 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는 한 명이지만 그녀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모두 딸이다. 오는 딸 팔 벌려 안아 주고 나가는 딸 안 붙잡는다고 말하는 그는, 새날교회 김선옥 목사다.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새날쉼터)에서 가정 폭력, 성폭력에 노출돼 인생의 고난을 일찍 경험하는 아이들과 20년 가까이 지내 왔다. 10년 전부터는 딸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려고 늘푸른자립학교를 세워 새 출발을 돕고 있다.

   
▲ 김선옥 목사는 '목사' 대신 '엄마'로 더 많이 불린다. 20년 가까이 가출 청소녀들과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엄마가 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 사역에는 김 목사 어머니가 큰 영향을 끼쳤다. 김 목사 어머니는 강원도 영월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약사 출신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김 목사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약을 들고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영월 산간 오지를 다니며 '의료 선교'를 시작했다.

자식은 기운 옷 주고 교인은 새 옷 주는 엄마 모습이 미울 때가 많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무의식이 이때 형성됐다. 다니던 교회가 둘로 쪼개지고, 같이 교회 다니던 청년들도 교회에 염증을 느껴 떠났지만, 김 목사는 그럴 때일수록 신학교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1979년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한 김선옥 목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빈민 운동에 뛰어들었다. 빈민 교회로는 국내 1호 격인 사당 희망교회에서 봉사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목사 남편과 아예 희망교회에 부임해 5년을 거기 살았다. 그때부터 '목사님' 혹은 '사모님' 칭호는 포기했다. '예은 엄마' 또는 '엄마 선생님'으로 불렸다.

오는 딸 반기고 가는 딸 안 잡는다

빈민 운동과 노인 사역에 매진하는 김선옥 목사에게 감리교 선배 여성 목사들은 새로운 사역을 권유했다. 가출 청소녀를 보살필 적임자로 보고, 1998년 문을 연 새날쉼터를 그에게 맡겼다. 김 목사에게는 전혀 낯설 게 없었다. 빈민 사역 시절부터 봐 온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거기에도 있었다.

대학 때 접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입식 교육,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 대신 해방의 교육, 인간을 주체로 보고 진정한 행복으로 이끄는 교육을 말하는 데, 거기에 확 꽂혔어요."

김 목사는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간 것을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라고 규정한다. 탈출한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사랑'. 가족에게 받지 못한 사랑의 자양분을 주는 것을 사역 목표로 삼았다.

"새날쉼터에 온 아이들은 거의 다 가정 폭력·성폭력 피해자들이에요. 성장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 아이들이죠. 그 경험이 없으니까 세상이 두렵고 이유 없이 화가 나요. 남을 때리거나 빼앗는 방식으로 화를 표현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요. PC방이나 집안에 갇힌 생활을 하죠."

거리 생활은 무섭지만 한편으론 재밌다. 가출팸(가출+패밀리)끼리 사는 게 집에서 사는 것보다 좋다.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고,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도 없다. 그러다 남자를 만난다. 학대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은 조금만 관심을 줘도 그 사람을 의지하고,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어른'이라는 센 존재가 함께하기에 안정감도 느낀다. 그렇게 잘못된 관계가 시작되고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런 아이들이 태반이다 보니 사랑 주기도 바쁘다. 혼낼 시간이 없다. 이때를 놓치면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목사는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평가하지 않는다. 거리의 무법자처럼 살다가 무작정 들어오고 무작정 나가니 복장 터질 법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제가 생각해도 낯선 환경에 들어오는 게 두려울 것 같아요. 공동체 생활 힘들죠. 수용 시설 같고. 선생님은 5명이나 있고요. 떠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다시 올 생각 있으면 오라고 명함은 줘요. 잡지는 않아요. 구구절절 붙잡거나 설명하지 않으니 오히려 애들이 좋아해요."

1주일만 지나면 어색함이 옅어진다. 선생님도 친구나 이모 같아서 처음 온 애들이 "여기 이상한 곳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담배도 마음대로 필 수 있다. 어차피 못 하게 해도 몰래 한다는 걸 알기에 굳이 막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술'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운다. 아이들 중에 폭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보며 생긴 학습 효과 때문에 상당수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1999년, 아이들과 단체로 간 캠프 마지막 날. 조장 둘이 오더니 "우리 그동안 술 너무 열심히 잘 참았는데, 캠프 마지막 날이니 술 사주면 안 돼요?" 물었다. 캠프 잘한 보상으로 술 달라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줄기차게 요구했다. 선생님들끼리 회의가 시작됐는데 주자는 쪽과 말자는 쪽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얘네들이 술을 잘못 배운 애들이예요. 술이 목적이었던 거죠. 술 먹기 위해 성매매하고, 남의 것 빼앗고… 회의 끝에 아이들과 타협했어요. 자기가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주자. 술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자."

"콜!" 술을 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소주를 요구했다. 소주를 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캠프 잘한 것 깨진다. 대신 맥주 한 캔을 주겠다" 하니 그거라도 어디냐며 협상이 성사됐다. 맥주 한 캔은 저녁 9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선생님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술이 긴장을 풀게 하고, 사람 사이 놓인 담장을 낮춰 주는 수단임을 알게 됐다. 1999년의 이 경험은 2016년까지 새날쉼터 원칙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나니 술 먹으러 쉼터 나가는 아이들이 줄어들었다.

   
▲ 술, 담배, 임신. 접근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김선옥 목사와 활동가들은 새날쉼터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계도하려 들지 않는다. 엄마처럼, 이모처럼 대하다 보면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쉼터 아이들 중 상당수가 늘푸른자립학교에 나와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늘푸른자립학교)

임신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새날쉼터에는 임신해서 들어오는 10대가 많다. 와서 대놓고 "애 지워 주세요"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를 낳은 사례가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각에 빠져 사고 난 경우가 많다.

출산 여부를 아이들이 선택하게 하지만 그에 따르는 위험도 상세하게 알려준다. "낙태했을 때는 몸이 망가진다. 남자 친구와 관계가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 심리적으로 모성애 본능이 생기기 때문에 죄책감이 어마어마하다. 낙태한 이후 삶이 힘들 것이다. 너희 언니들 모습이고 너희들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낳을 경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자세히 알려준다.

다행히 요즘은 미혼모에 대해 점진적이나마 관대해지고 있어 시설과 복지 지원이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낳아서 직접 키우는 추세다. 쉼터에 임신한 아이가 있으면 또래들이 담배도 가려서 피고 먹고 싶다는 것도 챙겨 준다. "애기 듣겠다"며 욕설도 자제한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했고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게 혼용되기 시작해요. 거리 생활은 길어지고, '이거 무섭기도 한데 재밌기도 하네'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집을 나왔는데 보살펴 주는 어른이 없잖아요. 힘센 남자 만나면 거리 생활이 안전하기도 하죠. 몸을 의지하게 되고,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꼬시면 금방 넘어가고… 아이들은 유년기에 학대당한 기억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요. 그래서 누군가 다정하게 대해 주면 금방 넘어갑니다. 나를 좋아하는 줄 착각하는 거죠."

신앙도 강요하지 않는다. 김선옥 목사는 아이들을 크리스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한 인간이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세상에 자신을 보낸 미션을 깨닫게 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감리교 여성 목회자들이 만든 기관이고, 자신이 목사고, 자신 안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철학이 있지만 그것이 직설적으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예수 믿으라고는 하지 않지만 김 목사와 활동가 삶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 생각이 들게 하자는 게 목표다. 그렇게 산다고 자부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언어를 이해하게 되고, 자립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집사 된 딸도 있고, "엄마! 심방하러 와 줘" 전화 거는 딸도 있다.

   
▲ 아이들은 학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합격한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기술도 익히고, 인턴십도 체험한다.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립의 첫걸음을 뗐다. (사진 제공 늘푸른자립학교)

'아이들에게 기술을' 늘푸른자립학교

삶이 불안정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제도권 학교로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게 아이한테도, 학교에도 할 짓이 못 됐다. 밤낮이 다르고 언어와 화장과 패션이 다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학교도 두렵겠구나, 김 목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안 학교에도 보내 봤는데,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대안 학교도 입학과 졸업 시기가 정해져 있으니 아이들이 소년원이라도 다녀오면 모든 게 초기화됐다. 학비도 부담이 됐다. 대안 학교라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할 때 오는 박탈감도 문제였다.

김 목사는 아이들에게 '프레네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일과 교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경을 마련해 준 이 교육 방법이 아이들에게 적합하겠다 생각했다. 입학과 졸업에서 자유로운 학교,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를 꿈꾸며 설계도를 그렸다.

길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열렸다. 2009년, 서울시가 대안 학교를 추진하면서 김 목사를 자문위원으로 불렀다. 평소 꿈꿔 온 바를 참고하라며 내놓았는데, 서울시에서 "김 목사님이 맡아 달라“ 요청해 왔다. 3개월 만에 홍대에 늘푸른자립학교가 생겨났다. 쉼터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학교에 오는 10명 중 7명은 쉼터 아이들이지만, 자기 집에서 오가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오전에는 국영수 등 기초 과목을 공부한다. 오후는 정서 안정을 위한 시간이다. 스스로 꾸는 꿈이라는 뜻에서 '자몽'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억압된 아이들 내면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데려다 앉혀 놓고 상담하는 건 하지 않는다. 이미 여기저기서 숱하게 받아 봐서 지겨워한다. 대신 악기 하나씩 쥐어 주면 효과가 좋다. 아이들은 악기를 다루며 내면을 발산한다.

검정고시 이후 삶을 준비하기 위해 올해 9월부터는 직업 탐색 학기를 시작한다. 직업 관련 캠프를 열고, 원하는 직업을 탐색하거나 체험하는 시간이다. 곧바로 취업에 연계돼 인턴 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다.

   
▲ 김 목사를 도와 서울신학대학교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한 이들이 늘푸른자립학교 일을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직장에 붙으면 비로소 독립할 때가 온다. 독립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부담되는 일이다. 그래서 쉼터 근처에 방을 얻으라고 권한다. 마치 친정집처럼, 쌀 떨어지면 언제든 오라 한다. 자립했다가도 잘 안 되면 돌아오라는 거다.

"한 명은 15살에 쉼터에 왔어요. 길거리에 내몰려 벤치에서 자던 애를 동네 아줌마가 데려왔어요. 끊임없이 성폭력 당하고 성매매에 유입됐던 애예요. 자립해서 살다가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 결혼하려 마음먹었는데 거리 생활과 성매매 때문에 알코올중독인 거예요. 스스로 '결혼했다가는 신랑이랑 아이들 다 망하겠다' 생각했나 봐요. 전화가 왔어요. '엄마랑 살면서 뭘 배우면 안 될까? 술을 끊고 싶은데 도저히 혼자선 안 될 거 같아. 엄마 옆에 있으면 나을 거 같아' 하는 거예요."

33살 나이에 친정에 돌아온 딸은 처음 두 달 김 목사를 아주 괴롭혔다. 멀쩡한 상태에서 주정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렇게 고비를 넘고, 정신과 약도 끊었다. 지금은 기술을 잘 배워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딸은 조만간 다시 독립할 계획이다.

"은퇴요? 꼰대 됐다고 느낄 때…"

60살을 바라보는 김 목사의 목표는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잘못해도 엄마처럼 안아 주고, 다그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넉넉한 마음을 계속 갖고 싶다.

은퇴 시기를 물었다. 그는 딸 같은 아이들이 더 이상 딸 같아 보이지 않을 때, 엄마 또는 할머니 같은 김 목사가 학주 선생처럼 보일 때, SNS 신조어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때가 은퇴 시기 아니겠냐며 깔깔 웃었다.

"새날은 친정집 같은 곳입니다. 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하나님 만드신 피조물에 능력이 있다고 믿고요. 10대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요. 그저 우리는 빈자리 하나 내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변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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