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칼날같이 빛나던 빙판길에서
어머니는 울었다 거리가 온통 병실이구나
마구 자빠지는 사람들은 편안해 보였고
아침 빛다발 속에서 아무것도 부활하지 않았다" 
– 박진성, '대숲으로 가다-1996년' 부분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우발적이고 우연적으로 밀어닥치는 비극들, 삶의 면면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성장과 성숙이라는 말은 내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아픔을 견디는 일에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뿐이었다. 해를 더할수록 울분, 그리움, 애잔함 같은 감정이 뒤섞인 덩어리는 커져만 갔다. 그래서 박진성 시인의 시에 담긴 풍경이 가슴에 꽂힌다.

나는 아직도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최승자, '나의 생존 증명서는') 같은, 시대를 대변하는 시구들과 만날 때마다 아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375쪽)라는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고백이 피상적인 위안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나의 아이> /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 홍종락 옮김 / IVP 펴냄 / 544쪽 / 2만 5,000원 ⓒ뉴스앤조이 최승현

인생은 복잡하다. 그 복잡성은 찬양 가사처럼 "오직 예수"라는 말로 치환할 수 없다. 우리 푯대를 이야기할 때면 얼마든지 신앙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의 자리를 논할 때면 '해답'을 내리는 태도는 하우어워스의 지적처럼 "지금 세상의 모습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입하는 현실 순응적 교회의 모습을 반영"(375쪽)할 따름이다. 현실의 자리에 있는 복잡다단함을 끌어안을 수 없기에 논의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기독교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회고록 <한나의 아이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IVP)는 용기를 준다. 먹먹함과 답 없음을 앞에 두고도 어떻게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하우어워스는 말한다.

"우리를 둘러싼 기독교가 많은 부분 욥이 겪은 것과 같은 고뇌에서 하나님을 보호함으로써 체면을 유지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면, 그분에게는 우리의 보호가 필요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호가 아니라 진리를 요구하신다." (217쪽)

24년간 이어진 그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은 실패로 끝이 났다. 아내 앤은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았고, 그녀에게서 때때로 발현한 '삽화'(episode)는 부자(父子)를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하우어워스와 아들 애덤에게 시급한 것은 '살아남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는 절박했고, 가정에서 펼쳐지는 비극 앞에 무력했다.

"나는 앤과 결혼을 했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대놓고 말하곤 했다. 또 종종 자기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잠자리를 하면 간통이 된다고 했고, 가끔은 내게 바람을 피우라고 권하기도 했다." (280쪽)

"나는 그녀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저 삽화의 빈도를 조절할 길을 찾거나, 적어도 그녀가 그것을 원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앤은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내가 자기 인생에서 빠져 줄 때 비로소 건강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앤의 입장에서는 방해거리에 불과했다." (339쪽)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하우어워스는 후기에서, '친구들에 대한 간증'이라는 부제를 달고 싶었다고 밝힌다. 하나님은 그에게 좋은 친구들을 허락했다. 그는 주변 인물들을 묘사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이 책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내가 앤과 함께한 세월을 버텨 낸 것은 부분적으로는 나의 끝없는 에너지와 꿋꿋함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상황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502쪽)라는 그의 고백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어떤 이들은 <한나의 아이>를 "잔인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하다고 평했다. 하우어워스는 솔직함을 기조로 회고록을 서술했다. "나는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될 의도가 없었다"라는 인상적인 첫 문장이 나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미국 텍사스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노동'을 배운 그가 2001년 <타임>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되고 오늘에 이르는 과정은 그래서 뜻깊다. 탁월한 신학자의 내면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

하우어워스의 어머니는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아이를 달라 기도했던 한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아들을 얻었다. 책 제목이 <한나의 아이>인 이유다. '한나의 아이'였던 그의 일생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하우어워스는 <한나의 아이>를 쓰면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에 "사실 내가 배운 것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다"(506쪽)라고 답한다.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배움의 과정으로 정의한 것인데, 그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짚게 만든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375쪽), "나는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다"(501쪽)는 하우워어스의 말은, 우리가 평생 어떤 태도로 신앙해야 하는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나는 평생을 교회에서 보낸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중략)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놀랍고 멋진 삶은 여전히 내게 과분하게 다가온다." (4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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