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

신대륙 발견에 이어 청교도들의 이주로 시작된 아메리카 연방국, 곧 미국은 전 세계 다른 국가보다 역사적인 전통이 취약하다. 하지만 풍부한 자연 자원과 유능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단점을 극복하고 세계의 우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 시대를 가리켜 '팍스 아메리카나'로 말해도 결코 무리라고 볼 수 없는 까닭은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힘이어 세계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의 문제로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할 때부터 미국인들은 소명을 갖고 있었다.

특히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후, 세계가 급격히 냉전 체제로 돌입하면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대변하는 국가임을 자국민에게 각인해 왔다.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당한다고 여겨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미군이 주둔하였다. 국가 체제의 사회주의화, 혹은 공산화를 막아 주려 노력했다.

동·서독의 통일, 소련의 붕괴로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미국은 소수민족 보호나 인권 보호, 혹은 테러 방지라는 미명하에 전쟁을 불사하였다. 전쟁의 결과가 항상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의 개입은 국내의 정치적 혹은 군사적 갈등을 해결하여 혼란을 진정시키는 것 같아 보여도, 그들이 떠난 후로는 오히려 국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남북 분열은 물론이고, 소모적인 전쟁으로 끝났던 베트남전쟁, 이라크 전쟁 이후의 혼란, 그리고 현재 수많은 유럽 망명자를 낳고 있는 시리아 내전 역시 그 배후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개입이 작용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엄밀히 말해 강대국의 개입은 세계 약소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일까.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미국의 역할을 불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역할은 있어야 하되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말인가.

▲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어벤져스를 관리하려는 정부의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두고 찬성파(팀 아이언맨)와 반대파(팀 캡틴)으로 나뉘어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를 만든 루소 감독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미국의 자기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영화에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추측이 강하게 드는 것은 영화 내용과 캐릭터를 보면서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렇게 빗나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어벤져스에 속한 영웅들의 활약 덕분에 악한 세력은 제거되고, 위협받는 시민들은 안정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죄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또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미 영웅들 개개인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이었는데, '시빌 워'는 이 문제를 중심 화두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어벤져스의 활약이 필요한 상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고로 그들의 활동을 무조건 제약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듯이 어벤져스의 힘에 비례하여 악의 세력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벤져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해체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편을 모색할 것인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내놓은 대안은 어벤져스로 하여금 '슈퍼 히어로 등록제'라는 유엔 협정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협정에 따라 어벤져스 영웅들의 활동을 유엔이 통제하는 것을 그들의 활약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다.

이런 제안을 놓고, 어벤져스는 서로 갈등하고,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협정에 서명하는 편과 서명하지 않는 편으로 분열한다. 반대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마도 국가 이기주의에 따른 부조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일 이렇게 되면 국가 차원에서 악의 세력이 출현했음에도 유엔을 통해 요청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팀 캡틴(위)와 팀 아이언맨(아래) 양쪽 진영에 속한 히어로들의 모습.

한편, 이들이 협정 관련해서 내홍을 치르고 있는 중에 악의 출현을 예상할 수 있는 큰 문제가 발생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내분을 넘어 그야말로 내전이 일어난다. 사실 문제는 과거 영웅들의 싸움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에 의한 복수였다. 악의 출현이 아니라 복수였다. 그는 어벤져스 사이에 내전을 일으켜, 그들을 무력화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내전을 일으키는 의도를 간파한 영웅들은 극적으로 서로 화해한다.

여기서 어벤져스, 특히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협정 체결에 반대했던 팀들은 누구를 가리킬까. 캡틴 아메리카가 끝까지 유엔 협정에 서명을 하지 않고 영웅 역할을 계속 이어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아니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세계 속 미국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보이지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

'시빌 워'는 화려한 영상과 생생한 액션, 실감 나는 이야기 모든 부분에서 많은 사람이 감동받을 만큼 잘 연출된 작품이다. 기존 영웅 서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며, 특히 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서 정석을 보여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적합한 때와 장소에 출현한 영웅들의 활약은 결코 지나치지 않았고 또 어느 하나에 편중되지 않았다. 액션은 숨 쉴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을 동반한 것이었다. 다소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게 흠잡을 만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영상미에 휘둘려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세계 속 미국의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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