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은 교회> / 루스 A. 터커 지음 / 최요한 옮김 / 예수전도단 펴냄 / 288쪽 / 1만 3,000원

나는 가끔씩 재래시장에 가기를 좋아한다. 재래시장에 가면 대형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상품들이 있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메이커 제품들보다는 뭔가 부족해 보이고 균일한 신뢰성과 안정감을 주지는 못하지만,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정감미가 있다.

사역하는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형 서점과 전통 있는 최대의 기독교 서점이 자리하고 있지만, 나는 동네 서점을 간다. 사장 되시는 집사님이 한 번 바뀌었지만, 20년 넘게 그곳을 애용한다. 최근 몇 년간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예전보다 자주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곳을 가끔씩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안그래도 어려운 동네 기독교 서점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리고, 가끔씩 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재래시장이나 작은 기독서점은 사람냄새가 난다. 대형 서점과 마트는 재래시장보다는 균일된 상품의 신뢰도와 저렴한 가격, 편리성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과 소형 서점과는 달리 거리감이 작용한다.

교회도 그런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고3때까지 남산 자락의 가족 같은 분위기의 작은 교회를 다니다가 그 교회가 갈라져 대학 중반까지 분리된 교회를 다녔다. 그후 재야 신앙생활을 1~2년 한 후에 나는 반포의 꽤 큰 교회 대학부에 정착했다. 신입반에서부터 조장이 되어 1~2년만에 리더가 되었다. 10년 넘게 평신도로 수백 명을 가르치고 양육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제자라 할 만한 후배들을 없었고 깊은 교제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나를 아는 이들은 많았지만, 안다는 것과 깊은 교제와 친밀성을 갖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었다.

앞의 장광설이 길었지만, 이것과 연결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루스 터커는 대형 교회에 묻혀 가는 작은 교회의 의미와 역할을 이 책에서 논한다-내가 십여 년 전에 읽었던 루스 터커의 <선교사 열전>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전작에 비해 얇았지만, 기대가 되었다-한국에서 번역된 책 제목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은 교회>이지만, 원제인 <left behind in a megachurch world>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대형 교회를 부정할 수 없는 현 세계에서 작은 교회의 의미와 역할을 논한다.

현실적으로 대형 교회를 부정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에서 무조건 대형 교회를 부정하고 정죄하는 것은 편협하고 온당치 못하다. 대형 교회 자체가 악이 아닌 상황에서 대형 교회를 막으려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또 대형 교회의 문제가 꼭 대형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작은 교회일지라도, 교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들의 마음속에는 대형교회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 한국 사회의 중소형 교회는 교인이나 건물 상으로만 중소형 교회이지, 시스템과 조직과 활동은 거의 대형 교회를 따라가고 있고, 그것이 곧 성공의 비결인양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성도들도 그런 시스템과 편의 시설 등을 교회 안에서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사울의 갑옷을 입은 다윗마냥 거추장스럽고 불편하여, 목회자나 교인들이 쉽게 지친다. 버거운 일로 소진하고 쉽게 갈등한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에 맞는 시스템과 조직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교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대형 교회를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한다. 심지어 대형 교회를 나무라면서도, 대형 교회를 다닌다. 그리고는 작은 교회도 대형 교회같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에서 루스 터커는 대형 교회를 월마트에 비교하며 비판한다. 그는 실용성과 편리성만 강조하고 시설 투자에만 공을 들이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월마트가 나타나면 근처 상권이 모두 죽듯이 대형 교회로 인해 작은 교회들이 타격 받음도 지적한다. 대형 교회가 깊이 있는 교제를 말하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대형 교회의 주도 현상은 시대적 흐름임을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작은 교회가 대형 교회가 되기 위한 교회 성장 이론을 이야기하고 적용하기는 하지만, 그 성공 신학이 모든 교회와 목회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대형 교회 주도 세계에서 작은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마도 다른 교회 성장 이론가나 교회 변혁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대형 교회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소그룹 중심의 작은 교회나 네트워크식의 교회 연대, 특성화된 사역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사실 나도 그런 기대감으로 이 책을 선택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대형 교회를 월마트식 교회라고 지적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안은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는 원서의 제목처럼 메가 처치의 세계를 인정하면서, 그 주변에서 기존의 작은 교회들의 의미와 고민을, 또 작은 교회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새로운 작은 교회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작은 교회의 고충을 말하며, 그 모습과 특성을 지켜나가며,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를 논한다. 특히 전통적인 작은교회들, 즉 과거에 우리 주변에 있었던 동네의 작은 교회들이 독특한 모습과 특성을 잃지 않고 이어나갈 필요를 이야기한다.

이는 저자가 세상적인 성공의 신학으로 교회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효용성과 편리성을 이야기하는 월마트식 교회 이론에서 뒤쳐짐의 신학, 실패의 신학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 책에서 새로운 교회 성장학과 새로운 성장이론을 기대한다면, 이미 그들은 성공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음을 은연중에 지적한다. 오히려 저자는 지금의 작은 교회와 전통적인 교회가 그 자체로서 존재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세상적으로는 뒤쳐지고 답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을 저버린다. 그러나 그 저버림은 우리의 욕망의 기대에 대한 저버림이지 하나님의 기대에 대한 저버림은 아니다. 그렇다. 저자는 과거의 동네 교회를 자꾸 설명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그저 과거의 향수에 집착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작은 교회의 존재 자체가 현대 성도들과 교회에 대안이 되고 해결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안이 없는 시대에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형 교회들의 숲에서 작은 교회들이 살아있음을, 또 살아있어야 함을 우리에게 주지시키고 가르친다.

문양호 목사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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