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가 좋은 주석책이 빨리 번역하고 주석책이나 신학서적을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한 책과 교육 과정도 조속히 개발하여 가르치길 소망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설교 비평’의 전문가들인 한종호 목사나 정용섭 목사의 주장대로 한국교회의 설교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교자들에 의해서 본문의 원래 의미가 잘못 해석되고 있거나 우리가 사는 상황과 시대 속에서 잘못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데 동의한다. 앞서 언급한 분들이 주로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에 나타난 현 상황의 분석의 오류와 성경적 해결책 제시의 문제점들을 다루었다면, 필자는 설교 비평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교자들의 양성 과정과 훈련 과정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종교개혁 이후로 개신교 교회의 예배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다보니, 예배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의 발단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설교에서 성경 본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성경은 설교를 지지해주기 위해서 사용될 뿐이다. 설교자나 청중이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성경 본문의 적절성은 안중에 없고 단지 설교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설교는 적당히 웃기거나 적당히 겁을 주거나 적당히 도전을 주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의 입장이나 위치를 합리화하거나 뻔하고 피상적인 결론으로 끝맺는다.

신학 교육에 나타난 문제점

이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면 먼저 신학 교육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반 정규 신학 과정 즉 목회자를 위한 과정(M.Div.)은 3년이다. 그동안에 수많은 과목을 배운다. 즉 성경신학, 조직신학, 교회사, 선교학, 설교학과 상담학을 포함하는 목회신학 등이다. 목회자 지망생들이 사실 수많은 과목들을 피상적으로 배운다. 물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성경 66권만 공부하는 전문대학원이나 실천신학대학원도 생겼다.

이 신학생들은 위와 같이 ‘턱 없이 많은 수업들’을 감내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건전한’ 성경 해석의 원칙을 학교에서 배우게 되지만, 실제 중요한 설교 훈련은 교회에서 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나 신도들이나 심지어 목회자 지망생들도 교회 성장 지상주의에 몰입해 있다. 그러므로 좋은 의미에서든지 나쁜 의미에서든지 학생들은 교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원한다. 그런데 현실은 거리가 멀다. 경직되고 오래된 커리큘럼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현실에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적응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 큰 문제다. 물론 가르치는 사람들은 별 수고 없이 오랫동안 가르치기를 원할 것이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고 힘이 적게 드는 수업을 바라기 때문에 이 문제는 쉬운 해결책이 되기가 어렵다.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많지 않은 성경과 관련된 수업 과정에도 그 내용은 주로 성경 비평 역사에 대한 ‘비평’, 신학적 논란거리들, 그리고 성경개요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성경책 3장 정도를 강의하는데 한 학기를 보내는 것으로 악명 높다. 사실 이러한 강의 내용을 가르치면 교리에 능통한 신학자를 양성하기도 어렵고 성경을 많이 설교하고 적용하여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할 한국교회의 목회적 상황 속에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회의 목회자로서 필요한 목회 전문가가 되기에도 현재의 커리큘럼은 역부족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기존에 주어진 커리큘럼에 아무런 ‘가책’ 없이 수업을 채우는 것도 사실 문제가 있다. 신학 수업을 받으면 성경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도 사실이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성경은 읽지만, 어떻게 성경을 읽고 설교할지 알 수 없다가 아닐까?

▲ 신학생들은 ‘턱 없이 많은 수업들’을 감내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건전한’ 성경 해석의 원칙을 학교에서 배우게 되지만, 실제 중요한 설교 훈련은 교회에서 하게 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필자가 목회자가 되기 위한 신학 과정을 듣던 동안에 성경 과목은 주석 페이퍼와 신학 페이퍼를 각각 하나씩 내고 말미에는 설교 목차를 제시하는 과제들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성경언어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주석 작업과 본문에 대한 신학화 작업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개인 수행 능력을 전제로 한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마무리 지었나를 생각해보면 성취감에 자랑스럽기보다는 기가 찰 노릇일 뿐이다. 구약 분야는 우리말로 된 참고도서가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주석 작업과 신학 작업을 완성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세부적이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과정이나 책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 참고 서적이나 교육 과정이나 제대로 훈련된 인도자가 없이 학생들이나 설교자들만을 탓하는 것은 사실 잘못이다. 그러한 면에서 읽기가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주석류와 목회자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성경 해석 책들이 계속해서 출판되어 나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물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히브리어 헬라어 원문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영어와 독일어로 된 원서들로 공부하는 때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시급한 것은 교수가 좋은 주석책이 빨리 번역하고 주석책이나 신학서적을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한 책과 교육 과정도 조속히 개발하여 가르치길 소망한다.

구약이 인기가 없는 데는 한국교회가 삶의 문제를 등한히 하고 구원론적 이해에만 접근했던 탓도 있다. 게다가 신학 교육에서도 커리큘럼에서도 기계적인 균형만을 맞추다보니, 신약보다도 구약이 덜 가르쳐지고 덜 다루어지게 되었다. 구약이 더 어렵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신약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더 많은 시간과 기회를 주어서 그 ‘어려움증’을 해결할 생각보다는 오히려 그 기회를 원천차단하고 그러한 낙인만을 찍어줄 뿐이다. 한국교회의 강단이 절기 설교, 주제 설교, 기복주의 설교에 몰두하다보니, 창의적이고 심도 깊은 성경 본문 설교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요즘 일부 신학대학원이나 바이블 컬리지 등에서 이러한 부족한 면들을 채우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경을 책별로 가르쳐야 하고 읽어야 하고 성경에 근거한 ‘건전한’ 설교와 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연구·공유해야 한다. 기존의 설교 비평은 한국교회의 나태함과 사태적 심각성에 큰 ‘충격’은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교회를 변화시키기에는 그 여파와 영향력이 부족하다.

목회자 사역에 나타난 문제점

이제 목회자 사역상에 나타난 설교적 문제점을 살펴보자. 한국교회는 신학생들이 학위 과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상당부분의 재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이들이 졸업한 후에 나머지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일터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신학 수업보다도 교회(대중)의 필요 혹은 담임목사의 성경관과 가치관(목회 비전?)이 그들의 미래에 매우 더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즉 이들에게는 공부를 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지만, 이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교회적 필요와 요구다. 더 심한 경우는 이미 자신의 가치관과 신학을 정립한 후에 자격증을 따러 신학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의 경우에 교회의 요구에 따라 학교에 등교 여부가 결정된다. 일반 대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새벽기도와 부흥회, 수련회 등 수많은 교회의 사역들이 정상적인 신학생의 양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자기 자식에게 공부는 시키지 않고 일만 시키는 부모가 없듯이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어갈 신학생들의 설교 훈련의 기회는 적고, 생계는 위협받고, 상명하달식의 조직체계에서 요구되는 일들은 많고, 설교든지 교육이든지 기존 체계든지 담임목사 혹은 신도들의 기대로부터의 일탈(逸脫)은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옛날처럼 교회만 차려놓으면 신도들이 몰려올 때는 너무 바빠서 설교에 등한히 하고 이제는 신도들이 부족해서 설교에 등한히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과거의 세월은 무계획과 무원칙의 한 세기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50~60대의 나이든 목회자들과 설교자들은 이러한 일들이 21세기에도 일어날 줄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이미 목회자들은 과포화 상태고 신도들의 수도 줄고 있다. 젊은 사역자들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고 변화에 참신하게 직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주어진 상황과 요구에 부응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편안함을 주고 만족을 주는 설교자를 추구하는 신도들이 있는 한 나이든 목회자들은 평안한 노후를 맞이하겠지만, 이제 20~30대 목회자 후보생들에게는 재앙일 수 있다. 성공한 목회자들과 성공한 신도들과 교회들이 선한 노력과 기회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설교 개혁을 포함한 한국교회의 미래는 더 오랫동안 어두울 것이다. 젊은 사역자들이 성경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에 그리고 새 시대의 정신과 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회와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21세기의 설교자의 앞날을 조금 더 밝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언을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어야 할 책임이 특별히 성경을 전공한다는 신학자들에게 있다. 이들이 진리를 알지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보이기 때문이다.

성기문/ 말씀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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