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만난 뒤 현 서울중국인교회 목사 최황규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신학대학원 시절, 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상아탑에 남아 후진 양성에 힘쓰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대학원에 수석으로 입학한 그는 남달리 학업에 정진했다.

하지만 1999년 어느 날 그는 문제의 중국인 쉬버(徐波)가 곤궁한 처지에 있는 것을 목격한 뒤 그길로 자기 땅에서 쫓겨난 한족 속으로 뛰어들었다. <황하의 물결>(홍성사)은 최 목사가 그 과정에서 겪은 사정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내밀한 필체로 고백한 현재 진행형의 회고록이자, 한족 선교사 이야기다.

"구름 기둥 불기둥도 없이 걸어가는 중국인을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차마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쉬버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는 해를 거듭하면서 그 보폭을 차별받는 조선족, 언어 소통의 문제로 조선족보다 더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는 국내 체류 한족으로 넓혀 갔다. 특히 한족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양가감정을 불러오는 민족으로 남아 있던 터라 그가 한족을 돕자고 나설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 <황하의 물결> / 최황규 지음 / 홍성사 펴냄 / 320쪽 / 1만 5,000원

반대는 양 방면에서 표출되었다. 중국인들을 '떼놈'이라 부르며 무시했던 한국인들은 그들이 세계 경제 2위의 대국으로 성장한 뒤에도 낮춰 보는 경향이 적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한족이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 한족에게 멸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조선족들 역시 체류 한족도 같은 대접을 받아 봐야 정신 차릴 거라는 의식이 강했던 듯하다. 한족들은 물적 응원은 커녕 심정적 지원마저 기약할 수 없는 환경에 내몰려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할 도구조차 갖추지 못했다. 쉬버가 중국을 탈출해 1년여 한국에 머물면서 실질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못한 1차적인 이유로 언어 소통 문제가 있었다. 자신을 도울 인력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난민 인정에 무심한 정부와 중국 민주화를 기대 난망으로 보고 거리를 둔 인사들의 틈바구니에서 조력자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최 목사도 처음에는 쉬버에게 울타리라도 되어 주고 싶은 심정에, 쉬버의 거처를 자신의 집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당한 권리를 누리기는커녕 낭설과 오해로 피난처에서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쉬버의 처지를 어떤 형태로든 공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 목사가 볼 때 쉬버는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유폐된 사람이었다.

당장에 최 목사는 쉬버를 포함한 체류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의 처지를 신문사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알리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한국 정부로부터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이 난민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 경험은 그 뒤 줄곧 최 목사를 추동했다.

"당연히 우리 힘으로 교회를 세워야지요. 목사님이 우리 중국인들 돕다가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살해 위협까지 당하신 거, 우리가 다 지켜보았습니다."

최 목사가 조선족과의 동행을 결심한 것 역시 소외 속에 거칠게 살아가는 이들을 외면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쉬버라는 실체에 발을 담근 그를 교계가 놔두지 않았다. 서경석 목사와 함께 조선족과 부대끼는 가운데 최 목사는 그들의 현실과 고투를 또렷이 알게 되었다.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한 달가량 일하면 중국에서 1년이나 2년치 벌이가 되었던 터라 법정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불법체류자로 남았다. 최 목사는 강제 추방이라는 사형선고에 노출된 그들의 불안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 최 목사는 조선족의 현실을 고발하고 처우 개선과 권익 향상에 나선 한편, 내부 결속을 다지고 대국민 인식 제고를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했다.

중국인과의 동행 역시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다만, 이 경우에는 더 견고한 뜻이 바탕에 흘렀다. 쉬버를 통해 체류 한족의 현실에 눈뜬 최 목사였기에 조선족과 생활하면서 근거리에서 접한 또 다른 고립무원은 기필코 바꿔야 할 세상으로 다가왔다.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간 최 목사는 그곳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족들의 자발적 헌금으로 교회를 세웠던 것. 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알려진 한족이 자신들의 돈을 기꺼이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는 최 목사의 못 말리는 애정과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저돌적 성격이 뒷받침되었다. 불법체류자를 감쌀 경우 실정법에 저촉된다는 위험도 그를 물러나게 하지 못했다.

인권이 법에 앞선다는 신념으로 막판까지 그들 곁을 지킨 최 목사에게 그들은 무한 신뢰를 보냈다. 더불어 교회가 그들에게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했다. 건축 헌금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최 목사에 얽힌 지금까지 일화는 '특별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의미가 없다. 어떤 이야기든 그 안에는 살아 숨 쉬는 꿈이 있다.

<황하의 물결>은 차별 없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꿈이 최 목사의 일거수일투족에 담겼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한복음 3:16)." 자기들만의 성채를 만드는 데 혈안인 세상이다. 무슨무슨 향우회와 갖가지 이름의 동호회, 각종 명목의 회합이 그물코처럼 곳곳에 드리워 있다.

'우리끼리 잘 살고 잘 먹으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팽배해질수록 하나님의 고른 사랑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이 적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일 것이다.

우리는 곧잘 비집고 들어갈 요량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형편상 내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곳에서 발을 뺀다. 그러고도 입으로는 하나님의 공평하신 사랑을 되뇐다. 최 목사는 우리의 그런 안이함과 몰사랑에 크게 경종을 울린다.

그는 자신이 꿈꾸었던 길과 다르다는 이유로 물러서지 않았다.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는 마음 하나로 한낮의 뙤약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 아니었을까. 아무도 보듬어 주지 않은 곳, 마음 둘 곳 없는 그곳에 아들 예수를 보낸 그 마음 말이다. 읽는 내내 심중이 흔들리고 영이 한사코 들떴다. 일독으로는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두 번 이상 읽기를 권한다.

참고로 '빠바 무스'는 중국어로 아빠 목사다. 그 말에서 최 목사를 대하는 체류 한족들의 애정이 살갗 위로 볼록하게 튀어 오른다. 

김정완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네이버 파워 블로거, 평신도 사역자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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