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한국 사회를 사는 '여성'에게 '외모'는 피하기 힘든 꼬리표다. 지하철 광고는 성형수술한 여성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연예 방송에서 리포터가 여배우에게 하는 질문 중 '피부 관리법'은 빠지지 않는다. 댄스를 선보이는 여자 아이돌 영상 밑으로 '꿀벅지 소유자'라는 자막이 깔린다.

6월 3일 여성환경연대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의 외모, 몸에 대한 편견을 논하는 콘퍼런스를 마련했다. 방송인 따루 씨,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여경 씨, 플러스 사이즈 패션 컬처 매거진 <66100> 김지양 편집장, 녹색병원 산부인과 윤정원 과장이 패널로 나왔다.

각각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외모지상주의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주일 살기 △살찔 권리, 시선에 대한 폭력 저항하기 △성기 성형, 즐거울 권리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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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경쟁 수단이 된 나라

방송인 따루 씨는 한국에 온 지 18년차. 외국인 여성들과 한국 문화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다.

외모 지적은 물론 칭찬도 잘하지 않는 핀란드에서 온 그에게 한국 문화는 말 그대로 '컬쳐 쇼크'였다. 핀란드에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수없이 경험했다. "살만 빼면 예쁘겠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눈이 예쁘다"는 외모 평가도 한국에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이렇다. 일상에서 외모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곳곳에 미용 산업이 넘쳐난다. 포토샵으로 작업한 사진을 이력서에 첨부하고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감행한다. 얼굴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어린 학생도 성형수술을 한다. 머리 큰 사람이 평소 자신의 머리 사이즈를 개그 소재로 삼는다. 여성은 능력보다 '예쁘면 다'라는 인식이 있고 첫인상이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그에게는 이런 일들이 하나하나 충격적이었다. 핀란드는 구직 활동 시 이력서 사진을 요구하지 않고, 어린 학생이 성형수술을 하는 케이스도 찾기 드물다. 나이 든 사람도 칼을 대는 수술 대신 보톡스를 맞는 시술을 한다. 부모조차 자녀에게 얼굴과 외모 평가를 하지 않는다.

따루 씨는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경쟁이 극심하다 보니, 외모도 서로 경쟁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해 이런 분위기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모 대신 오늘 날씨를 물어보자

따루 씨 말처럼, 한국 사회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로 일반인을 '미인'으로 바꿔주는 TV 쇼 프로그램 '렛미인'이 흥행하기도 했다. 얼굴을 많이 고치면 '성괴'(성형 괴물)라고 부르고 살이 찐 사람은 뚱뚱하다고 멀리한다. 마르면 말랐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거의 십 분에 한 번은 외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아요. 지하철 맞은편 여자 눈썹 모양이 어떻다느니, 남자 어깨가 아쉬웠다느니, 주말 동안 많이 먹어서 부었다느니. 오늘 좀 건강해 보인다느니."

과연 한국인은 외모 이야기를 빼면 할 이야기가 없을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여경 씨는 외모 얘기 안하고 일주일 살기 캠페인을 소개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대화 중 칭찬이든 지적이든 외모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료 직원이 머리 모양을 바꿔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취미 생활, 날씨, 여행 이야기 등을 꺼낸다. 매번 반복되던 대화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쉽진 않다. 곧 얼마나 많이 외모 이야기를 했는지 알게 된다. 일주일이 끝날 즈음이면, 상대를 외모 외에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내 몸은 내 거야", "신경 꺼 줘 제발"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뉴스앤조이 최유리

시선 폭력에서 자유로워지자

플러스 사이즈 패션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가 주제인 독립 잡지를 만드는 김지양 씨가 다음 패널로 나왔다. 그는 자기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에게 내면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를 당했다. 연애가 잘되지 않았고, 지인에게 소개팅을 요청하면 "살부터 빼고 와"라는 답변을 들었다. 엄마에게는 "놔 줬더니 저 모양이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차,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도전슈퍼모델코리아'에 출전한 것이다. 비키니 심사를 보는 2차에서 떨어졌지만, 그는 이후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하기로 결심했다. 카메라 앞에서 풍만한 몸을 부끄럼없이 드러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김지양 씨지만 종종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는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에는 "저 사람 몸 좀 봐. 뚱뚱해" 또는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뚱뚱한 사람을 게으른 사람, 자기 관리 안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역시 편견으로 본인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간 잡지 만들며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난 정말 게으른 사람인가? 날 사랑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다. 김지양 씨는 이후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옥죄는 타인의 시선, 자신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겠다고 결론냈다.

"혼란스러울 때 어떤 분이 저에게 말했어요. '겨울은 계절이 아니에요? 봄만 계절인가요?' 여러분은 겨울이 봄처럼 예쁘지 않다고 계절로 취급하지 않고 계신가요? 아니에요. 겨울도 계절이에요. 겨울은 봄에는 없는 아름다운 게 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겨울이어도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까매도 문제 없다

산부인과 의사 윤정원 씨는 성기 성형을 주제로 잡았다. 그는 그간 한국과 외국에서 여성의 성이 자본, 미디어, 가부장제에 갇힌 모습으로 등장했다고 말을 꺼냈다. 여성 중심이 아닌 남성 중심으로 본 성이었다. 성기에서 꽃 향기가 나야 한다며 판매된 질 세정제의 광고 문구는 "깨끗하지 않으면 남편이 떠난다"였다. 여성들에게 판매된 한 세정제는 욕실 세제 성분이 사용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미디어와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의 성은 성기 성형 권유로 이어진다. "늘어나고 착색된 소음순을 정상에 가깝도록 복원"이나 "분홍빛 예쁜 소음순 성형"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면, 검은 소음순이 문제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소음순 색깔이나 모양은 성관계에서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왜 제 소음순은 색깔이 까맣죠?"라고 질문한다.

도대체 핑크빛 소음순의 환상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그는 '포르노'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윤 씨는 성기 성형 상담을 받는 여성은 대개 파트너가 원해서 병원을 찾아온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남성이 시중에 유통되는 포르노로 성기의 정상 범주를 정하고 내면화해 파트너에게 강요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떤 병원은 G스팟을 강화하기 위해 질에 필러를 주입한다고 광고하는데, 이는 전혀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시술 전후를 비교한 실제 사진이 없을 뿐더러 학계에서 증명된 이야기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케겔 운동(반복적으로 항문에 힘을 줬다가 빼는, 골반 근육 강화 운동)을 추천했다.

▲ 패널들이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여경 씨, 녹색병원 산부인과 윤정원 과장, <66100> 김지양 편집장. ⓒ뉴스앤조이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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