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주차장 옆 작은 텃밭에 몇몇 채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고추와 가지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오이도 자라고 있죠. 텃밭 둔덕에는 수박과 참외와 호박도 올라와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녀석들이 더욱 크게 자라지 않을까 싶네요.

가끔은 그 둔덕 언저리에서 묘한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이웃 집 텃밭과 경계선을 두고 있는 그 둔석에 호박 넝쿨이 있어요. 녀석들은 제대로 돌봐 주지 않으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제 멋대로 이웃의 영역까지 침범해 버립니다. 그게 말썽을 일으키죠. 그래도 녀석 때문에 이웃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서 좋습니다.

"건강한 경계가 없는 삶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삶입니다. 이 경계와 분깃이라는 의미는 꼭 땅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늘 충실히 대해야 하는 사람이 그 경계일 수 있습니다. 오늘 성실하게 머물러야 하는 물리적 혹은 영적인 장소도 그 경계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성스러운 경계 혹은 분깃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신임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36쪽)

▲ <룻기 묵상 28일> / 오지영 지음 / 홍성사 펴냄 / 404쪽 / 1만 4,000원

오지영의 〈룻기 묵상 28일〉(홍성사)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해외에서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게 된 딸이 고국의 친정 엄마에게 '룻기'의 묵상 일기를 써 보낸 게 계기가 되어 세상에 나온 책이죠. 모압 평지에서부터 베들레헴 보리밭까지 28일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머니의 품, 포근한 대지의 품에 안기는 은총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대적인 배경과 원문의 수사적 특성,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의 섬세한 분석은 흡사 친정 엄마의 열무김치를 맛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책 전반에 여성의 섬세함과 포근함이 돋보이죠. 그중에서도 나오미의 식구들이 모압으로 이주한 원인에 대한 그녀의 가상 시나리오는 탁월했습니다. 베들레헴 곧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들이 분할받은 그 땅에 사는 남편 엘리멜렉이 빚어낸 탐욕과 실패, 그로 인한 소외를 주된 요인으로 그려냈는데, 그게 정말 독특했죠.

요즘 새벽 기도회 때 여호수아서의 땅 분할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1∼12장은 가나안의 중부와 남부와 북부의 거점 지역을 점령한 모습, 13∼21장은 그 땅을 분할하는 모습을 담고 있죠. 13장 전반부엔 아직도 정복해야 할 땅이 많다고 하면서 각 지파와 족속과 가족별로 할당받은 땅을 정복해 들어가야 할 것을 주문하고, 13장 후반부엔 이미 정복한 요단 동편의 땅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한 땅들을 되새기죠.1)

14장 전반부엔 요단 서쪽의 땅들 곧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정복해야 할 땅을 공표하고, 14장 후반부엔 갈렙이 유다 지파를 대동해 헤브론 땅을 요구한 장면이 나오죠. 이어 15장은 그 연장선상에서 유다 지파가 할당받은 땅을 소개하죠. 그리고 16장과 17장은 요셉의 분깃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가 할당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18∼19장은 나머지 일곱 지파가 각각 땅을 할당받은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 일은 유다 지파나 요셉 지파처럼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취한 게 아니었죠. 그들이 '지체하고'(רָפָה,sink down) 있을 때(수 18:3) 여호수아가 각 지파별로 3명씩 뽑아 '일어나서'(קוּם,rise up) 남아 있는 땅들을 둘러본 뒤 지도를 그려 와,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실로(Shiloh)2)에서 제비를 뽑아 할당해 줬죠. 20장은 도피성 지정, 21장은 레위인을 위한 48개의 목초지 성읍 지정과 함께 모든 분할이 마무리되죠.

그 과정 중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같은 혈족인 요셉의 자손들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더 많은 땅을 요구하자 여호수아가 삼림 지역을 '스스로 개척하라'(수 18:15, 18)고 매듭을 짓는 장면이 그것이죠. 학연·지연·혈연에 얽매이지 않는 지도자의 원칙과 신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모습이었죠.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헌법 53조 1항)을 행사했습니다. 이유인 즉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 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죠. 과연 그럴까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유성엽 의원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강화코자 했죠. 이전에는 정부 시행령이 법률과 배치될 경우에 '국회가 그 내용을 정부 기관에 통보하도록' 했지만 이번에는 '국회가 내용의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누가 봐도 그것은 삼권분립의 경계선을 확고히 하는 취지로 보입니다. 국회는 공정한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그 법을 온당하게 집행하고, 사법부는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과 국민들이 잘 지키는지 판별하면 되죠. 그걸 확고히 하는 걸 거부한 뜻은 뭘까요? 행정부의 불편을 국정 마비와 국민의 막대한 피해로 연결시켜 호도(糊塗)하려는 게 아닐까요?3) 국정 마비나 국민 피해는 오히려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 때 행정의 최고 수반으로서 보여 준 그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든지 분명한 경계선이 있어야 건강한 삶을 지속할 수 있고, 혼란이나 불안이 들끓지 않습니다. 그건 삼권분립의 경계선도 마찬가지요, 가나안 땅의 명확한 분할도,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일들이 마찬가지죠. 세상에 주어진 모든 일들을 성스러운 경계선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타인에게 신뢰를 얻는 법이니 말예요.

그런 뜻에서 볼 때 의욕이 없는 일곱 지파에게 끝끝내 땅을 할당케 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태껏 애굽의 노예 신분으로 밭을 경작하던 그들은 늘 먹여 주고 입혀 주기만 하던 의존적인 삶을 살아왔으니 땅을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책임감을 회피하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욱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자신들의 토지를 분할받고 관리하면서 진정한 주권과 권리를 누리며 살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성스러운 경계선, 거룩한 영적 경계선으로 받아들이면서 말입니다.

"내 주위에 나를 물들이고 싶은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내가 열린 만큼 내가 물들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이리라."(59쪽)

▲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펴냄 / 300쪽 / 1만 1,000원

강화도 시인 한민복의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현대문학)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수업료를 못 내던 어린 시절의 가난과 서러움, 어머니를 잃은 후의 아픔과 애환, 2008년 6월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가 전경에게 구타당해 머리를 다친 그 혼탁한 세상 모든 일들을 담담히 그려 내고 있는 에세이집이죠.

그가 그토록 애환의 시를 읊조리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명확한 경계선을 확보하지 못한 삶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심부에서 한참이나 밀려난 변방의 삶이 그렇죠. 물론 개혁은 변방으로부터 비롯된다고도 하는데, 그런 변방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감화력을 불러오지 않나 싶습니다.

이 땅에 사는 누구든지 간에, 이 땅에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다들 경계선을 확보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체가 되어 자기 주권과 자기 권리를 당당히 취하며 살아야 하죠. 그것은 '갑을 관계'가 아닌 '상생 관계', '생명 관계'임을 알 때에만 가능합니다. 내가 열린 만큼, 내가 물들고 싶은 사람들이 내 안에 들어와 살 수 있으니 말예요. 담임목사와 부목사 관계도, 목사와 장로 관계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분명 그랬습니다. 그 미천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땅을 할당한 것도, 같은 혈족을 내세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스스로 개척하라'고 한 것도, 나머지 7개 지파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땅을 취하도록 한 것도, 서로가 서로에게 성스러운 경계선을 확보하여 당당한 주권과 권리를 보장받고 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대지의 어머니 품임을 기억하며 살게 했던 것입니다.

각주)
1) soniclight.com/constable/notes/pdf/joshua.pdf
2) www.ibiblio.org/freebiblecommentary/pdf/EN/VOL04OT.pdf
3) 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62301033011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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