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옆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다
보면 엄청난 숫자의 쪽방들이 즐비하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집안의 컴컴한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매캐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할아버지 계세요?" 방문을 열자 악취가 덤벼들었다. 순간 움찔 하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1평도 안 되는 쪽방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 꿈쩍도 안 하는 모습을 보고는 '혹시' 하고 방정맞은 생각을 하는데, 몸을 약간 뒤척인다.

영등포역 옆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싸구려 여인숙이 늘어서 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숫자의 쪽방들이 즐비하다. 막일을 하거나 구걸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다가 늦은 밤 이곳에 들어와 몸뚱아리 하나 집어넣고 쉼을 얻는 곳.

아까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시각장애인으로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면서 산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하모니카 불면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난처한 상황을 빠져나갈까' 머리를 굴리다가 "저 사람들 하루 일당이 얼만 줄 알아? 지금 내 봉급 몇 배는 돼" 하고 자위(自慰)하면서 애써 외면했던 수많은 순간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괴롭힌다. 출장 가서 3만원짜리 여관에서 잘까 2만5천원짜리 여관에서 잘까 망설이다가 후자를 택하고는 '검소한 선택'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수많은 순간 순간들, 하룻밤 5천원짜리 쪽방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앞에서 와르르 무너진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술에 취한 40대 아저씨가 어디선가 나타나 말을 걸더니 이 소리 저 소리 횡설수설한다. 광야교회에서 만나기로 했던 서안복음병원 의료팀이 도착해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뒤를 졸졸 따라오더니 "섭섭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노숙자라고 사람 무시하는 거냐"고 했다. "약속이 있어서 그런 거니 미안하다"면서 마음 풀라고 했지만, 뭐라고 또 다시 횡설수설하더니 불만을 털어놨다.

5년 전 시골에서 올라와 쪽방 생활을 하지만 그 동안 돈도 꽤 모았단다. 희망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저 사람들만 만나냐"고 따진다. 처음 이곳을 와본 기자로는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잘 몰랐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쪽방에 사는 자신들은 그래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광야교회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욕이나 의지도 없이 그저 손만 벌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외지(?) 사람들은 쪽방 사람들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교회 사람들만 만난다는 거였다.

▲광야교회 무료진료 모습 ⓒ뉴스앤조이 김승범
신영복 선생이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읽은 대목이 떠오른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옆 사람이 내뿜는 체온 때문에 그 존재 자체가 미움의 대상이 되는 여름보다는, 옆 사람의 따뜻한 체온 덕분에 그 존재 자체가 고마워지는 겨울이 더 낫다는, 대충 이런 얘기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질시하고 원망하고 있었다. 쪽방집 대문에 '늦은 밤 주인 허락 없이 몰래 들어오거나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경고성 문구가 떠오른다.

가져갈 게 뭐가 있겠는가 싶지만 그래서 상대방 주머니에 단 몇 십만원이라도 있는 게 확인되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돈을 뜯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나타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가진 사람은 가진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서로를 품고 의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저 주머니에 있는 걸 내 주머니로 옮길까' 궁리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우리 사회의 자아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마치 베데스다 못가에 몰려 있는 환자들이 남보다 먼저 기적을 체험하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와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과 함께, 광야교회가 운영하는 쉼터·상담소가 있으니 마음 한편 안심이 된다. 광야교회는 몇몇 병원과 교회의 의료팀이 돌아가면서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교회 사람들 뿐 아니라 쪽방 사람들도 와서 진료도 받고 점심도 해결한다. 광야교회가 이들 마음의 한 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

▲광야교회 ⓒ뉴스앤조이 김승범

진료가 끝난 밤 9시 30분. 골목을 서서히 빠져 나왔다. 롯데백화점을 화려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는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앞 광장에서 "예수 믿으세요" 하면서 전도하는 메가폰 소리도 크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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