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느 교회에서 주관하는 목회자 부부 초청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목회자 부부 초청 세미나'라고 하는데, 사실 농어촌의 작은 교회 목회자 부부 '위로회'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열악한 조건 아래 헌신하고 있는 농어촌 목회자들에게 쉼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당우리교회에서 매년 좋은 리조트를 빌려 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작년에는 무주리조트에서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번에는 곤지암리조트로 장소를 옮겼다. 장소를 옮기게 된 데에는 아마 분당우리교회 담임인 이찬수 목사님의 바쁜 일정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

멀리서 이 행사가 열리면 이찬수 목사님이 참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목회에 몹시 바쁜 분이라 촌음을 아끼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해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교제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참석하지 못한다는 설명을 매년 행사 때마다 들어왔다. 이찬수 목사님보다는 오히려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들이 그분을 더 만나고 싶어 한다. 작년 참석자 중 많은 목회자들이 세미나를 평가하는 설문지에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님 참석을 원한다고 적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 나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내가 전도사 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이유도 있었지만 20일 함안에서 손양원기념관 개관식이 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참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했다. 10월 18일 주일은 내게 몹시 힘든 날이었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밝히기 저어하지만 너무 속이 상해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농촌의 작은 교회를 세상에서 회자되는 관계로 말한다면, 성도가 갑이고 목회자가 을이다.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는 통보는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예배 전, 성도 몇 분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중 마음이 쓰이는 분이 윤 집사님이다. 지난 주 목요일 날 집사님은 고구마와 고추를 수확한다고 했다. 집사님이 부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승용차로 집까지 수확물들을 운반해 주겠다고 했다. 윤 집사님의 집에서 밭까지는 십 리 정도 되는 거리다. 그런데 그날 손님들이 들이닥친 데다 교회 텃밭 고구마를 캐다 보니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좀 늦더라도 운반해 줄 요량으로 몇 번이나 전화했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날 밤 늦게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많이 뒤틀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사님은 집사님 대로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일이라도 함께 운반하자는 나의 말에 되었다는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주일 아침 그에게 전화를 하니 교회를 나가지 않기로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울컥 나오려 했다. 예배를 앞두고 집사님의 밭까지 다녀오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날 연못을 지나 복산 마을 뒤 산길을 조심조심 운전해 그의 밭으로 갔다. 윤 집사님이 막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교회를 그만 나오려 하는지 물었다. 집사님은 목사기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성도들이 헌금드리는 것은 (액수가) 뻔한데 목사님 가족이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의문점이 많다면서 뒤로 돈벌이를 하시는 게 아닌지 물어 왔다. 또 헌금 송으로 부르는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를 다른 것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주문도 해 왔다. 헌금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아 싫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봉헌 찬송으로 50장과 433장을 번갈아 가며 부르고 있다.

나는 지난 목요일 약속 어긴 것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 가족의 어려운 생활만 대강 얘기해 주었다. 헌금송은 당장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윤 집사님이,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 목사님 속을 썩인 것 같아 죄송하다며 사과를 해 왔다. 나는 울먹이며 집사님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일이 밀려 그날 주일은 지키지 못하겠으니 목사님이 이해하시라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몸은 못 가도 마음만은 함께 하는 의미로 드리는 헌금이라고 했다. 다음 주일부터는 빠지지 않고 교회 나가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주일 예배 끝나고 어르신들을 댁에 다 모셔다 드린 뒤, 올라와서 수확한 농산물을 같이 운반하자고 약속하고 그 산을 내려왔다. 큰 파도가 한 번 쓸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산에 딸린 밭에서 윤 집사님과 생각보다 긴 시간 대화하는 동안에 성도들에게서 전화가 쇄도했다. 왜 데리러 오지 않느냐는 전화였다. 이런 연유로 주일예배가 제시간에 시작하지 못했다. 주일 낮 예배에는 사도행전 16장 25절-34절을 본문으로 '환난 중의 굳센 믿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빌립보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하며 기도하고 찬송했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죄수들이 모두 옥문을 빠져나간 줄 알고 자결하려던 간수를 살려 구원받게 했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말씀을 전하는 내 상황을 말해 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나오려 했다.

설교가 끝나고 봉헌 기도를 마칠 때였다. 이 권사님이 화난 표정을 지으며 교회 문을 박차고 나갔다. 처음에는 어디가 편찮으신가 생각했다. 아내가 따라나섰고, 밖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크고(권사님) 작게(아내)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성도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오후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을 집까지 태워드리고 교회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맥이 탁 풀리는 게 주체를 하기 힘들었다. 예배 말미에 일어난 이정우 권사님의 예상치 못한 행동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이 권사님은 팔십 중반의 연세라 우리 교회의 어른인 셈이다. 아내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이 권사님이 대단히 화가 나셨어요. 지난주 헌금한 것이 주보에 올라가지 않았대요. 나오지 않은 이 권사, 박 권사님은 헌금 명단에 올라가고 정작 교회에 나와 헌금한 자신은 빠졌다며 교회 안 나오겠다고 하세요. 지지난 주 권사님 헌금한 것을 착각하신 것 같다고 말씀드려도 통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권사, 박 권사님이 전날 토요일에 교회 청년 결혼식에 참석하고 주일예배 나오신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니라는 거예요. 어떡하면 좋지요?"

먹먹했다. 신앙생활 오래 하신 권사님이 이런 일로 교회 나온다 안 나온다고 하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이지만 아닌 것을 우길 때는 뾰족한 수가 없다. 자신의 주장이 옳을 때는 목사님이 실수했으니 더 이상 교회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경우에는 기분 나빠 교회 안 나오겠다고 한다. 연세 드신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렇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이럴 때 목사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다. 예배당에서 잠시 기도한 뒤 이 권사님 댁을 찾아갔다. 권사님은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큰아들 부부가 우리를 맞았다. 이들도 오랜만에 어머님을 뵈러 왔다고 했다.

그들도 조금 전 왔는데, 어머니가 안 보이신다는 것이다. 유모차(걸어다닐 때 의지하기 위해 끌고 다니는 도구)가 집에 있는 것으로 봐서 밭일을 가신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아내는 주뼛주뼛하다가 권사님이 예배 끝나기 전에 화를 내며 나간 전후 상황을 아들 부부에게 이야기했다. 들어오시면 잘 설명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옆에 있던 며느리가 요즘 와서 어머니가 그런 실수를 자주 하신다며 치매기가 좀 있는 것 같으니 목사님이 이해하시라고 했다. 농촌교회에서 많지 않은 성도들을 섬기시는 목사님 내외분의 어려움을 십분 안다고도 했다. 나는 나의 왜소한 목회자 됨을 탄식하며 터벅터벅 교회로 돌아왔다. 나는 왜 이것밖에 하지 못할까.

그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분당우리교회의 목회자 부부 초청 세미나가 떠올랐다.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안 가는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하루 푹 쉬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행사 담당 집사님에게 부부가 아니라 혼자 가도 되는지 물었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내는 2박3일 전도사 교육이 있어 다른 곳으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승용차를 몰고 오는 고속도로 주변은 온통 황금물결이었다. 익은 벼로 채워져 있는 논을 왜 '황금물결'로 표현했을까. 노란 색은 황금 말고도 많은데. 모르긴 해도 황금은 부(富)의 상징이고 농본국에서는 벼 수확이 부의 가늠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공상을 하며 곤지암 세미나 장소에 도착했다.

많은 대형 교회 중 분당우리교회에 유독 마음이 많이 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담임인 이찬수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이찬수 목사님과 함께'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세미나의 개강 강의가 되는 셈이다. 이찬수 목사님과 초청받은 농어촌 목회자 모두의 공동 바람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참석자들은 예외없이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분당우리교회를 대형 교회으로 성장하게 한 그의 영적 권위는 도대체 무엇일까. 책을 통해 이 목사님을 접한 적은 있지만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설교와 강의로 이 목사님을 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목도 없고 성경 본문도 없이 강의가 시작됐다.

강의를 듣고 나니 내걸지는 않았지만 제목도 본문도 함께 눈에 잡혔다. 본문은 요한복음 2장 1절-11절, 제목은 '하인들은 알더라'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이찬수 목사는 단아한 키에 경상도 억양이 약간 섞인 말투, 외모가 남보다 뛰어나지도 않고 말도 청산유수로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보통 이하로 보아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씀에는 영적 파워가 대단했다. 그 힘은 진실함과 겸손함에 근거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처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없지 않다. 모인 회중의 대부분이 작은 교회 목회자 부부인 관계로 개척 당시 아이들 양육에 대한 예화를 들려주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면서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목회하면서 받은 상처를 아이들에게 앙갚음한 것이었다며 울먹였다. 또 그의 부친이 작은 교회 목회자였는데 교회 부흥을 위해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가 17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말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심한 말더듬이로 주의 일을 어렵게 감당하다가 하늘나라 가셨다고 했다. 쉽게 공감의 장이 마련되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가신 예수님이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는데, 심부름한 하인들 외에 그 포도주의 출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앞에 나온 포도주보다 더 맛이 좋은 것에 취해 기분이 고조되었다. 그런데 하인들만은 그 포도주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았다. 뿐만 아니라 심부름을 하면서도 기쁨을 누렸다는 것이다. 누구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인해서.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맛좋은 포도주를 먹고 취하며 쾌락을 즐기는 부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그런 쾌락은 모르나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알고 그분의 일을 하면서 즐겁게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 두 길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라고 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자의 길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교회가 크게 성장했으니 억대 연봉에 운전사가 딸린 최고급 차에, 고급 음식점에 가서 비싼 식사를 하고 큰 목사로 대접받아야 만족하는 길.

이찬수 목사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포도주 맛에 취하는 길이냐 아니면 '하인들은 알더라'의 길로 갈 것인가로 심한 내적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에쿠스를 타고 싶을 때가 있으며 많은 연봉을 생각할 때가 없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 길이 목회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니어서 피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잘 피해 왔는데, 앞으로도 굽힘이 없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 모인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중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 귀한 목사님이다.

그는 강의 서두에 우리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자신이 목회를 하는 목적이 무엇일 것 같으냐고 물었다. 모두가 침묵을 지켜 내가 '영혼 구원'이라는 일반적이면서도 무미건조한 답을 날렸다. 그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하나의 단서는 주님 안에서의 행복. 교회가 작거나 크거나 목회자가 행복해야 가정도 행복해지고 교회 성도들도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런 상태로 2만 명의 출석 교인들의 영적 지도자인 양 서 있다면 하나님은 악덕 기업주밖에 안 된다고 했다. 행복하지 않은 종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면서 하나님의 유익만을 취하는….

2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 목사가 소나타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개척 당시는 아반떼를 타고 있었는데, 소나타로 차를 바꾸고 한동안 교회 근처 동네 골목에 주차하고 교회에 걸어왔다고 한다. 성도들 중에 외제차 같은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차가 없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 보기 미안해서 차를 끌고 교회 주차장으로 오지 못하겠더라고 했다. 얼마 전 분당우리교회 당회가 열렸는데, 선임 장로님이 회의 전에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목사님 오늘 당회에서는 무조건 '예스'만 하시면 됩니다. 아셨죠?"

"예, 교회 그만 두라는 말 외에는 다 '예스'하겠습니다."

당회가 열리고 안건 중 담임목사 고급 승용차(그랜저) 구입 건이 상정되었다고 한다. 사표 내라는 것 외는 다 '예스'하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아니다 싶었다는 것이다. '노'라고 말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했다.

"장로님들, 제가 아반떼에서 소나타로 차를 바꾸고 한동안 골목 어귀에 주차하고 교회로 출퇴근 한 것 아시지요? 그랜저로 차를 바꾸어 주신다면 그 일을 또 반복하게 될 텐데, 그래도 좋겠습니까? 저를 또다시 위선자로 만들고 싶으시면 그랜저를 사주세요."

당회원들은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대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목사님 몸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니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일에 파묻혀 늘 피곤해하는 목사님에게 운전사를 붙여 주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 목사님은 소나타에 운전사를 붙여주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라며 일축했단다. 진정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인은 알더라'의 길을 걷고 싶은 그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다. 성도가 조금만 늘면 그랜저를 굴리고,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목회자 사회에서 그의 삶이 참 고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것을 그는 스승이신 고 옥한흠 목사님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한두 분의 질문만 더 받겠다고 했다. 처음에 질문자가 나타나지 않아 그냥 마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목사님이 손을 번쩍 들었다. 외양으로 봐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분 같았다. 그는 한 3분 정도 침묵을 지키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가 40년이 넘는 세월 목회를 해 오면서 포도주에 취한 쾌락 추구의 목회를 해 온 것 같다며 울먹였다. 남은 여생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하인은 알더라'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깨우침과 다짐의 고백을 했다. 강의한 목사님의 말씀의 울림이 크니 질문자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심경을 피력한 것이다. 이찬수 목사님은 질문하신 목사님의 눈물에 여러분들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것 같다며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마이크를 받아 내가 질문 아닌 질문을 했다. 오래 전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해서 분당우리교회 부목사님들과 같은 방을 썼던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각 교회 대부분의 부교역자들로부터 담임목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들어주었다. 그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분당우리교회 부교역자들에게도 은연중 그런 것을 기대하고 담임 목사님에 대해 물어봤는지 모른다. 나는 그 당시 이찬수 목사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들은 담임목사님을 극구 찬하하며 정말 닮고 싶은 목회자라고 했다. 진정성이 묻어 있는 말이다. 그때 대화를 나눈 그 교회 부교역자에게서 들은 한 대목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은 잘 모르겠으나 분당우리교회가 부흥하자 인근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 학교는 미션스쿨이 아닌 일반 고등학교였던 것 같다. 당연히 믿지 않는 교사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당시 교계 분위기가 성장제일주의, 공격적 전도, 성도들의 신행 불일치 등을 이유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보는 사회의 시각이 곱지 않을 때였다. 그 학교도 일요일에 강당을 교회가 쓰게 하는 데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런 불만이 있던 그 학교 비기독교인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이런 말들이 돌았다고 한다. "이찬수 목사님과 같은 분이 목회하는 교회라면 나가고 싶다"고. 실제로 그 학교의 적지 않은 교사와 학생들이 이찬수 목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문 시간인데 강의한 이 목사님을 간접적으로 칭찬한 격이 되어 좀 머쓱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말이었으나 즉석에서 묻는 형식을 취하며 말을 이었다. 부교역자들이 담임 목사님을 그토록 존경하게 하는 비결이 뭐냐고. 이 목사님도 나의 속내를 읽은 듯,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부교역자들에게 매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매주 한 번 부교역자들과 하는 미팅 시간에 그야말로 찬바람이 세게 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하고 지도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진실함과 겸손함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에 바탕한 사랑으로 학교 교사와 학생들 등 불신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찬수 목사님은 한 가지 소망이 있다고 했다. 요즘 은퇴하면서, 탐심으로 쌓은 공력이 무너지는 노목사님들을 보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무난히 버텨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니 기도해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다른 게 아니라 목회를 하다가 조용히 은퇴하는 것이 그가 지금 있는 소망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지는 것." 나이가 더 들고, 목회 경력이 붙으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목회자처럼 노후 자금으로 얼마, 아파트는 큰 평수로, 거기에다 은퇴 후의 사역처까지 챙기는 것을 보고 그는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다고 한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웃음을 잃지 않고 섬기는 한 집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다른 교회 성도들은 절대 분당우리교회에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교회에 출석하고 싶어 이사 온 사람도 받아 주지 않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들을 한단다. 그래도 섬기던 교회에 가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라며 보낸다는 것이다. 신·불신을 따지지 않고 오면, 얼씨구나 받아 주는 교계 풍토에서 참으로 신산하게 느껴졌다. 모든 교회가 이런 원칙을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 또 2만 성도를 헤아리는 분당우리교회는 거기서 절반 정도를 주변의 작은 교회에 보내는 운동을 하고 있다. 단체로 가서 예배드리고 헌금을 하면 이웃의 작은 교회에는 큰 힘이 되겠지만 솔직히 분당우리교회를 떠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비슷한 말을 해 오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 사역이 아닌가.

분당우리교회의 이런 사역들은 오늘 강의 제목으로 내가 임의로 뽑은 '하인들은 알더라'의 길을 걸어온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세미나.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분당우리교회 섬김이들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말 겸손한 자세로 목회자들이 조금의 불편함 없이 하루를 묵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성도는 그 교회 목사님을 닮아 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성도들에게 상처받고, 쉼의 시간을 위해 찾은 세미나. 이찬수 목사님의 짧은 강의만으로도 참석의 의미를 꽉 채운 것 같아 무척 기뻤다. (2015. 10. 19. 밤 늦은 시간에 곤지암리조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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