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번 판결은 짐 오버지펠(Jim Obergefell)이라는 동성애자로부터 시작됐다. 오하이오(Ohio) 주에 살던 짐은 20년을 함께한 동성 연인 존 아더(John Arthur)와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거주하던 오하이오 주에서는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없었다. 짐과 존은 어쩔 수 없이 메릴랜드(Maryland) 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3년 존이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후, 짐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오하이오에서도 부부가 되고 싶었다. 그는 연방대법원에 오하이오 주에서도 자신들의 결혼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모든 주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이라고 판결해 오버지펠 부부가 오하이오 주에서도 부부가 될 수 있게 했다. 결혼은 모든 시민에게 주어진 '평등한 권리'라는 것이 판결의 주요 내용이었다.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오하이오 주에서도 존과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연방대법원에 청원을 냈다. 지난 6월 26일 연방대법원은 그의 청원을 받아들여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가디언> 관련 기사 갈무리)

그러나 미국 보수 기독교계 언론들은 '평등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동성 결혼이 합법화했으니 강단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하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평소 직간접적으로 미국 교계의 영향을 받아 왔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기독교 국가 미국이 타락했다고 탄식했다. 지금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국도 미국처럼 기독교가 탄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서울·대구에서 열린 퀴어 축제를 반대했다. 

미국 내 한인 교회들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에 있는 한인 목사 몇몇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국 교계에서 들리는 것과 조금 달랐다. 이들은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법제화 판결로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판결 전에도 이미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36개 주에서 동성 결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기독교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는, 가장 강력하게 동성혼 반대 의견을 피력해 온 바이블벨트(Bible Belt) 지역도 동성혼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한인 목사들은 '동성애는 죄'라는 등의 동성애 반대 설교를 했다고 해서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목사는,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동성애자에게 물건을 팔지 않는다든가, 차별을 가하는 행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과거 미국이 낙태를 합법화했을 때도 기독교계는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기독교 신앙으로 볼 때 낙태는 분명 죄인데, 낙태를 합법화하면 목사들은 '낙태는 죄'라고 설교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강단에서 낙태가 죄라고 외쳤다가 감옥에 간 목사는 찾기 힘들다. 지난 2월, 맷 챈들러(Matt Chandler)라는 대형 교회 목사는 '낙태는 살인'이라고 설교했다. 그는 이 발언이 불법이라 하더라도 목회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그가 고소당했다거나 이 발언으로 감옥에 갔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시애틀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는 한인 목사는 "시애틀은 이미 2년 전 동성 결혼이 합법화해서 그런지 외려 조용하다"고 했다. 그는 법안이 통과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남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이제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위협받을 차례'라는 명제를 밀고 있다고 했다. 동성 커플의 결혼식에 쓰일 부케 제작이나 웨딩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가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고소가 진행 중인 사안들도, 아직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는데 일부 기독교인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지 말고 정확한 판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성 소수자 차별과 종교의 자유, 경계는 어디일까)

▲ 연방대법원이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할지 여부를 판결하기 전, 보수 기독교인이 밀집해 있는 텍사스 주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역 사회 목사들과 정치인들은 손잡고 '목회자종교자유보호법'을 통과시켰다. (<텍사스트리뷴> 관련 기사 갈무리)

그러나 기독교인과 교회가 삶에서 동성 결혼과 관련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일례로 미국 사람들은 주로 가까운 지역 교회나 컨벤션 센터 등에서 결혼하는데, 건물을 소유한 기독교인이 이 장소를 동성 커플에게 대여할 것인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또 동성 결혼한 부부가 기독교 대학에서 부부 기숙사를 신청했을 때 학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동성 결혼이 법제화했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처벌을 당한 경우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보수 기독교인과 정권을 바꾸려는 공화당은 이번 기회로 확실하게 세를 결속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판결 후, 강제로 동성 커플의 결혼을 인정하게 된 텍사스 주가 대표적이다. 보수 기독교인이 밀집해 있는 텍사스 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에 이미 동성 결혼을 거부하는 목회자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했다. 텍사스 주에서 통과된 '목회자종교자유보호법'은, 목사나 교회가 신앙 양심에 따라 동성 결혼 주례를 거부하거나, 교회 건물을 대여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한다. 텍사스 주에 이어 테네시 주에서도 유사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젭 부시(Jebb Bush),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ee) 등 공화당에서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를 원하는 정치인들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이들은 보수 기독교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침해받지 않는 새로운 법안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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