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위치한 국수교회(김일현 목사)는 공연하는 교회로 유명하다. 매년 20~30회씩 예술 공연을 연다. 피아노 독주회부터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예배당도 공연에 적합한 콘서트홀 구조를 갖췄다. 시골 교회가 문화 사역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국수교회는 문화를 매개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한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문화 공연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교인들은 문화가 먹고사는 일을 당장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교회 가면 대학 간다

김일현 목사는 1988년 국수교회에 부임했다. 지역 주민 대부분은 노인이었고, 청년이나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김 목사는 아이들이 아무런 꿈도 없이 커 가는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아이들을 위해 교회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1989년부터 교회 공부방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교회 공부방 개념이 없었다. 교인들이 열심히 도와줬고, 아이들도 공부에 열심을 내기 시작했다. 공부방을 만든 이듬해에 1명이 대학에 진학하더니 2년째에는 4명, 3년째 되던 해에는 10명이 대학에 갔다. 자연스럽게 교회에 가면 대학에 간다는 공식이 생겼다.

공부방은 교회와 지역사회에 새로운 동력이 됐다. 노력했던 것보다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나니 교인들은 자부심을 느꼈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외부인들도 교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없던 마을에 대학생이 생기기 시작했고, 교회가 대학교 보내 주는 곳으로 소문이 났다. 물론 공부방은 지역 학생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소문은 양평군까지 퍼졌다. 양평군청에서 매년 예산을 지원받게 됐고, 받은 예산으로 원어민 강사를 초빙해 영어 교실을 운영하는 등 외연을 넓혔다. 시간이 흘러 교회 공부방 출신 학생들이 미국 대학 교수가 되기도 했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방학 때면 고향에 내려와 고향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기도 시범 공부방으로 선정됐다.

현재는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 영어 강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성 교육과 특기 교육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전과 같이 체계적인 공부방은 운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저녁 늦게까지 잡아 놓는 등 요즘에는 오히려 교육이 과열됐다는 판단에서다.

국수교회는 주중에 교회 공부방을 운영한다. <뉴스앤조이>가 교회를 찾은 날에도 공부하러 온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첼로 소리를 따라가 보니 초등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선생님과 마주 앉아 레슨을 받고 있었다. 중학교 학생들도 학교 수업을 끝내고 삼삼오오 교회를 찾았다.

▲ 국수교회는 주중에 교회 공부방을 운영한다. 예전과 같이 체계적인 공부방은 운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악기 레슨이나 생활 영어 강좌 등을 한다. 수업은 교회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시큰둥하던 주민들, 이제는 악기 하나씩…1년이면 페스티벌만 3번

국수교회가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역은 문화 사역이다. 문화 사역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다. 김 목사의 아내가 3개월 동안 서울을 오가며 플루트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교회에서 연습하고 있을 때면 동네 주부들이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김 목사는 이들에게도 문화적 욕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3개월밖에 배우지 않은 김 목사의 아내였지만, 그렇게 플루트 선생이 되어 동네 주민들을 지도했다. 그 모임은 3개월 만에 앙상블이 됐고, 지역 교회를 순회하며 특송을 했다. 몇 개월 뒤에는 면 행사나 군 행사에도 참여하게 됐다.

김일현 목사는 199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문화 사역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지역 주민과 교인들을 대상으로 악기 교실을 열었다. 플루트, 바이올린 등 악기 5대를 200만 원에 구입했다. 사역 초창기에는 먹고살기도 힘든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시큰둥하던 주민들의 반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주민들이 하나둘 악기 교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악기 교실은 조그만 오케스트라로 발전했다. 오케스트라는 예배당에서 음악회를 열었고,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런 활동을 20년 넘게 지속했고, 현재는 양평군 오케스트라의 모태가 됐다. 1년이면 일주일 동안 지속하는 페스티벌을 3개 정도 연다. 페스티벌에는 몇 천 명씩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페스티벌 외에도 수시로 각종 콘서트를 예배당에서 개최한다.

▲ 김일현 목사는 스스로 농촌 목회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28년간 농촌 목회를 했지만, 주민들의 삶에 녹아들지 못했다고 했다. 함께 농사도 짓고 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아직도 익숙지 않다고 했다. 대신에 교육 사역과 문화 사역을 통해 농촌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김 목사는 "문화는 누구나 누릴 권리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 나가 일하고, 자기 돈 내고 극장 한번 가 본 적 없는 주민들을 보면서 교회가 문화 향유의 통로로 쓰임 받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국수교회는 어느덧 양평군의 명소가 됐다. 색소폰 연주자 심상종, 프랑스의 천재 피아니스트 파스칼 갈레, 모스크바국립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음악인들과 공연단이 국수교회에서 공연을 가졌다. <뉴스앤조이>가 방문한 날에도 4월 24일에 연주회가 예정된 오르가니스트 오세은 씨가 연습 중이었다. 음악에 문외한인 기자가 듣기에도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오르간 선율은 인상적이었다. 시골의 작은 교회가 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05년 신축한 예배당도 한몫했다. 국수교회 예배당은 전통적인 예배당과는 확연히 다르다. 100평 규모의 원형 예배당은 음향을 중시해 설계했다. 벽돌의 위치와 흡음재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예배당 중앙에서 소리를 내면 마이크를 대고 말하듯 공명이 있고, 천장에는 웬만한 공연장에 버금가는 조명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 국수교회 예배당은 음악 공연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원형 콘서트홀 구조다. 연주자와 관객이 구분되지 않고, 한데 어울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사진 제공 국수교회)
▲ 국수교회가 기독교 음악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올린다. 색소폰 연주자 심상종, 프랑스의 천재 파이니스트 파스칼 갈레, 모스크바국립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 음악인들과 공연단이 국수교회에서 공연을 했다. (사진 제공 국수교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

국수교회가 교육이나 문화 사역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교회 안에는 문화사업단, 사회봉사단, 선교단 세 개 부서가 있다. 선교단은 말 그대로 선교를 위한 부서다. 국수교회는 필리핀에 선교 센터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교회에 시무하던 부목사를 필리핀 선교 센터로 파송했다. 현재는 사역 범위를 넓혀 현지 학생 교육을 위한 학교를 건립했다. 선교부원들이 필리핀 선교 센터의 운영과 후원을 담당한다.

사회봉사단은 전철역 및 거리 청소, 학교 급식 지원, 빨래방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역 사회를 위한 사역을 꾸준히 해 온 탓인지, 최근에는 양평구청으로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을 위탁받았다. 140명의 지역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뜨개질 모임을 만들어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도 들어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에게 열려 있다.

▲ 국수교회는 빨래방을 운영한다. 아침마다 독거노인, 몸이 불편해 살림할 수 없는 가정, 소년·소녀 가장이 있는 집 들의 빨래를 수거해 세탁을 한 후 저녁에 돌려준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예배는 일주일에 한 번만…"사역을 전도 위한 미끼로 사용해선 안 돼"

국수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사역을 늘리기 위해 교회 행사는 최소화했다. 예배도 일요일 공동 예배 한 번뿐이다. 김 목사는 예배로 끝나는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일정 기간 이상 교회에 다닌 사람들은 목회자와 함께 사회를 섬겨야 하고, 교회 밖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교회에서 음악회를 열 때는 외부인들이 눈치 보면서 잘 안 들어왔어요. 그들이 공연을 보러 오면 우리는 대접하는 데만 신경을 썼습니다.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물었어요. 왜 우리 보고 예수 믿으라는 소리 안 하느냐고 말이죠. 내가 반문했어요. '예수 믿으라고 하면 믿겠느냐?' 그랬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얘기한다고 믿지도 않을 걸 왜 입 아프게 얘기하겠느냐. 그 소리 하는 거 보니까 믿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고 농담하고 넘어갔어요.

일부 교회는 전도를 위해 문화 교실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교회가 그 속에 전도라는 낚싯바늘을 숨겨 놓고 있다는 걸 다 알아요. 그렇게 얄팍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없이 섬기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를 영접한다고 생각해요. 영혼 구원 문제는 하나님과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가 강요한다고 되는 건 아니죠. 단지 우리는 섬김을 통해 접촉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목사는 국수교회가 하나의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골의 작은 교회도 얼마든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 하나 잘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방방곡곡에서 이런 사역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전국에 있는 교회나 예배당을 문화 공연장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와 정부 모두에게 득이 된다고 했다.

"정부도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순이 많아요. 외국에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돌아오면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교수 자리도 없고, 공연하려 해도 변변한 공연장이 없죠. 예술 전문가들은 많지만,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마을마다 성당과 교회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 장소를 문화 공간으로 개방하면 좋겠어요. 정부가 어느 세월에 극장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비용은 또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종교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면 정부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공연 프로그램을 만들어 음악가들과 계약을 맺고 공연만 주선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음악가들은 먹고살 수 있어 좋고, 주민들은 삶의 자리에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공연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또 지역사회 속에서 섬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죠."

▲ 국수교회는 2년 전 파이프 오르간 제작을 완료했다. 국내 유일의 파이프 오르간 제작자인 홍성훈 오르겔바우마이스터에게 작업을 맡겼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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