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도시에서 여름 나기는 곤혹스럽다. 계속되는 폭염, 높이 솟은 빌딩 숲, 열기로 가득 찬 아스팔트 길,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 어디를 가나 넘치는 인파. 일이 넘치는 일상은 쉼과 거리가 멀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잠잠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쉴 시간 내는 것도 어렵지만 쉴 만한 공간 찾는 게 문제다. 개신교 기도원은 대부분 뜨거운(?) 부흥회 중심이다. 조용히 내면을 살피기보다 성령·치유 집회를 주로 한다. 주변에 산이 있는 기도원은 많지만 등산로까지 제대로 갖춰진 기도원은 흔치 않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도시 순례자를 위해 마련된 곳이 있다. 가평에 있는 영성 센터 '필그림하우스'다. '순례자의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곳은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가 기도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2009년 문을 열었다. 단체나 개인이 와서 숙박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다. 일상에 지친 기자도 8월 13일부터 14일, 1박 2일간 이곳을 찾았다.

▲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 내면을 살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도시 순례자를 위한 공간이 여기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산책하며 마주하는 복음, 천로역정

순례자에게 쉼터가 되는 필그림하우스. 올해 9월부터는 새로운 영성 훈련을 도입한다. 영국 작가이자 설교자인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순례 코스를 준비하는 것. <천로역정>은 존 버니언이 12년 옥중 생활 중에 쓴 작품으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과 설교로만 복음을 접한 기독교인이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생각하게 하는 고전이다.

<천로역정>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자신이 살던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성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 소설이다. 크리스천은 한 전도자를 만나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죄라는 짐을 지고 순례 여정을 시작한다.

곳곳에서 순례길에서 벗어나라고 유혹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을 북돋아 주는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기도 한다. 여러 과정을 거치며 크리스천은 십자가 언덕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무거운 죄 짐을 벗게 된다.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의심과 번민을 겪으며 크리스천은 믿음의 경주를 끝마치게 된다.

필그림하우스에 자리 잡은 순례길은 <천로역정>의 스토리를 그대로 담았다. 2km에 달하는 길 곳곳에 각종 조각상과 설치물이 눈에 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도록 조각상에는 생생한 표정과 동작이 담겼다. 책에 나오는 '멸망의 도시', '미궁', '기쁨의 산', '쁄라의 땅' 등 장소를 나타내는 곳 역시 순례자들이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입체적으로 꾸몄다. 미궁의 경우 부티크숍에서나 볼 법한 침대, 소파, 전등으로 꾸몄다.

▲ 필그림하우스에서 9월부터 운영하는 <천로역정> 순례길. 곳곳에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순례길 프로그램은 매주 월·수 1시 30분 필그림하우스 옆에 있는 산책로에서 시작한다. 길이 가파르지 않아 샌들을 신어도 무방하지만 볕이 강한 여름철에는 모자나 선글라스를 준비하면 좋다. 참가비는 1만 원. 당일 1시까지 데스크에서 신청을 받는다.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은 요일 관계없이 천로역정 코스에 참여할 수 있다.

필그림하우스 소속 사역자나 훈련받은 봉사자가 순례자와 함께 돌며 <천로역정> 내용을 설명하고 조각상에 담긴 의미를 풀이한다. 이동원 목사도 월 2회 정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 목사는 순례길 코스로 참가자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복음을 전할 계획이다.

순례 중 교제하는 시간도 준비돼 있다. 크리스천이 쉼을 얻었던 미궁이나 쁄라의 땅에서 그의 심정을 느끼며 함께 다과를 나눈다. 출발 전에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 코스 후에는 느꼈던 점을 나누고 마음에 새기는 기도로 마무리한다.

도시 순례자를 위한 공간, 필그림하우스

수도권에서 필그림하우스는 그리 멀지 않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내에 도착 가능하다. 용산역에서 ITX-청춘 열차를 이용하면 1시간 안에 가평역에 닿는다. 기차는 30분 간격으로 한 대씩 있다. 가평역에서 '적목리행' 버스를 타고 '오목골'에 하차하면 된다. 가평역에서 출발하면 30분 안팎으로 필그림하우스에 도착 가능하다. 버스는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10대가 운행된다. 출발 전 버스 시간 확인은 필수다.

오목골에 내리면 오른편에 필그림하우스가 보인다. 산에 둘러싸인 센터가 먼저 눈에 띈다. 이곳에 묵는 동안은 어디에서나 자연의 소리와 향을 느낄 수 있다. '엠마오 테라스'에 앉으니 바로 앞으로 커다란 산등성이와 듬성듬성 내려앉은 구름이 보인다. 센터 곳곳에 '순례자의 미덕 경건한 침묵', '순례자의 규칙 고요한 대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조용히 사색하기 좋다.

문화 공간도 많다. 북카페, 도서관, 테라스, 갤러리, 산책로, 기도실 등 쉼을 누리고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충분하다. 기도실도 침묵 기도실, 골방 기도실, 통성 기도실, 중보 기도실 등 여러 종류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을 고를 수 있다. 화·수·목·금 하루 세 번, 사역자 인도에 따라 기도회가 있고, 수요·주일예배도 따로 드리고 있다.

▲ 고요한 대화와 경건한 침묵을 권장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식당과 숙박 시설도 훌륭하다. 수도원에 있는 수사들을 일컫는 말에서 따온 은자식당에서 매끼 다양한 식단이 제공되고 있다. 식당 앞에는 일주일 동안 어떤 식사가 나오는지 미리 알려 주는 푯말이 있다. 기자가 간 날에는 돈까스, 샐러드와 감자탕이 나왔다. 한 끼당 오 천원이다.

숙박은 본 건물인 필그림하우스와 10분 거리 별관 필그림빌리지를 사용할 수 있다. 2인실(침대 및 온돌), 다인실, 가족실, 단체실 등 인원에 맞게 사용할 수 있고, 초등학생 이하를 동반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조용한 묵상을 위해 필그림빌리지에서만 묵을 수 있다. 체크인은 오후 3시 이후, 체크아웃은 오전 11시 이전에 해야 한다.

주소: 경기도 가평군 북면 가화로 1862
문의: 031-589-7600, http://www.pilgrimhous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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