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서 한 권 써내지 않은 물리학 교수가 신앙 서적을 냈다. 전남대학교 물리학과 황인각 교수. 그는 평신도의 눈으로 본 한국교회 모습을 책으로 풀어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공서 한 권 써내지 않은 물리학 교수가 신앙 서적을 냈다. 저자는 고등학생 때 예수를 영접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공부를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젊은 나이에 교수직에 올랐다. 그렇다고 이 책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잘하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었다고 고백하는 간증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교회를 상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저자는 20여 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9번 교회를 옮겼다. 집이 이사를 가 옮긴 탓도 있지만, 교회에 분쟁이 나고, 빚 때문에 예배당이 경매로 넘어가고, 교회와 저자의 신앙이 안 맞는 등 여러 이유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스무 명 남짓한 개척교회부터 수천 명에 이르는 대형 교회까지 여러 규모의 교회를 거쳤다.

그가 여러 교회들을 옮기면서 보았던 한국교회 문제점들을 책에 담았다. 실적 위주로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 말씀은 없고 개인의 생각이 나열되는 설교와 예배, 다음 주에 나오라는 말만 전하는 주일학교, 명예와 체면으로 이뤄지는 봉사 등. 책의 제목은 '성도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이다. 마치 '나는 이렇게 안녕하지 못한데 당신들은 안녕하냐'고 묻는 것 같다.

▲ <성도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책의 제목이 마치 '나는 이렇게 안녕하지 못한데 당신들은 안녕하냐'고 묻는 것 같다.

<뉴스앤조이> 기자는 평신도인 그가 한국교회 문제를 꼬집는 책을 쓴 이유를 묻기 위해, 책의 저자 황인각 교수(전남대학교 물리학과)를 만났다.

황인각 교수는 세 그룹을 염두하고 책을 썼다고 했다. 전반부는 교인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있는 목회자들과 앞에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교인들, 후반부는 문제 의식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황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전도 집회 때 들은 설교가 교회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가 왜 구세주인지,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 선교 단체 경험도 신앙의 틀을 잡아 주었다.

"대학에 가서 CCC라는 선교 단체에 들어갔어요. 아침마다 동기들과 성경 구절을 묵상했는데,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는 시간이었어요. 2학년 때는 순장이 됐어요. 순장은 전도를 해야 하고 소그룹을 인도해야 해요. 교회를 다닌 지 3년도 안 된 제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어요. 성경을 읽을 때도 이전과 달랐어요.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해 성경을 읽으니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할 수 있었고, 혼자 감격하고 울 때가 많았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 마치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목사님 말씀에 잘 순종하는 모범적인 기독교인처럼 보인다.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책을 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언제부터 교회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대학생 때부터예요.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고 말해요. 선교 단체에서 이런 내용을 배웠죠.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목회자가 없더라도 학생들끼리 모여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전하면 그게 교회라고요.

그런데 교회는 다르게 가르쳤어요. 교회가 목회자 중심, 예배당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요. 교인들도 수동적이었어요. 대학부 학생들에게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면, 목사님 없이 우리들끼리 어떻게 성경을 읽고 해석하느냐 그러다 큰일 난다는 식이에요. 담임목사도 우리들끼리 성경 공부하는 것을 금지했어요."

황 교수는 교회를 9번 옮겼다. 유학이나 이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교회 안의 갈등 때문이었다. 황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이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처음 다니던 교회에는 분쟁이 생겼어요. 장로들이 목사를 쫓아냈어요. 설교 시간에 교인들이 소리 지르고, 목사와 장로들이 험한 말을 하며 몸싸움을 벌였어요. 결국 목사님은 몇몇 교인과 함께 교회를 떠났어요.

새로 옮긴 교회는 빚을 갚지 못해 망했어요. 스무 가정이 모이는 교회였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였죠. 그런데 담임목사가 새로 오더니 교회가 달라졌어요. 더 성장해야 한다며 갑자기 새 건물로 옮겼어요. 그러고는 1년 후 빚을 못 갚아 예배당을 내놓았죠. 목사는 어느 날부터 교회에 안 나오고 교인들은 모두 다른 교회로 흩어졌어요."

▲ 황인각 교수는 교회에서 느끼는 분노와 답답함을 글로 풀었다. 어떤 이유로 자신이 화가 나는 건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교회가 무엇인지 정리했다. <성도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황 교수는 9년 전 광주에 있는 교회에 다닌 게 책을 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전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채용되어 광주에 처음 왔을 때였다. 집과 가까운 대형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주일예배가 끝날 때마다 황 교수는 분통함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설교를 듣고 화가 났어요.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울 거다'는 등의 애기만 했어요. 그냥 좋다, 은혜롭다, 기쁘다는 식이에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우리가 말씀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의 설교는 하지 않았어요. 교인들은 그런 말씀에 열광했어요. 그걸 보자 퍼뜩 정신이 깨면서 나라도 흐지부지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는 예배가 끝날 때마다 속에 있는 분노와 답답함을 글로 풀었다. 어떤 이유로 자신이 화가 나는 건지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오늘날 교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묻고 글로 답했다.

"오늘날의 교회는 진리를 배우고 영적인 훈련을 하기에 불편한 곳이 되어 버렸다.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더라도 자신들이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에 그리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교회는 다른 데에 마음이 쏠려 있다. 교회를 어떻게 부흥시킬까. 어떻게 행사를 성대하게 진행할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건축은 어떻게 할까, 돈은 어떻게 모을까 등을 고민한다. 이런 고민들을 해결하는 데 힘을 다 쏟느라고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도 때때로 필요하겠지만, 이것들이 교회 활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25쪽)

그는 한국교회 문제가 목회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모두의 문제라고 했다. 교회가 회복하려면 평신도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목회자만 의지하지 말고,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자 스스로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인과 신앙에 대해 얘기하면 한계에 부딪혀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관념으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제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는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더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지. 그런데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교회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우리 모습이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나요."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뿜어내요. 향수가 향을 발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말이에요.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 밖에 버려진다는 말씀을 보세요. 우리의 존재와 일상의 삶에서 '예수 맛'이 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가 자신의 존재에 충실할 때 자연스레 세상은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이 사람들 안에는 우리에게는 없는 어떤 것이 있구나', '그들은 살아 있고, 서로 사랑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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