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신촌 이화여대 후문 인근에 색다른 극장이 있다. 화제작, 흥행작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동주', '드롭박스', '일사각오', '4등', '하나와 미소시루' 같이 잔잔하지만 의미를 담은 영화를 상영한다. 큰 관심이 없다면 개봉한 줄도 모르고 지나갈 법한 소위 '예술영화'라 불리는 작품이 대다수다.

독립·예술영화 전용 극장은 멀티플렉스 극장처럼 숫자가 많진 않지만 서울 광화문, 홍대 근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촌에 있는 '필름포럼'이 이 극장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독교와 연관성이 깊다는 것이다.

2012년 기존 예술극장을 인수해 시작한 필름포럼. 90석, 52석 개봉관 상영작 중에는 기독교 영화가 항상 포함되어 있다. 극장 대표는 성현 목사다. 임성빈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원장으로 있는 문화선교연구원을 모체로 시작한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극장은 일요일 오전에는 한 교회의 예배당으로도 쓰인다.

내부만 보고는 이곳이 극장임을 알아채기 어렵다. 계산대 앞에는 1940년대에 사용하던 붉은색 시보레 트럭 범퍼가 붙어 있고, 곳곳에 빈티지 스타일 탁자와 철제 의자가 놓여 있다. 커피를 내리는 공간 반대편에는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작은 무대도 마련했다. 봅슬레이와 주황빛 손 모양 의자로 공간을 꾸몄다.

손님들도 영화 관람만을 위해 이곳에 오지 않는다. 저렴한 비용에 세미나실을 사용하러, 멕시코 공정 무역 커피를 마시러, 필름포럼이 진행하는 아카데미에 공부하러 이곳을 찾는다. 기자가 필름포럼을 찾았을 때도 북 클럽이 한창이었다. 백광훈 목사(문화선교연구원 부원장)의 인도로 다섯 명이 모여 기독교 변증가 라비 재커라이어스의 <경이로움>(베가북스)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있었다.

삶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영화

그동안 필름포럼은 꾸준히 예술영화를 상영해 왔다. 필름포럼은 예술영화라는 장르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각자 성찰한 것을 나누기에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답을 준다. 스타 마케팅과 거대한 물량이 들어가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2~3시간 안에 답을 줘야 한다. 극장을 나갈 때 관객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개운한 느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술영화는 답 대신 관객의 삶에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성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그 예로 이번 5월 10일~15일까지 열린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소개한 싱가포르 출신 에릭 쿠 감독의 '휴일 없는 삶'을 소개했다. 싱가포르로 돈 벌러 간 이주 여성이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일하는 집에서 아이가 영어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하지만 여성이 영어를 못하니 무시당하는 상황, 집주인이 토한 흔적을 치우는 장면 등이 나온다.

주인공 여성은 힘들 때마다 아기 사진을 보며 버틴다. 5년 뒤 반전이 펼쳐진다. 벌판에 한 집이 있고, 여성이 아이에게 자신이 고생한 대가로 마련한 집을 보여 주며 "이제 너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며 끝이 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성 대표는 내 주변에 저 여인 같은 사람은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됐다고 했다.

이것이 예술영화의 장점이자 기독교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세상이 더 높은 곳,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이야기할 때 예술영화는 자기와 주변을 돌아보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사람들 마음을 밭갈이하는 것이다. 

필름포럼은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가치관에 입각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상영한다. 가족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와 미소시루', 부끄러움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동주', 장애인 아들 때문에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고 900명이 넘는 신생아를 살릴 수 있었던 이야기를 담은 '드롭박스' 등이다. 

아카데미부터 찾아가는 영화관까지

5월부터는 필름포럼 아카데미 1기도 시작했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영화와 영상, 스토리텔링, 다큐 제작, 예술 치료 등 영화 관련 수업부터 스피치, 북 클럽, 드라마로 보는 정신분석 수업도 있다. 기존 기독교 단체에서 가르치는 학문적이고 신학적인 내용보다 실제적인 문화 콘텐츠를 주제로 삼았다.

아카데미 강사는 기독교인들이다. 하지만 비기독교인도 강의에 참여한다. 교회에서 열리는 아카데미에 비기독교인이 참여하기 어렵지만, 영화관이라는 특수성을 매개로 비기독교인도 만나고 있다. 수업에 기독교적 가치가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꿈꾸지만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너무 신학적이면 어려울 수 있다. 깊이 있게 배우는 게 필요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삶에 와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있었다. 교회는 계속 배우라고 말하는데 실제 실현하는 장이 부족하다. 필름포럼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양식을 느끼고 경험하면 좋겠다. 회심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관, 카페, 아카데미만 하는 건 아니다. 찾아가는 영화관, 공간 대여 등 안팎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출구를 만들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신청하면 전문 영상팀이 구비해 둔 영사기를 들고 지방까지 찾아간다.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세미나실을 대여해 주고 있다. 단체들이 와서 영화 상영회를 하거나 실내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필름포럼은 카페나 세미나실을 방문하는 청년들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영화도 보고 기독교적인 메시지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간을 대여한다.

"필름포럼이 세상과 소통하려는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싶다. 다양한 방식, 모임, 형태로 기독교 문화 생태계를 복원하는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그런 영화관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지역 교회들에게도 좋은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장을 제공하고 싶다."

필름포럼 홈페이지: http://www.filmfor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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