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쟁> / 심용환 지음 / 생각정원 펴냄 / 364쪽 / 1만 6,000원

지난해 10월 초반이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했고 10월 1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장관 고시로 발표했다.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지만 11월 3일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국정화되었다. 비밀 TF를 운영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국정교과서 대표 집필자로 언급되던 분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자진 사퇴했다. 한국사를 가르친 지 1년 차인 고등학교 교사가 집필진였던 점이 드러나는 등 논란이 많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그들의 시간표대로 진행되고 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정사실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반대했으나 막지 못했다. 힘이 부족해서인가? 어쩌면 그들이 반대를 예상하고 이미 전략을 세워둔 탓은 아닐까? 국정교과서는 올해 12월이면 공개되고 내년 3월이면 중고등학교 교과서로 사용되게 된다. 이때 한 번 더 크게 논란이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때를 대비해 새로운 전략을 세워 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심용환은 <역사 전쟁>(생각정원)에서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역사를 장악하려고 했는지 적고 있다. 대략 흐름은 다음과 같다. 2002년 검인정 결정으로 출간된 역사 교과서, 2004년 금성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등에 수차례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2005년 '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출판되었다. 그들의 입장이 담긴 교학사 교과서가 2013년 검정을 통과했으나 0%에 가까운 채택율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 교과서 자체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꾸려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교육과정 개정안 총론・각론 고시 기한인 9월이 되자 신속하게 국정화 추진에 힘을 쏟아 기습 작전을 하듯 순식간에 추진해 버렸다.

<역사 전쟁>의 부제는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고 하는가’이다. 역사 ㅂ교과서는 1974년 국정화된 이래 30년 동안 변동 없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2002년에 부분 검정제가 되고 2010년엔 전면 검정제가 된다. 그들의 입장을 담은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하기 어려웠고 통과한 이후에도 시장에서 퇴출되기에 이른다. 그들이 역사를 장악하려는 이유는 역사를 빼앗겼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역사 전쟁이라는 표현이 그들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이다. 역사 전쟁은 늘 있지만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역사 전쟁은 2000년대에 시작된 전쟁이다.

심용환은 지난 10여 년간 역사를 가르친 학원 강사다. 역사 교과서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런 변화가 어떤 식으로 시험 문제에 반영되는지 잘 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그들의 입장이 담긴 교학사 교과서는 허점 투성이다. 연도, 사진과 사진 설명이 틀린 경우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인터넷에서 복사해 온 자료로 교과서 내용을 채우기도 했다.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들은 일제시대와 이승만을 미화한다. 문제는 치밀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직설적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다보니 임시정부 활동을 줄이고 사회주의 활동에 대해선 심각하게 왜곡하게 된다.

그들의 강점은 무엇인가? 박세일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1세기북스)에서 보여 주듯이 그들은 프레임을 잘 짠다. 산업화에 이은 민주화 그리고 현재의 과제로 선진화를 제시했다. 이들의 프레임은 어설픈 면이 있지만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건국절 논란과 이승만 띄우기는 전혀 역사적 논의가 아니다.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한다. 그들의 전략에 휘말리는 이유를 뭔가? 소위 개혁 진보 진영이 동어 반복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라는 심용환의 분석에 공감한다.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전쟁>에서 흥미롭게 부분은 세계의 역사 논쟁들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심용환은 역사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서구형 모델, 동아시아형 모델, 북한형 모델을 제시한다. 독일·프랑스·스페인 등지에서는 역사적 과오를 청산해가는 방식으로 권력 현상이 벌어졌다. 북한에서는 종파 투쟁이 있을 때마다 역사 서술에서 반대파를 제거해 가는 방식이었다. 결국 '김일성주의'만 남게되는 역사의 개인화 수순을 밟아 왔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가권력이 주도하여 정통성과 정당성을 구축해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세계 패권 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 주변국이나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통합해 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때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경제 발전에 몰두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면서도 동아시아 패권을 회복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한국에서는 분단이라는 한계 때문에 상식적인 역사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그동안의 성과가 쌓이면서 비약적인 발전도 있었으나 2000년대 이후 역사 인식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는 일본 우익이 강화된 이후의 변화와 놀랍게도 비슷하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보수 우익의 퇴행적 역사 인식과 싸워야 할까? 10년 혹은 20년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에 대응하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다. 역사책을 한가롭게 읽어 가면서 토론하기에는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책 사 보는 경우도 줄어들지만 역사책을 고를 확률은 더 작아진다. 역사와 우리의 일상과의 거리만큼이나 역사전쟁에서 불리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우리의 좌표가 어디쯤인지 정도라도 확인될 수 있다면 포기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 그리고 심용환 같은 역사 강사가 몇이라도 더 있다면 말이다. 지금은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야 할 때다. 자기 정신부터 챙기고 주변 사람들 한 명씩 설득해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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