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금요일 저녁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재즈, 힙합, CCM, 인디 음악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저녁 8시. 넓진 않지만 아지트 느낌 물씬 나는 이곳에 사람들이 입장한다. 많으면 50명, 적으면 10명 내외의 관객이 함께한다. 공연을 보고 간, 하고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따뜻했던 시간과 공간'으로 기억한다.

성북구 성신여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나니아의옷장'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기독교 문화 공간'으로 통하는 곳이다. 4월 29일(금) 나니아의옷장 이재윤 대표를 만났다.

▲ 매주 금요일 나니아의옷장에서는 다양한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CCM 가수만 오는 건 아니다

공연장 이름은 C. S.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 소설에서 옷장은 새로운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이 대표는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도 새로운 세계로 연결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름을 나니아의옷장이라고 지었다.

공연장 근처에는 옛날 건물이 즐비하다. 동네 슈퍼, 커피숍, 모텔, 미용실이 있다. 음악과는 거리감 있는 듯한 분위기 때문인지 실제 그곳에 들어서면 '다른 세계'에 접속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매주 금요일 저녁 라이브 공연을 연다. 티켓값은 만 원이다. 개관하고 1년 4개월 동안 다양한 아티스트가 무대에 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뮤지션이자,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뮤지션은 신앙이 담긴 복음성가를 부른다. 어떤 뮤지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이별 얘기가 담긴 노래만 부른다. 꼭 종교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방침은 없어 무대에는 CCM 가수 외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가 나온다.

"이런 곡을 해 달라, 간증을 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이든지 크리스천 아티스트가 세상, 관객과 음악으로 소통하면 된다. 오시는 분 중에 신실한 크리스천이 많다. 어떻게 크리스천 뮤지션의 정체성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분들이 오신다.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 놓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서든지 이 공간에서 잘 풀어냈으면 좋겠다. 의도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는 경우도,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 인터뷰를 하는 날, 이한얼 트리오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 입장료는 만 원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실은 '공연장 교회'

올해는 음악 공연 외에도 새로운 기획을 시도 중이다. 찬양 '말씀하시면'을 작곡한 김영범 찬양 사역자가 지난 3월 '문학의 밤' 콘셉트로 공연을 기획했다. '옹기장이' 노래를 부르고 시 낭송, 중창을 선보였다. 1980~19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려 출연자들은 청치마를 입었다.

최근에는 드럼 연주자 김대형과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기존 방식과 달리 연주 없이 대화로만 2시간을 꾸렸다. 처음 시도한 방식이었지만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관객도 많이 왔다. 5월에는 세월호 미수습자 어머니를 이야기 손님으로 모시고, 뮤지션 장현호 씨가 나와 노래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나니아의옷장 이재윤 대표는 주님의숲교회 담임목사다. 2015년 1월, 교회 개척을 하며 성도들과 나니아의옷장을 만들었다. 목회 전, 이 목사는 문화 사역에 종사했다. 밴드를 했고, 크리스천 뮤지션의 공연 기획을 맡았다.

공연 문화에 익숙한 그가 목사가 되었다. 교회 공동체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동체가 함께 문화 사역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고민의 결과 나니아의옷장이 만들어졌다. 그는 한마디로 '공연장 교회'라고 설명했다.

7명 정도가 개척한 교회는 현재 15~20명이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성도들은 교회의 방향성에 적극 동의한다. 본인이 쓰는 베이스, 드럼, 건반을 나니아의옷장에 제공했다. 미술, 연극 등 문화 예술 종사하는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어떤 행사를 하면 좋을지 의사를 개진한다.

품이 많이 드는 공연 섭외를 돕고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 '금요 라이브 공연'에 스텝으로 참여한다. 이 목사를 만난 4월 29일(금) 저녁에도 한 성도가 인터뷰 도중 나니아의옷장에 들어섰다. 이날 있던 이한얼트리오 공연을 돕기 위해서였다.

물론 어떤 때는 아무도 공연을 보러 오지 않을 때도 있다. 성도들끼리 순번을 정할 수도 있지만 이 목사는 '금요 철야 반주자'를 돌리는 것처럼 느껴져 자율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꾸려 가자고 제안했다.

금요 라이브 공연 외에도 나니아의옷장에서는 격주 목요일마다 '불어 성경 모임'이 열린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온 성도가 주변 프랑스인들과 하는 모임이다. 외로운 타국 생활을 하는 프랑스인들은 이곳에서 성경 공부도 하고 요리도 같이 해 먹는다.

이 목사는 모임의 방향성이나 형태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다. "불어를 못하기 때문에 끼지 못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목사가 하나하나 살펴보기보다 모임을 하는 성도들이 방향을 잡고 끌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니아의옷장의 방향성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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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으로 전하는 복음의 가치

지금은 여력이 안 돼 시도하지 못하지만, 하고 싶은 게 아직 많다. 그중 하나가 '나니아식당'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요리를 해 먹는다. 뼈찜이나 닭갈비 등 조리법이 간단하지 않은 음식을 한다. 횟수가 많아지면서, 그는 사람들이 둘러앉은 식탁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지난해 나니아의옷장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니아식당'에 초대하는 공지 글을 띄우기도 했다. 만나서 딱히 하는 건 없다.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눈다. 이 목사는 나니아식당의 부족함을 메울 아이템을 찾고 있다. 식당과 공연과 접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나니아스토어'다. 들어오는 입구에는 작은 판매대가 있다. 잠비아로 문화 선교를 간 자매가 만든 수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한 아티스트의 제품만 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더 많은 판매대를 제공하고 싶다. 수공예 클래스도 열고 싶다. 7~8명이 함께 모여 물건을 직접 만들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이 목사는 이 일로 사람들에게 복음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 그가 말하는 복음의 가치는 기독교 세계관이 투영된 가치다. 꼭 예수의 일생, 십자가, 부활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삶에 스며든 가치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나니아스토어에는 'one and onl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물건과 사람이 하나의 소모품처럼 대량 소비되는 시대에, 소량 생산된 물건으로 '가치'를 말하고 싶다. 하나밖에 없는 개인의 개성, 존재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는 게 복음의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라 여긴다. 예수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겼다.

"크리스천은 복음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를 꼭 교회 용어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 용어로도 전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용어가 나니아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십자가를 단 팔찌'라면, 세상 용어는 수공예 클래스에 담긴 가치를 말한다. 나니아의옷장은 스펙트럼이 넓은 복음의 가치를 보고 실천한다. 그래서 금요 라이브 공연에 굳이 CCM 가수만 초청하지는 않는다."

▲ 나니아의옷장 한편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한다. 물건이 대량 소비되는 사회에서 'one & only'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 싶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소수지만 신앙으로 할 수 있다"

이 목사와 성도들에게 나니아의옷장이 지닌 의미는 크다. 이곳을 대극장처럼 덩치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친 현대인들이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장소, 갈증을 채워 주는 우물이 되길 바란다.

뮤지션에게는 '공연할 수 있는 무대와 즐길 줄 아는 관객'을 선물하고 싶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성원은 소수지만 대형 교회의 후원을 받지 않고도,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 주고 싶다.

나니아의옷장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narnia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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