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청년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이들과 대화하면서 이들이 하나님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아팠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주어야 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섭고 난폭하고, 가정도 버려야 하고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런 분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교회라는 곳 또한 광신도들이 모여 있는 비정상적인 집단이었다.

이는 필자가 볼 때, 비신자들뿐만 아니라 교회에 다니고 있는 교인들이나 신자들 중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님의 용서하심, 깨끗케 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복음에 젖어 드는 인격과 삶의 향기에는 관심이 없다. 창조 전부터 하나님이 품고 있었던 구원 계획과 삼위 하나님 간의 사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도 모르고, 부활 후에 오셔서 교회와 성도를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 신앙은 고통스럽다 못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신앙이 왜곡되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없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는 하찮은 신, 이방 종교식으로 다루어지는 가벼운 신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거룩한 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예배가 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인간의 종교성만 남아 있는 타락한 곳이 될 것이다.

감동이 있는 삼위일체론 해설서

▲ <선하신 하나님> / 마이클 리브스 지음 / 장호준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210쪽 / 1만 2,000원

이 책의 제목은 <선하신 하나님>(복있는사람)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정말 제목을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도서 판매를 위해 대중적인 제목을 붙였다고 말하기도 한다(출판사 입장은 모르나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고, 그 아버지의 영광을 누리게 하려고 삼위 하나님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펼쳐지는지 성경 구절과 다양한 비유로 설명한다. 감동이 있는 삼위일체론 해설이었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이 된다. 1장은 '창세 전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를 다룬다. 여기서 저자는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은 창조자와 통치자라기보다 생명을 주는 존재시며, 자녀를 낳는 아버지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피조물에 의존하시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아들에게 주시고, 만물에게도 그 영광을 주시는 풍성하고 자애로운 성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2장은 '창조: 흘러넘치는 성부의 사랑'을 다룬다. 여기서는 단일신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지와 단일신론이 근본적으로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삼위 하나님이 얼마나 그 사랑과 사귐과 영광을 외향적으로 나누시는지도 탁월하게 설명한다. 또한 삼위 하나님께서 창조를 어떻게 이루시는지를 말한다. 말씀과 성령을 두 손 삼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기운을 넣으시는 창조를 그려 내고 있다.

3장에서는 '구원: 자신의 것을 나누시는 성자'를 설명한다. 사랑의 대상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선 뒤틀려진 인류를 향한 삼위의 사역을 그려 내고 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 그 사역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성부의 사랑이 성자에게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무미건조한 사랑이 아니라 사망에 맞서고 악과 싸우며 생명을 주는 강렬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별히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을 읽어 갈 때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4장은 '그리스도인의 삶: 아름답게 하시는 성령'이다. 여기서는 성령은 어떤 힘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성부와 성자처럼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감사한 분이며, 죽음에 새 산소를 주어 생명을 주는 존재로 소개한다. 그리고 일관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조명하셔서 예수님의 사역과 삶과 성품을 가르쳐 주는 성령님의 사역을 알려 준다. 또한 성령님이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이 형상을 따라 새롭게 되는 변화의 중심에 서서 끝까지 견인해 간다고 설명한다.

5장은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에서는 현대 교회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빈약해지고 바르게 가르쳐지지 않기에 교회가 무장해제되고 교회에 무신론적이고 이신론적인 생각이 스며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존재 중심에서부터 사랑을 흘러 내시고 자기를 내어 주시는 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를 참고하여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영광을 다루고 있다.

단일 신과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떻게 다른가

책의 특징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삼위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책 전체에서 단일신론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이슬람의 알라가 자주 등장한다. 신학과 교리사에 정통한 저자가 최근에 나온 미로슬라브 볼프의 책 <알라>에 나오는, 인류의 악을 제거하고 평화를 위해 하나님에 대한 해석을 공유될 수 있다는 논지를 반박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알라가 99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중 "사랑하는 자"라는 이름도 있지만, 창조 전에 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진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내어 주는 삼위의 존재나 성품과는 달리, 알라가 단일신론적인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신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생각할 수 있듯 단일 신은 본질상 외롭고 혼자 있는 신이기에 자기 자신에게 함몰될 수밖에 없고 외향적으로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 그가 하는 '창조' 또한 창세 전부터 사랑과 사귐이 없었기에 피조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조물 위에 군림하여 자기 사랑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단일 신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군사적이고 강압적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거래와 힘으로 이루어지는 조건일 뿐이다.

삼위 하나님은 다르다. 창세 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서로를 한없이 사랑하는 영원한 사귐으로 존재하셨다. 성부는 모든 것을 내주시는 하나님, 성자는 순종하며 내주시는 하나님, 성령은 친밀함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서로 간에 조금의 불일치도, 갈등도, 시기도, 원수 맺음도 없었다. 완전한 조화와 일치 속에 영광과 능력과 권능이 동등하시고, 본질상 하나로 존재하신 삼위 하나님이셨다.

이 세 분이 창조를 이루셨고, 생명의 기운을 이 땅에 불어넣으셨다. 성부께서는 죄로 망가진 세상에 당신의 빛과 영광을 지닌 성자를 보내서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믿는 자들에게 나누는 일을 하셨다. 성자를 상속자의 반열에까지 세우셨다. 성령께서는 이 성자를 통해 인생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인도하시고, 그 인격이 하나님 형상을 지속적으로 닮아 가도록 이끌어 가신다. 또한 인생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구원, 그 중심에서 일하신다.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또 이 책은 성자로 성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와 히브리서를 제시해 성자 하나님의 사역과 존재, 그분의 목적을 보여 주고 있다. 성자는 성경의 주제이시고 성부를 계시하는 분이시며 참된 성전, 참된 대제사장이고 영원한 제물이 되시며 만왕의 왕이시다. 성자로 성부를 본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이 지극히 관계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성자를 통하여 충분히 알려지셨다는 것이다.

구약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가슴에 이스라엘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이 박힌 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용서받고 백성을 하나님 앞에 세운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성자께서는 친히 가슴에 성도의 이름을 새기고 하나님께 나가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자로 이 땅을 살아가고, 그런 사랑을 나누는 자로 세우기 위해 친히 보석을 품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들어가신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 가게 된다. 우리가 예배하고 닮아 가야 되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삶이 변해야 한다고 많이 가르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알라고 힘써 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본성이 변하고, 인격이 거룩해지고 삶의 아름다워진다. 어떤 업적을 남기거나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라는 게 아니다. 존재 자체가 죽음이었던 자리에서 꽃을 피워 내신 주님의 모습을 따르기 위해 알라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죽기까지 내어 주시는 분이시다. 자신에게 함몰되어 자신이 주인되고 우상화가 된 괴물 같은 분이 아니시다. 은혜와 긍휼의 아버지시고 십자가까지 감당해 내시는 분이다. 이 책을 읽고,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하는 삼위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교회에서도 삼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방영민 / 전주서문교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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