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막연한 향수일까? 일본 관동군 장교이기도 했고 한일국교를 정상화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역대 대통령 인기투표를 하면 1위나 2위를 차지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파괴했던 사람에 대한 호감치고는 과하고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그래도 경제 발전을 이끈 성과가 있지 않은가 하는 말도 있지만 '경제개발오개년계획'이 박정희 정부의 작품이 아니라 장면 정부의 계획이었다는 사실도 이미 드러났다. 박정희의 업적으로 새마을운동과 경부고속도로가 인정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같은 놀라운 인기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를 해명하려는 듯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 독재' 논쟁이 시작되었고, 독재자 박정희라는 이미지가 있음에도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논쟁은 분명한 결론을 남기지 못한 채 독재자의 잘못만이 아니라 성과도 인정해야 한다는 묘한 합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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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전체주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에 나오듯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었다. 경제를 바로 세우기는커녕 박정희는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63년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에게 지시해 대규모 증권 조작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과 외교 관계를 맺을 때도 박정희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징용‧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임금과 목숨값을 받았다. 이것은 2005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그래서 박정희가 집권하고 10여 년이 넘었을 때도 여전히 보릿고개가 존재했고, 시민은 국가가 요구하는 절미 운동이나 혼분식 운동에 강제로 동참해야 했다. 심지어 모든 학생은 저금통장을 만들고 폐지와 폐품을 모아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나는 이러한 것을 실제로 경험했다. 필요하다면 공권력을 사용해서라도 절약과 절제를 강요한 것이 그 시대의 방식이었다.

아침이면 "새벽종이 울렸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노래를 부르며 쓰레기를 치우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라며 정부의 지시를 따랐다. 당시 조용기 목사는 삼박자 축복을 강조하며 ‘우리도 잘살아 보자’고 설교하면서 등장했다. 살기 어려운 때에 정말 시의적절한 것이었고 교회는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살아 보자"고 외쳤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 박정희 정권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기생 관광을 주도하기도 했다. 많은 여성의 몸이 국가사업을 위한 도구가 되었고,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무형 수출 산업,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는 유일한 흑자 산업, 자본도 시설도 원자재도 필요 없는 매우 유리한 외화 획득책, 굴뚝 없는 산업, 수요도 공급도 얼마든지 있는 유일한 인기 산업이라는 이야기가 1970년 초부터 정부 기관과 언론을 통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알려졌다시피 베트남전쟁에서도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목숨과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거래했다.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사람의 신체와 목숨이 거래되고, 이를 국익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이러한 내용을 본다면 단순히 독재라고 보기보다 전체주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체주의 관점의 특징은 실체 없는 지배와 비밀경찰, 총체적 지배라는 틀이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경향은 박정희 개인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미국의 중앙정보부(CIA)를 본떠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정)를 만들었는데, 중정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힘이 막강했다. 1964년에는 중정 요원의 수가 무려 37만 명에 이르기도 했으니 이 조직이 얼마나 곳곳에 퍼져 있었는지 짐작이 된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지배가 제도 정치에만 미친 것은 아니었다. 박정희 정부가 일제 강점기 때의 국민학교를 그대로 놔두고 '국민교육헌장'을 보급하면서 '시민'을 '국민'으로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 총화와 멸사봉공을 강조하고 교실마다 자신의 사진을 게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침과 저녁마다 국기 게양식과 국기 하강식을 하며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되뇌게 하고, 전 시민이 같은 시간대에 국민 체조를 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설치하고 교련을 가르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과 지도자의 일체감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집중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심한 처벌을 통해 형성되었다. 특히, 한국 교육은 독특함을 가진 고유한 존재들을 공장의 물건처럼 똑같은 인간으로 찍어 냈다.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여류 정치학자이자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축인 히틀러와 수용소의 문제를 다루면서 전체주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히틀러 당시, 그녀가 말한 대로 전체주의의 특징인 비밀경찰은 활개를 쳤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총체적 지배'라 불렀다. 수없이 다양하고 독특한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인 것처럼 간주하는 지배, 인간의 자발성을 완전히 거세하려는 지배를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분석했듯이, 전체주의가 등장할 수 있게 된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주의의 전형적 모델인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의 모든 사람, 나아가 기독교인들까지 당시 유대인들을 600만여 명을 박해하고 죽이는 데 총체적으로 가담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상당한 부자였고 모든 유럽인들, 특히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했다. 그들을 모두 함께 증오했다. 히틀러는 바로 이 점을 포착하고 반감을 이용해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역사상 흑사병이 창궐하던 1347~1351년에도 희생양이 된 수많은 유대인들은 학살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유대인들의 가슴에 다윗의 별을 달게 하고 누구든지 죽일 수 있도록 했다.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구인가

지금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구일까? 사회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지만, 비(非)국민의 지위를 강요당하는 시민들은 누구일까? 가장 결정적인 단어는 바로 '종북'이라는 말이다. 한때는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렸던 사람들이, 간첩‧빨갱이로 호명되는 순간 모든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부정당하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종북'이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마치 히틀러 시대에 '유대인'과 같이 '종북'이라고 규정되는 순간 이들의 목소리는 부인되고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언제라도 비(非)국민, 반(反)국민의 지위로 떨어질 수 있는 존재들이자 객관적이고 적대적 관계가 된다. 그리고 한국의 기득권층은 이들에 대한 반감을 활용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치적인 조건과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공권력의 태도가 전체주의 운동의 모습이다. '일베 현상'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대를 사는 셈이다.

함석헌 선생이 <사상계>(1961년 7월호, 통권 96호)에 실은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에서 "사람됨이 어디 있느냐? 자유지, 자유에만 있다. 자유가 무엇이냐, 정신의 마음대로 자람 아니냐? 정신이 어떻게 자라느냐? 말함으로만, 들음으로만 자란다. 제 발이 오천 년 아파도 아프단 소리도 못하고 슬퍼도 목을 놓고 울어도 못 본 이 민중을, 이제 겨우 해방이 되려던 이 민중을 또다시 입에 굴레를 씌우지 마라. 정신의 이상이 생겼거든 지랄이라도 맘대로 하게 해야 할 것이다. 4‧19 이후 처음으로 조금 열었던 입을 또 막아? 군인의 왜 그리 기백이 없느냐? 나는 공산당이 터럭만큼도 무서운 것이 없더라"고 호통쳤다.

무엇이 나라에 발전일까? GNP‧GDP의 성장인가? 군사력의 증가인가?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이 구체적인 개인의 삶의 지배하면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 없다. 정치는 다원성을 통해서만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규정한 것은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자,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말하고 행동하면서 각기 다르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다.

"붐비는 통로에서 또 복도에서 우리는 늘 방송을 들었다. 잘 살아 보자는 방송, 하면 된다는 방송이었다. 올라가기 위해, 한층이라도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발전과 번영은 종교가 되었고 배가 왜 이렇게 기울었는지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이라는 이단으로 몰려야 한다." <눈먼 자들의 국가>(박민규 외11명, 문학동네)

한완상 박사는 <한반도는 아프다>에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적대적 공생 관계'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남북 양 체제 권력 주체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곧 그들의 권력이 체제 안에서 도전받거나 위협에 직면할 때마다 위기를 관리하고 극복하기 위해 상대방 체제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는 것처럼 각색하고 과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한의 강경 냉전 세력은 북한의 지배 세력을 공식적으로 규탄하고 악마화 하면서 결국 역설적으로 지배 세력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이것이 한반도의 아픔이요 슬픔이란 말이다. 남한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존재하기 때문이요, 북한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남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북한과 적대 관계로 갈 것인가?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한국교회가 평화를 만든 사람들(Peacemaker)로서 남북한 통일의 가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반통일 세력으로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종북‧좌파'라는 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유대인'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고 이러한 모습이 오늘 우리나라의 전체주의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할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2014년 친일을 미화하고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5‧16'을 혁명으로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쓴 소위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하자 나온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OECD 국가 중에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국가는 없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독재국가인 북한과 베트남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다. 국가가 역사적 관점을 통일하려는 것은 그런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일이다. 우리에게 교과서란 영어의 cannon, 즉 절대적 경전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또 '교과서 같은 사람이다'는 표현은 획일주의적 냄새가 나고 거기에다 도덕적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교과서주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언론 출판 등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사상의 획일성을 강요하는 국가보안법 등을 근원으로 나온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자유의 수준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가령 '국경없는기자회'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 자유 지수'의 2015년 순위에서 한국은 60위로 이전 해보다 한 단계 떨어졌다. 자유뿐만 아니라 삶의 수준 전반이 낮아지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2015년 145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4년 세계 웰빙 지수'에서 한국은 117위를 기록했다. 2013년 순위 75위에서 42단계 낮아진 것이다. 세계 웰빙 지수는 인생의 목표와 사회관계, 경제 상황, 공동체 안전, 건강 등 5개 항목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고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다. 이는 한국의 낮은 행복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물질주의적 가치관은 최빈국인 짐바브웨보다 심하다는 보고도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을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이처럼 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요,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의 심각한 문제는 양식이 없는 기갈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아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 평화, 사랑, 희망, 형제애, 풍요 같은 정신적 영적 가치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잘 먹고 잘사는 것, 출세하는 것이 교인이 추구할 것으로 생각한 지 오래된 것 같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기복주의에 푹 빠져있는 심각한 모습을 보인다.

거기다 오늘 기독교는 '호국 기독교'가 되었다. 축자영감설을 믿는다면 어떻게 보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인명진 목사는 "복음서를 보는 시각도 네 가지로 있다"고 말하면서 "역사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독교인은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했다. 예수님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는 것에 대해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 예수님을 보는 눈도 심지어 네 가지거늘 하물며 역사를 보는 데 한 시각밖에 없다니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1장에서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사실들(facts)을 맞추어 가고, 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따라 해석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고 말했다. 즉, 역사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또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하루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신문이다. 날마다 나오는 신문도 조‧중‧동이 보는 시각이 다르고, 한겨레‧경향신문이 보는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루의 역사해석도 이렇게 다르다. 이것이 인간의 다양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도 권력이 신문과 각종 신문, 방송을 장악하고 상황에서 그런 사실을 모르고 한쪽의 소리에만 너무 지나치게 열중하여 세뇌되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문제다. 왜 이렇게 백성들이 무지하며, 한국교회 또한 무지한가? 이것이 성경을 아는 자들의 모습인가?

그러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예수의 정치학>으로 유명한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1927~1997)는 <급진적 제자도>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대조'와 '불순응'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순응은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언론을 비롯한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선악의 패턴에 의지하여 생각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제도에 대해서든 무비판적 순종을 바쳐서는 결코 안 된다. 무비판적 수용은 하나님나라에만 바쳐져야 한다. 이 충성은 또 다른 차원의 갈등에 편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어느 한 나라의 절대 주장에 소리 없이 있는 것은 거기에 동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악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저항하며 살아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지금이 그때다!

박철수 / 분당두레교회 전 담임목사, <하나님나라>(대장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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