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현각 스님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비록 다른 종교 이야기지만 그 파장이 개신교에만 미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사실 현각 스님이 제기한 한국 불교의 문제는 단어만 좀 바꾸면 기독교의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현각 스님은 미국인으로 하버드대학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학위 과정 중 출가해 1992년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자승 총무원장) 승려가 됐다. '푸른 눈의 수행자'로 불리며 25년간 조계종에서 현정사 주지,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7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 조계종을 비판하고 한국 불교를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현각 스님이 문제 삼은 것은 종단의 상명하복식 유교 문화, 외국인 승려 차별, 재가 불자(일반 신도) 무시, 기복신앙 등이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불교 언론뿐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수십 개의 일반 언론사까지 현각 스님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드문 이력의 소유자지만 한 스님의 탈종 선언이 이렇게까지 관심 받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현각 스님은 31일 <중앙일보>에 이메일을 보내 "서툰 한국어 실력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 나는 한국 불교를 떠난다고 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일파만파 퍼져 나가던 페이스북 게시 글도 삭제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조계종의 교육이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그릇이라고 하면서도 "불행히도 극단적으로 완고한 민족주의와 정치 때문에 현재 조계종의 방향은 그 기술을 세계에 전하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각 스님은 이를 한국의 승려와 재가 불자가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과도한 순응(hyper-conformity)" 문화가 개혁을 막고 있다며, 이는 한국 승려의 독특한 질병이라고 했다.

과도한 순응, 견고한 시스템

현각 스님은 발언을 철회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처의 정신과 관련 없는 종단 권승들의 만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우희종 교수(서울대)는 <불교닷컴>에 쓴 글에서 "현각 스님이 떠나는 것이 화제인 것일까? 아니면 조계종으로 상징되는 한국 불교가 그리 무너져 있다는 것이 화제인 것일까? 비록 그 둘은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히 후자다"라고 했다.

이웃 종교를 흉보려는 건 아니지만,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조계종 내부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잊을 만하면 승려들의 은처(隱妻) 문제나 도박, 금권 선거 등 부정적인 소식이 들린다. 조계종 총무원 최고위직인 자승 총무원장도 이런 의혹에서 자유하지 않다.

동국대학교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논문을 표절한 보광 스님이 지난해 총장 자리에 앉자 학생들과 불자들이 들고일어났다. 부총학생회장은 50일간 단식하며 총장 사퇴를 외쳤으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는 올해 7월, 부총학생회장을 '무기정학' 처분했다.

재가 불자 단체들은 종단 내 요직을 꿰찬 승려들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비리와 탈선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승려를 향한 신도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꼽았다. 승려들이 '깨달음'을 빌미로 신도들과 자신들의 위치에 선을 긋고, 신도들은 승려들의 입만 바라보며 굴종하는 시스템이 불교 타락의 큰 원인이라고 짚었다. 우희종 교수의 말이다.

"평생을 수행한 승려가 떠나도록 한국 불교와 조계종단이 이토록 망가진 이유가 오직 권력과 이득만을 좇는 종단 내 권승들과 파계승들 때문이라면 희망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파계승들이 종단 권력을 잡고 유지할 수 있도록 장식용으로 동참하는 일부 불교 관련 학자들과 침묵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기름진 파계승을 큰 스님이라고 떠받드는 굴종의 신도들이 만들고 있는 견고한 구조이자 문화다."

굴종의 교인들

남의 동네 이야기라고 혀 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톨릭 신학자 김근수 편집인(<가톨릭프레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 한국 불교와 인연 끊겠다'는 현각 스님의 선언이 있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어떤가. 누구 책임인가. 부패한 일부 성직자들과 그들을 어떻게든 감싸고 도는 평신도들이 문제다. 특히 교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위해 침묵하는 신학자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 그들은 하느님께 가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썼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부패로 따지자면 세 종교 중 개신교가 일등일 것이다. 위의 말들을 "권력과 이득을 좇는 목회자", "침묵하는 신학 교수들", "불법을 저지른 목사를 큰 목사라고 떠받드는 굴종의 교인들", "부패한 일부 목회자들과 그들을 어떻게든 감싸고 도는 교인들"이라고 바꾸면 어떨까.

조계종단에 따끔한 말을 마다 않는 우희종 교수와 바른불교재가모임은 종단 권승들로부터 '해종 세력', <불교닷컴>은 '해종 언론'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교회 세력', '해교회 언론'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과연 누가 부처님 정신을 훼손하고 예수님의 정신을 발로 걷어차는 걸까.

<뉴스앤조이>에 있으면 목회자의 섹스 스캔들과 돈 문제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목회자를 두둔하며 교회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반대파'라고 낙인찍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성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목사님이 절대 그럴 리 없다. 그 여자가 꽃뱀"이라고 하며, 헌금을 마구 갖다 써도 "우리 목사님이 사역을 위해 쓰신 것"이라고 한다.

한때 제자 훈련으로 유명했던 교회는 '평신도를 깨워라'는 기치를 들었다. 하지만 현재 그 교회 수만 명의 신도가 목회자의 잘못을 눈감고 있는 걸 보자면, 무엇을 위한 '깨움'이었는지 회의가 든다. 그 교회 부목사는 이를 증명하듯 말했다. "나는 제자 훈련할 때 말한다. '아무리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지막에는 교역자의 말에 순종하라'."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보면 정말 상식 이하다. 일반 상식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도덕적 기준을 가진 교회를 사람들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들어오지 않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뛰쳐나간다. 이러면 또 "복음은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려나.

목회자의 비리로 교회가 깨지고 교인들이 반목하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런 아픔이 비로소 굴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희망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아이러니다.

암담한 건 교인들이 이탈하는 현상을 두고 목회자들은 여전히 굴종의 교인들을 양산할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교단에서는 "주일 저녁 예배가 사라지니 교인들이 줄어든다"고 하며 주일 저녁 예배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처방전을 냈다. 교회만 알고 교회에서만 열심히 살고 교회에서만 사랑하는 기독교인은, 딴 짓 하려는 목사에게만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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