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혹은 시민생활을 관리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헬라어 “폴리테케스”라는 말에서 유래된 정치(politics)라는 단어와 그에 대한 함축은 한국적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자주 오해를 받았다. 우리는 자주 정치의 본질과 현실정치의 부조리한 현상을 혼동한다. 즉, 부조리(不條理)하고 부정의(不正義)한 현실정치는 정치의 본질을 오해하게 한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교회사적인 측면에서도 오랫동안 국가와 정치(권력)의 이념에 대한 교회들 사이에 갈등과 혼동이 존재하였다(특별히 로마 카톨릭, 재세례파, 루터파, 칼빈파의 견해들).

비록 최근에 더욱 논란도 되고 오해되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기독교인들이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율법을 전하고 실천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는 선거만이 아니며, 국가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며, 가치중립적인 것도 복음전파에 무익한 것도 아닌, 삶의 문제며 책임이며 의무이고 복음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정치활동은 경제, 노동, 환경, 통일 등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 영역을 포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기독교인에게 정치라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사랑의 윤리)에서 공공의 차원(정의의 윤리)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행위는 정부나 정권적인 차원이 아니라, 다윈적 평등을 위한 제도적 편제를 유지하는 것이며 비판의식을 키우는 노력을 통한 분화와 해방의 다원주의적 분배체제의 유지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기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랑의 윤리와 정의의 윤리에 대한 구분과 단절의 역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현대기독교가 민주주의적 이념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고 지지해야할 당위성이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그리스-로마적 배경(Greco-Roman background)을 가진, 서구적, 반(反)기독교적 가치체계의 하나로 여길 수는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히브리인들의 법(혹은 정의)의 정신과 모든 면에서 상치된다고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개혁의 정신과 대치되는 것도 아니다. 즉, 절대권력에 대한 도전, 사회참여, 계약관계, 법치주의, 책임있는 대리적 권력의 개념, 국가론에 대한 제한적인 긍정의 개념들은 기독교와 민주주의가 공유할 수 있는 속성들인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의 현실은 앞서 언급한 개념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보수적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표면적으로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주장하나, 실제로는 현실정치와 야합(野合)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여 왔으며 이제는 그 진면목을 가식 없이 드러내는 상황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 이유는 국가관과 정치에 대한 명백한 정의와 논의가 없이, 보수(혹은 복음주의)적 목회자(혹은 기독교단체)가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한 세상정치에 대한 단순하고 비상식적인 이해를 하거나 불필요하고 정의롭지도 못한 현실정치를 정당화하거나 이용당하고 오히려 실제로 정의로운 현실정치참여는 맹렬히 비난하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는 역사상 국회의원들이나 정치가들의 상당수가 기독교인들이었음에도, 기독교적 정치관이나 정의로운 정치활동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온갖 비리와 불법의 온상이 되고 교회를 자신들의 불의한 정치활동의 근거지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아직도 많은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선거시에 호교적(護敎的)인 차원에서, -이것은 일종의 종교색(宗敎色)이다- 심지어는 지역-파당적 차원에서 특정한 정당과 입후보자들에 대한 당락을 결정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1884년에 시작된 구미선교사중심의 선교활동은 내외적인 여러 가지 역학관계와 함께 서양선교사들의 선교와 교육의 자유를 인정받는 대신에 선교사들과 한국기독교인들의 사회에 대한 관심은 내외적으로 억압되는 경향이 짙어져갔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1901년에 “장로교선교사공의회”에서 채택된 비정치화의 불간섭선언이다.

1. 우리 목사들은 대한 나라 일과 정부 일과 관원 일에 대하여 도무지 그 일에 간섭하지 아니하기를 작정한 것이오. 2. 대한국과 우리나라들과 서로 약조가 있는데 그 약조대로 정사를 받되 교회 일과 나라 일은 같은 일 아니라. 또 우리가 교우를 가르치기를 교회가 나라 일 보는 회가 아니오 또한 나라 일은 간섭할 것도 아니오. 3. 대한 백성들이 예수교회에 들어와서 교인이 될지라도 그전과 같이 백성인데 우리 가르치기를 하나님 말씀 거슬림이 없이 황제를 충성으로 섬기며 관원을 복종하며 나라 법을 다 순종할 것이오. 4. 교회가 교인이 사사로이 나라 일 편당에 참여하는 것을 시킬 것 아니오. 금할 것도 아니오. 또 만일 교인이 나라 일에 실수하거나 범죄하거나 그 가운데 당한 일은 교회가 담당할 것 아니오. 가리울 것도 아니오. 5. 교회는 성신에 붙인 교회요 나라 일 보는 교회 아닌데, 예배당이나 교회 학당이나 교회 일을 위하여 쓸 집이오 나라 일을 의논하는 집은 아니오. 그 집에서 나라 일 공론하러 모일 것도 아니오. 또한 누구든지 교인이 되어서 다른데 공론하지 못할 나라 일을 목사의 사랑에서 더욱 못할 것이오.

기독교의 첫반세기는 일제의 억압통치와 경건주의의 영향,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지역분할정책의 폐해, 보수와 자유주의 사이의 신학적 갈등, 신사참배의 문제 등으로 인한 기독교의 반세기는 혹독한 시련기였다. 일제시대의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와 변혁운동은 애국과 애족의 이름으로 3.1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립운동들과 교육-계몽운동을 수행하였다. 일제말의 신사참배에 대한 저항은 종교적-정치적인 저항의식의 발로(發露)라고 볼 수 있다. 해방직후에는 목사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이 주동이 된 기독교정당운동도 있었다. 미군정뿐만 아니라, 이승만 정권에도 많은 기독교인이 정치인과 정권의 요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후반의 부정선거와 일련의 군사독재정권들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한국 보수적 교회가 기독교적 정치관을 확립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이 여러가지 산재한 내외적 문제들(친일파문제와 반공이데올로기)을 극복, 청산하지 못한 채, 국가조찬기도회, 빌리 그래함 등이 주도한 대중전도집회, 반공 친정부적 구국기도회(부흥회, 기도원운동) 등을 통한 박정희 독재정권에 악용되거나 묵인하거나 야합(野合)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문화의 샤마니즘적-유교적 영향, 일제치하의 암울한 상황, 6.25를 비롯한 정치-군사적 격변의 영향(한국전쟁이 공산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과 미국에 대한 극단적인 동경, 기복신앙의 극대화의 영향을 끼쳤다)과 미국의 원조를 근거로 한 경제적 급성장과 군부독재의 장기화라는 다양한 요소들이 한국기독교라는 독특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특별히 6.25와 경제발전은 군부독재에 대한 체념과 도피주의보다는 오히려 타협하고 편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역사의식의 부재, 고난의 십자가와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적 소명을 갖는 선지자적 혜안이 사라진 물질적 축복과 불의한 권력이 양산해내는 잘못된 “평안”의 복음이 전파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였고 율법주의화, 인과응보적 경건에 심취하였다.

필자는 한국 보수기독교의 정치관의 표리성(表裏性)을 몇가지 명백한 예들을 통하여 확증하고자 한다. 일제시대때 신사참배에 관여하고 해방직후에는 기독교정당활동에 관여하였던 한경직 목사는 “장로”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지지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기독교계 대표자들(한경직, 김활란, 정일권 등)의 일원으로 방미하여 군사정권지지를 요청을 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3선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강행하였을 때, 보수와 진보사이의 정치와 시국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통하여 명백한 대립양상을 드러낸다. 1969년 8월에 김재준, 박형규, 함석헌 등의 진보적 교계인사들이 <3선개헌반대선언>을 하였고 동년 9월 2일에 김준곤, 박형룡, 김윤찬, 김장환, 조용기 등의 242명의 보수적 교계인사들이 진보적 인사들의 발표를 정면으로 비난하면서 기독교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동년 9월 5일에 박형룡, 김준곤, 김윤찬, 김장환, 조용기 목사 등은 <3선개헌지지선언>을 하였다. 1970년대의 독재정권에 대한 한국보수교회의 침묵과 협력의 역사는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술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진보적 기독교계가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동안에도 보수적 교계인사들에 의한 수차례의 구국 및 복음화를 대중집회가 가능했고 보수적 교회들이 아무런 지장없이 수적인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사례다. 이와 같은 보수적 한국교회는 1980년대 이후로도 과거를 청산하거나 수정하기는커녕 이전과 동일한 이율배반적인 정치적 입장은 지속된다. 보수적 한국교회는 광주항쟁에 대한 침묵의 죄를 참회하기는커녕 1980년 8월 6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개최하였다. 한경직 목사 등을 비롯한 23명의 기독교인사들(조향록, 김지길, 장성칠, 강신명, 지원상, 이봉성, 신현균, 김창인, 김준곤, 이경재, 박정근, 김용도 등)이 전두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 물론 당사자들 중의 일부는 이 일들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인사들은 이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지도자에 대한 기도와 축복은 1000여명의 교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영삼 장로 대통령에게도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한국정치사의 오욕과 수치의 역사에 항상 기독교인들이 주역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도 아이러니의 문제도 아니다. 많은 기독교인사들이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를 비롯한 친일부역(親日附逆)을 하였으며, 부끄러운 역사의 장면들의 배후에 기독교인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주인공역할도 수행하였다는 사실은 심각한 반성과 대안모색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왜곡된 정치관은 최근에 미국을 포함한 국제정치분야에 대한 한국보수교회의 이해와 관심에서도 유사한 관점을 드러낸다. 최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과 일본에 방문을 했을 때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하였던 일련의 두 사건들에 대한 한국기독교계의 상반된 반응을 볼 때, 아직도 보수적 한국교회는 역사의식과 국제정치현실(특별히 부시 정권의 대아랍권 경제 및 외교정책)에 대해 지나치게 순진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시의 무력위주의 일부 이슬람국가들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고 평화를 요구하고 기도할 때, 보수적 교회들(특히 한기총)은 이 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신사참배의 문제만을 아주 간단하게 성토(聲討)하였을 뿐이다.

사실 미국을 통하여 우리가 복음전파, 일제강점의 해소(解消), 경제발전과 군사원조의 혜택을 누렸으며, 미국을 통하여 서구문화가 이식되었고 우리가 미국의 학문적 발전과 방법론들을 전수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분단과 냉전이데올로기의 심화라는 부작용도 전해주었다. 마치 중세의 서양기독교도들이 중동과 근동의 막강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여 현상황의 타개책으로 만들어진, 동양의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라는 가공의 기독교군주를 꿈꾸어왔던 것처럼, 이러한 과정 속에서의 기독교적 유토피아니즘은 자연스럽게 성공과 풍요와 경건한 신앙의 상징인 미국을 꿈꾸게 되었다. 우리가 아직도 미국식 “추수감사절”을 지키며 미국을 극단적으로 미화시키고 맹종하는 태도는 우리가 아직도 유아기적이며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한국의 보수교회는 잘 알지 못하지만) 미국의 정치가들 혹은 일반대중이 믿는 기독교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적 형태를 갖고 있다. 순진한 한국교회가 보기에는 신앙의 열정에 몰두한 믿음 좋은 신자들로만 혹은 신자들의 나라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는 미국의 외교, 경제, 국방, 정치, 문화에 대한 “현실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좌우편향적인 것보다는 공정하고 새로운 시각을 요청하는 것이다. 낙태는 반대하면서 이라크 침공은 찬성하는 것은 신자의 바른 선택은 아니다. 시장경제는 찬성하면서 복지와 분배를 부인하는 것은 신자의 공정한 판단일까? 미국은 신정국가나 교회가 아니라, 신불신(信不信)을 막론하고 미국주도의 패권주의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이기적인 권력집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별히 부시정권하의 대(對)북한, 대(對)이스라엘-아랍권 정책 세계화 정책은 도전을 받으며 받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신앙인 대 불신앙인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인 대 비미국인의 대결의 문제도 아니다. 게다가 미국과의 관계성 및 이해의 문제는 국제정치와 평화뿐만 아니라, 남북화합과 통일문제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만이 정의롭거나 유익(?)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기독교인들에게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사고와 이해를 방해하며 감정이나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한국교회사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이러한 한국기독교인들의 왜곡된 정치관 - 그리고 경제관 - 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즉 (1) 정치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오해-“정치는 타락[죄]의 결과”; (2) 왜곡된 이원론적 사고- 표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문제는 복음과는 무관한 세속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내면적으로 혹은 실리적으로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 (3)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오해-군사정권의 잘못에 대한 침묵; (4) 정치와 관련된 성경구절에 대한 자의적 해석-특히, 예수와 바울의 교회의 비정치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 (5) 일제와 군부정권 등의 억압에 의한 교회의 굴복과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보수적 교회의 사회적 신분상승과 경제적 비대화-보수교회의 기존통치세력과 중상류층에 편입되어 신속하고 극단적인 계급화, 보수화되는 정치화 현상; (6) 정치현실문제는 계급적 관점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급진적 견해에 대한 반발심; (7) 아주 최근에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승리 등의 복합적인 요인들; (8) 보수적 교회의 정치경제세력화는 비기독교적 정치 경제세력 혹은 집단과도 동일시되거나 야합하여 보수적-전통적 가치를 숭상하는 시민종교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물론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한국보수기독교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복음의 온전성을 유지한 채 정의의 윤리를 수행할 것인가, 복음의 온전성을 상실한 채, 파당화할 것인가? 물론 그들은 이 모든 것이 한국교회와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를 위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결국 정치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며 중상류층을 위한 한국교회의 권력화와 파당화를 가속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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