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원로 목회자가 중심이 돼 진행된 회초리 기도회가 7월 7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회개한다면서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내리쳤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주님 저부터 회개합니다. 제가 먼저 회초리를 맞겠습니다." '찰싹'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단상에 선 교계 원로목사 10여 명이 "회개한다" 외치면서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10회가량 때렸다.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국내 최고령 목사인 김영창 원로목사(104)도 회초리를 휘둘렀다. 한 목사는 회초리 세 개를 움켜쥔 채 자기 종아리를 내리쳤고, 또 다른 목사는 감정에 북받친 듯 허리를 숙인 채 흐느꼈다. 

7월 7일 서울 종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2015 회초리 기도 대성회'(회초리 기도회)가 열렸다. 목회자와 교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한국범죄예방국민운동본부 회초리기도대성회준비위원회가 주관했다. 조용기 원로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서상기 목사(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신묵 목사(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최복규 원로목사(한국중앙교회) 등 원로 목회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영훈 대표회장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황수원 대표회장도 자리했다. 이날 주최 측은 행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길이 60cm, 지름 1cm 정도 하는 회초리를 기념품으로 나눠 줬다.  

▲ 강단에 선 목회자들은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다소 생소한 이름의 기도회가 시작된 배경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 있다. 지난해 5월,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와 한국범죄예방국민운동본부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한국교회와 목회자의 갱신을 위해 '회초리 기도회'를 개최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이해했다.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던 선장의 모습이 목회자들의 모습과 같다고 회개하며 스스로 회초리를 든 것이다.     

하지만 당시 회초리 기도회를 향해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IVP)의 저자 박영돈 교수(고신대)는, 회초리 기도회와 같은 회개는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비호하고 구조적인 불의와 부조리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SNS와 인터넷에는 "진짜 회개는 퍼포먼스가 아닌 행동하는 것", "문제를 개인화·내면화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관련 기사: 원로목사들 6월 30일 또 회초리 맞는다 / '세월호는 내 탓' 회초리, 老목사님들의 민낯

주최 측은 이러한 문제 제기를 의식한 듯했다. 올해 보도 자료를 통해 "퍼포먼스 행사가 아닌 한국교회 스스로 회개를 부르짖고 눈물 뿌려 기도하는 순수한 기도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세월호 참사 내용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사회문제보다는 개인 신앙 문제와 관련한 회개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 조용기 원로목사가 설교를 전했다. 그는 회초리를 맞아야 할 삶을 살았다면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직접 회초리를 맞겠다고 해 놓고, 조용히 퇴장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날 조용기 목사는 '사랑과 징계'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메르스'와 같은 질병으로 한국교회를 간접적으로 꾸짖는 것으로 이해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설교 중간중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발언도 했다. 조 목사는 50년간 목회를 하면서 사랑과 동정을 실천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후임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를 잘 받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자신이 회초리를 맞아야 할 삶을 살았다면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직접 회초리를 맞겠다고 했다. 일부 교인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하지만 조 목사는 설교가 끝나고 통성 기도가 시작되자, 교회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조용히 행사장을 벗어났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한 장로는 조 목사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이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최고령 목사인 김영창 원로목사(사진 가운데)는 지팡이를 이용해 강단에 섰다. 김 목사도 회초리를 들어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조 목사의 퇴장과 상관없이 회초리 기도회는 계속됐다. 단상에 오른 원로 목회자들은 회초리를 들어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다. 회개 내용은 △교만해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지 않았고 △음란의 영에 매여 음담패설과 불륜 드라마를 즐겼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거짓을 일삼았고 △기쁘게 살지 못했고 △이웃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했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했고 △게을러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했고 △천국보다 세상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고 △수다를 떠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고 △술과 담배를 즐겼다는 것이었다.   

동성애·메르스와 관련해 한국교회와 교인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강평 목사(서울기독대학교 총장)는 "진보주의자와 전교조가 판을 치게 놔뒀다. 그래서 동성애와 학원 성폭력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회개하고 미래 세대가 여호와를 경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진옥 목사(한국범죄예방국민운동본부 상임회장)는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교인도 있다고 한다. 어쩌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 당장 회개해야"한다고 외쳤다. 

회초리 기도회는 앞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추진위원장 이주태 장로는 "교계 지도자의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고,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주최 측이 나눠 준 책자에 들어가 있는 회개 기도 내용 중 일부. ⓒ뉴스앤조이 구권효
▲ 목회자들은 술과 담배, 수다, 유흥, 쾌락 등과 관련한 회개 기도를 하면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행사에 참석한 이들이 일어선 채 회초리 기도회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 목회자가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기념품으로, 길이 60cm 지름 1cm 정도 하는 회초리를 나눠 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조용기 목사가 회초리 기도회가 열리고 있는 행사장에 들어가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 조용기 원로목사(사진 왼쪽)는 50년간 목회를 하면서 사랑과 동정을 실천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후임 이영훈 목사(사진 가운데)를 잘 받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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