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심리학적 접근이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며 이에 못지않게 윤리학적인 접근도 무시 못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그간 성서적이 아닌 교리적인 접근으로 자살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터부시해왔기 때문에 윤리적 규범에서 벗어난 논의를 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자살에 대해서 우울증의 결과로서 이해하면서 절대적 범죄에서 벗어나서 병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아지면서 자살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이 될 수도 있으며 실질적으로 매스컴을 통해서 심심치 않게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논의와 사고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유명인의 자살은 사회적 충격과 함께 모방 자살까지도 우려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최근에 있었던 가수 유니 씨나 탤런트 정다빈 씨의 자살도 이러한 면에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것 같다. 안타까운 점은 2년 전 있었던 영화배우 이은주 씨까지 포함하여 이 세 명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신앙심이 어느 정도로 깊이가 있었는지는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알 수가 없으나 외부에 그러한 사실이 노출될 정도로 그들의 신앙은 단순함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볼 수가 있다. 특히 최근에 자살한 정다빈 씨의 경우는 자살 하루 전에 미니홈피에 신앙적 고백을 다분히 담고 있는 글을 실어 놓았기에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 같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닷컴에서 몇 년 전 행했던 전화 조사에 의하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20%에 달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이긴 하지만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21%)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19%)보다 자살충동을 더 경험해보았다는 것이다. 아마 위의 세 고인의 자살은 이런 조사가 상당히 사실적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살자, 40대 남성이 가장 많아

그러나 이러한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에 반응되는 여론에서 우리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사실 하나를 지적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이들의 자살이 오늘날 세계 1위의 자살률을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자살의 경향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자살이 베르테르 효과로 불리는 모방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의 자살이 20대 여성에 의한 자살에 의해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자살 경향(뒤르껭: 자살론)을 설명한다면 첫째 장년층의 자살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40대의 자살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이라고 하면 10대, 20대의 감정적인 자살을 많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통계를 정확히 보면 2004년 기준 40대가 자살자중 21.0%로 가장 많고, 그 뒤로 60대 16.3%, 30대 15.9%, 50대 15.8%, 70대 13.8%, 20대 9.4%, 10대 2.1% 등으로 10대, 20대의 자살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고 오히려 장년층의 자살이 심각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사회의 중추가 될 수밖에 없고 가정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30, 40대의 자살이 36.9%로 아주 위험한 수준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이 2002년 11.8%로 5위, 2003년 15.8%로 3위였던 60대가 2004년 16.3%로 30대를 제치고 2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60대의 자살 경향이 급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살 경향 두 번째는 남자의 자살률이 여자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는 여자에 비해 남자가 2.2배나 더 많이 자살을 했다는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조사망율(인구10만 명당 사망자수)로 볼 때 남자는 34.5명이나 여자는 15.8명이다. 전체 자살자의 숫자도 남자는 8000명에 이르고 여자는 4000명이었다. 특히 40대에서는 그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데 남자의 자살에 의한 조사망율은 43.3명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여자는 평균과 비슷한 15.3명으로 남녀 비율이 약 3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50대에서는 남자 58.9명, 여자 17.4명으로 3배를 훨씬 넘는 비율로 나타나게 된다. 즉 이 사회는 여자보다는 남자, 그것도 장년층의 남자들로 하여금 자살로 내몰리게 하는 그 어떤 사회적 요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명확히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20대 여성의 자살에 대해서 이 사회가 지금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살, 사회적 문제로 여겨야

현재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사망원인 4위로 암, 뇌혈관 질환, 그리고 심장질환 다음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5위 당뇨병보다도 높은 사망 원인으로 이제 자살이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서 사회 전체적인 대책과 경각심이 요청되고 있다.

자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대표적인 분석의 틀이 있다. 그것은 프로이트로 대표되어지는 심리학적 접근과 뒤르껭으로 대표되어지는 사회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경우는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보고 그것을 정신적인 질병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고 뒤르껭의 경우는 자살을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통합으로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한국에서는 자살에 대해서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프로이트식의 분석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심각성 앞에서 사회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제 자살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것은 사회에 만연되어진 그 어떤 질병에 못지않은 수준에서 보건당국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대중적 질병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살의 경향에서 보듯이 이것은 젊은이들의 일시적 충동이나 감정적 우울증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시기라고 본다.
 
그리고 좀더 분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살률을 이끌고 있는 장년 남성들의 자살에 대해서 좀더 심각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경제적 부담감이나 자아정체성, 그리고 과다하게 부과되어진 책임 등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교회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자살의 문제에 대해서 정죄론적인 입장에서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신학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자살은 이 사회가 그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하나의 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 40대 남성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그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정도 이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자살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윤리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입장에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자살에 접근해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살에 대해서 교회가 교단적 또는 집단적 대책 마련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회에 생명의 담보가 되는 교회가 다른 질병들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이 자살의 문제에서 만큼은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매 주일 선포되어지는 설교 속에서 한두 마디로도 자살의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러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본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는 이미 2004년 공동으로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놓았다. 이와 같이 교회도 자살에 대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자살에 대한 예방책이나 설교에 있어서 자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또 이러한 관점을 가지면 남아있는 남아 있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2년 전 자살한 이은주 씨의 장례식을 목사가 집례해 주었다고 당시 논쟁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여기에는 자살은 심각한 죄라는 윤리적 판단이 있었다고 본다. 실제적으로 중세 시대에는 자살한 자에 대해서는 장례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시체를 해하여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 죄라고 하는 것은 자살을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멸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자살이 하나의 경향성을 띄며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각 개인은 적어도 지옥의 판단에서는 좀 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 자살이라는 것이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큰 죄에서는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이것은 장례를 집례 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나 남아 있는 유가족에게나 큰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라고 본다.

자살은 스스로 하나님께 속한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범죄다. 그러나 살인범이라도 용서하고 품에 안으시는 은혜의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용서되고 받아들여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자살의 경향을 안고 있는 2007년 한국 사회에서는 말이다. 교회가 좀더 심각하게 자살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서야할 때가 이미 지났다고 본다. 더 늦기 전에 이 사회에 생명의 담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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