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희생자를기억하는안성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종교인, 농민 등이 '세월호 1주기 안성시민 추모제'를 계획했다. 분향소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여중생들을 위호하는 주부들. ⓒ송상호

대한민국의 안성 사람들도 4월 16일을 그냥 보낼 순 없었나 보다. '세월호희생자를기억하는안성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종교인, 농민 등이 '세월호 1주기 안성시민 추모제'를 계획했다.

눈물 터진 아이들, 어른들이 꼭 껴안아 주다

이 추모제는 안성에 있는 3대 종교(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을 초청해 세월호 고인들과 유족들뿐만 아니라 세월호로 인해 상처받은 많은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당일, 안성 내혜홀광장엔 오후 4시부터 분향소가 차려져 운영되었다.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분향을 했다. 청소년들은 유족을 생각하며 노란 종이배를 접고, 노란 리본을 줄에 매달았다.

그런데, 노란종이배를 접던 여중생 두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보다 못한 주부 두 명이 그들을 안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속으로, 겉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런 일은 분향소에서 가끔씩 일어나곤 했다.

이날 추모제를 준비하던 주부들은 "쟤들이 철없어 보여도 (세월호 때문에), 참 많이 아팠었구나"를 연발했다. 그랬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어른들만 미안하고 죄송하고 아픈 것이 아니었던 거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당사자였기에, 그들이 더 아팠었던 거다.

▲ 내혜홀광장에 놀러 온 한 꼬마가 차려진 분향소를 한참 보고 있다.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송상호

3대 종교인들의 추모제가 시민들 위로

시민들과 약속한 7시가 되자 추모제가 시작됐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는 시간에 사회자가 "미안하다" 5창을 제안했고, 분향소 밑에서부터 묵직하고도 엄숙한 목소리들이 분향소로 전달됐다.

불교 쪽에선 칠장사 주지 지강 스님이 홀로 나와 고인들과 시민들을 위로했다. 지강 스님은 "미안하다는 말은 오늘까지만 하고, 우리가 힘을 내어 좀 더 세상을 사랑하자"고 제안했고, 시민들은 그 말에 합장을 했다.

백성교회 정영선 목사와 신도들 몇 분이 단상에 올랐다. 그들은 고운 목소리로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정영선 목사의 위로의 설교, 이어지는 기도 시간엔 종교를 초월해서 시민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한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공도성당 이석재 신부, 미리내성지 류덕현 신부, 대천동성당 최병용 신부 등 세 사람이 예복을 입고 단상에 오르는 모습 자체가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의 기도문을 사람들이 따라했다. 거기엔 개별 종교는 이미 없었고, 위로와 감사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 칠장사 주지 지강 스님의 설법은 고인, 유가족과 시민들 모두가 위로받기에 충분했다. ⓒ송상호
▲ 백성교회 정영선 목사와 신도들이 단상에 올라와 고인들과 시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송상호
▲ 대천동성당 최병용 신부, 미리내성지 류덕현 신부, 공도성 이석재 신부 등 세 사람의 추모 예식은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송상호

여고생의 발언에 시민들은 희망을 주워 담고

시민 발언 시간의 첫 주자는 안성 창조고등학교 최새연(2년) 양과 친구들이었다. 촛불을 들고 단상에 오르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 모두의 친구 303명이 잠든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사회가 변화되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줄 알았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함께 기억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최새연 양의 차분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자, 시민들은 미안한 마음을 넘어 희망을 주워 담고 있었다. '그래, 저 아이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추모제라 웬만하면 박수를 치지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박수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시민 발언에 나선 주부 이상희 씨는 "나도 자녀를 둔 입장에서 이 자리에 올라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참담한 심정으로 말을 풀어나갔다. 이상희 씨는 울며 발언하면서도 "세월호 희생자들과 끝까지 함께하자"며 굳건한 결의까지 다지기도 했다.

▲ 시민 발언에 나선 최새연 양과 창조고 친구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숙연했다. ⓒ송상호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추모 공연으로 중년 남성(이인동 씨와 이우영 씨) 두 명이 단상에 올랐다. 그들도 세월호 희생자 청소년만 한 자녀를 두었기에 그들의 노래는 이 시대의 아버지로서 더 묵직해 보였다. '마음을 다해 부르면'과 '천 개의 바람의 되어'란 곡명대로 그들은 마음을 다해 불렀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날 추모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 순간이었다. 당초 종교인들이 단상에 올라와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합창하기로 했지만, 그 자리엔 이날 참석한 청소년들 모두가 올랐다. 내혜홀광장 무대를 가득 메운 청소년들과 단상 아래 시민들이 함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열창했다.

열창을 마치고, 어른들과 청소년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주고받았다. 몇몇 청소년들이 이번에도 또 울음보를 터뜨렸다. 이번엔 상처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감사의 눈물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른들이 자신들을 위로해 주었다는 고마움의 눈물 말이다.

공도 부영아파트에 사는 주부 J 씨는 이날 추모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까칠한 딸과 무뚝뚝한 아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고 했다. 이 시대에 종교가 해야 할 일(치유와 위로)을 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았으며, 사랑이 전염되는 날이었다.

▲ 단상에 오른 청소년들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열창하고 있다. ⓒ송상호
▲ 분향소에서 추모하는 청소년들.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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