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정말 노예해방을 위해 평생 노력한 전통적인 기독교인이었을까?

난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친 평등주의자인 줄 알았다. <EBS 지식채널>을 접하기 전에는.

"노예를 해방해 정치적·사회적으로 우리와 동등하게 만든다고요? 내 감정은 그것을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어요."

이것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입장이었다. 남북전쟁 때 북군이 수적으로 수세에 몰리기 전까지는.

그는 남북전쟁 전 1860년 1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당시 농업 위주의 남부는 공산품에 관한 관세를 내리자고 요구했다. 공업 위주의 북부는 공산품 관세를 높이자고 요청했다. 에이브러햄 대통령은 당시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관세를 올렸고 무역정책으로 생긴 남북 간의 갈등은 전쟁으로 번졌다.

링컨은 노예제도 해방에 헌신한 기독교인이었나

전쟁 이전 노예제도에 관한 그의 태도는 늘 모호했다. 그가 노예제도의 확장을 반대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노예제도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모호한 링컨의 태도는 1861년 3월 4일 취임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 문제는 아니다."

남북전쟁은 당시 인종 갈등이 아닌 산업 전쟁을 겪게 했다. 전쟁에서 북군이 열세에 몰리자 정치 생명이 위태로웠던 에이브러햄은 특별 조처를 취했다.

"노예를 해방하겠다. 흑인 노예 중 적합한 조건을 갖춘 자는 미합중국 군대에 입대해 적당한 곳에 배치될 수 있다."

그의 결정에 분노한 상당수 북부 군인은 노예를 위해 피를 흘릴 수는 없다며 탈영을 선택했다. 수많은 흑인의 입대로 북군의 위세는 강화되었고 전세는 역전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예해방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전쟁 참패의 위기 속에 노예해방으로 전쟁에 승리했다. 후대에 명성을 얻는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 - 존 F. 케네디 <EBS 지식채널 6> (41~49쪽)

당시 노예제도를 옹호한 남부연합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은 분명 독실하고 헌신된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로버트 리 장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것은 틀림없다. 로버트 리 장군이 초반부 승리한 것 때문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결정한 것을 보면 역사란 불가사의하다.

링컨은 분명히 위대한 그리고 탁월한 미국의 근대화에 앞장선 정치가였다. 노예제도를 악으로 규정하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전쟁 이전 링컨의 노예제도에 관한 모호한 태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노예제도에 대해 중립적 입장만 해도 당시는 매우 진보적 사상이었다.

그럼 링컨은 기독교인이었을까? 사실 미국에서 링컨이 기독교인이었는가에 대한 논쟁은 그가 암살당한 후 초기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보수적인 침례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나 한 번도 교회에 소속된 적은 없었다.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적으로 신앙고백을 한 적도 없었다.

링컨은 오히려 젊었을 때는 기독교 신앙을 조롱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정기적이진 않아도 다양한 교단의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훗날 자녀 두 명이 사망하고 난 후 종교에 좀 더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물론 링컨 사후 의회의 사목(Chaplain of the Senate Phineas Grey)과 그의 아내는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링컨과 많은 대화를 나눈 가까운 친구들인 Ward Hill Lemon과 William Herndon은 이를 어림없는 사실이라고 부인했다(Steiner, Franklin, 1936, 'Abraham Lincoln, Deist, and Admirer of Thomas Paine'. Religious Beliefs of Our Presidents. Retrieved 2010.05.31). 그들과의 대화에서 링컨은 이성주의자였고 마지막에는 칼뱅주의적(모든 것이 예정된) 이신론자였다고 한다.

왜 링컨 신화는 한국에서만 꽃피었나

이신론(理神論, deism)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철학(신학)이론이다. 세계를 창조한 하나의 신을 인정하되, 그 신은 세계와 별도로 존재한다. 세상을 창조한 뒤에는 세상과 물리법칙을 바꾸거나 인간에게 접촉하는 인격적 주재자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라 계시나 기적 등이 없다고 보는 철학·종교관이다. 자연신교(자연신론) 라고도 한다(위키백과에서 인용).

지금까지 밝혀진 증거들을 보면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은 부인했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젊었을 때는 결국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만인 구원론을 믿었다. 신에 관한 믿음도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의 성향이 포함되었고 노년까지도 종교에는 회의적이었다고 한다(Allen C. Guelzo, Director of Civil War Era Studies at Gettysburg College in Pennsylvania, Abraham Lincoln: Redeemer President in 1999).

흥미로운 점은 본토 미국에서도 없는 링컨에 관한 신화가 왜 한국에서만 유독 꽃피웠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기복신앙 탓 아닌가 싶다. 미국·백악관·대통령이란 단어가 주는 성공과 '복'에 대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성공을 신앙생활 탓으로 돌리고 싶은 기복적인 욕구가 아마 한국 사람의 기호에 딱 들어맞은 것 같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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