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 예배, 성공적?'

뜨거운 찬양, 그리고 기도. 신학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탄탄한 설교. 거기다 감동에 재미까지 있었으니 오늘 예배는 성공적이다. 집에 가는 길에는 온라인으로 뜨고 있는 신학자, 그리고 목사님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또 간혹 들었던 신앙적 묵상들을 올려 본다. 그리고는 몇몇 지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아 허전하다.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느낌이다. 김은 모락모락 나서 정말 먹음직스러운 찐빵인데, 밋밋하게만 느껴진다. 우리의 인생 이야기다. 뭔가 많은 것을 하고 있고, 또한 이 머리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다량의 영적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 <일상, 부활을 살다> / 유진 피터슨 지음 / 권연경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160쪽 / 1만 원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인 동시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인 이야기일 테다.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신앙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이벤트로써 나머지의 나날들을 연명하는 신앙이 어느덧 대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이벤트 속에 감격하지만, 어느새 공허함에 빠진다. 무대 위를 올라가는 스타들이나 느끼는 스타병이 어느새 우리에게도 엄습한 듯하다. 그것도 가장 소중한 '영적인 처소'에 말이다.

이러한 '스타병'에 걸려서 화려하지만 내공은 사라져 버린, 공허한 일상을 영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참 좋은 목회자 한 명이 있다. 바로 유진 피터슨. 그는 일상의 언어로 성경을 새롭게 번역한 학자이다. 또한 영성에 대해 깊이 사유할 뿐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영성의 가르침을 들려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의 책 <일상, 부활을 살다>에는 그런 유진 피터슨의 독특한 향내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쳇바퀴와 같은 지루한 삶 속에서

우리의 모든 삶은 통제가 가능하다. 하물며 들려지는 설교, 찬양, 수련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통제 불가능한 바깥의 어떤 것을 즐기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항상 '상식선'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삶이 밋밋해졌다. 하나님의 초월성, 하나님의 신비함은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유진 피터슨은 조심스레 '안식'을 제안한다. 우리는 사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통제 가능한 삶'을 이룩한 세대들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탄함'을, 그리고 '신비'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삶은 퍽 이성적이다. 이성적이라서 퍽퍽하기만 하다. 이런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맛볼 방법,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 '경탄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다. 이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해결책은 안식 외에는 없다.

실제 안식이란 그렇다. 안식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거룩케 되는 경험을 한다. 안식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다. 또한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목도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는다. 바로 그 지점, 안식을 통해서 거룩케 된 일상의 지점, 그 지점이 앙꼬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이처럼 우리는 안식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통제 가능해야 한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그 모든 삶 이면에 신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 앞에 마주 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는 우리의 통제 가능한 모든 범위를 넘어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신비'를 다시 되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경외함'을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친밀함'이 솟구친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적인 삶'의 앙꼬를 채우자며 다짐할 수 있다.

식상한 말은 이제 그만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마케팅으로 가득하다. 우리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다. SNS에,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는 온갖 꾸며진 말들로 가득하다. 말들만 들어 보면 모두가 예수요, 사도요, 순교자의 무리다. 물론 말만 그렇다.

이런 말들의 현란함 속에서 진정 일상의 부단한 영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이러한 말들은 일상의 부단한 영성을 대체한다. 우리의 현란한 말들을 일상의 부단한 영성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 유진 피터슨은 친구의 손녀가 던진 한마디의 말을 우리에게 던진다. '할머니, 하나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요.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건 저도 다 믿어요. 그러니 평소처럼 그렇게 살아요, 네?' 정말 우리는 그냥 평소처럼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평소처럼 사는 삶의 자리로 유진 피터슨은 우리에게 '식사의 자리'를 제시한다. '식사의 자리'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받고, 복을 베풀고, 찢고, 나누는 자리이다. 이 일상적인 식사 속에 유진 피터슨은 '주님의 성찬'이야기를 접목시킨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그저 받으신다. 그것이 하찮은 오병이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는 우리의 하찮은 삶을 향해 복을 베푸신다. 그리고는 우리의 삶을 찢어 버린다. 우리의 삶 속에는 세상 질서에 누락된 약함과 악함이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찢으실 적에 우리의 약함과 악함도 함께 찢겨진다. 찢으신 후, 다시 주님께서는 그 삶을 우리에게 돌려주신다. 어떤 삶인가? 바로 새로운 삶, 부활 생명을 얻은 삶이다.

유진 피터슨은 식사를 통해 이 '생명의 교환'을 기억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식사를 통해 '생명의 교환'을 곱씹는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말이 아닌, 삶에서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비인간적 삶에서 인간으로 살기

우리는 '전문가'들이 필요한 시대를 산다. 교회에서도 설교 전문가, 찬양 전문가, 신학 전문가들을 고용한다. 그뿐일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세미나들이 있다. 중보 기도 세미나, 영성 세미나, 셀그룹 세미나 등등. 다양한 입맛대로, 필요대로 세미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세미나들로 우리의 앙꼬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찐빵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문가'들을 요구하는 시대는 결국 우리를 '인간 아닌' 소비재로서, 또한 재화로서 취급하는 이른바 '비인간적 사회'를 구성해 낸다. 각자는 관계를 맺고 함께 어우러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포기를 권유받는다. 그리고는 함께 어우러지기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고 한다. 하물며 교회에서조차.

하지만 유진 피터슨은 이런 현대적 삶의 풍토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혹은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함께 친구로서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관계적 삶'이랄까.

실제 부활 신앙의 이야기는 다양한 '관계'의 형성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삶 또한 이 부활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죽는다. 바로 이 현대 세상의 풍토에 대해서. 그러고는 다시 태어난다. 부활한 예수의 몸으로서, 이른바 관계하는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 신앙의 이야기에서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관계가 아니다. 함께 친구처럼 어우러지는 그 관계의 삶으로 부름받는다. 그리고 거기서 공동체가 형성된다. 유진 피터슨은 이런 공동체에 함께 거하는 것, 이를 영성적 삶의 토대로 제시한다.

앙꼬 채워 가는 삶을 향하여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은 사실 우리들을 위한 이야기다. 우리는 일상의 복잡다단함 속에서, 부단히 그 이야기를 살아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소비 심리'는 계속적으로 성경의 이야기들을 성경 속으로, 그리고 영웅들에게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들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착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나 맛나게 김이 피어나는 찐빵으로 살지만, 사실상 앙꼬는 채우지 못했다.

예수의 부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또한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 이른바 부활 생명을 얻었으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위를 둘러보며 부활 생명을 이미 얻은, 혹은 살아 낼 스타를 찾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대 위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또 요란하며 바쁘지만, 이제는 일상 속에서 부단히 이뤄 나가는 영성을 겸비해야 하지 않을까? 유진 피터슨의 책이 큰 도움이 되어 줄 테다. 우리 이제 찐빵 같은 우리네 인생을 주님께 드리자. 그러면 우리네 인생을 찢으셔서 그 안에 앙꼬를 가득 채워 넣어 주실 테니.

"유진 피터슨은 우리가 다시 한 번 부활의 경이에 직면하도록 인도한다. 처음으로 빈 무덤에 당혹하고, 살아나신 예수 앞에 놀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더듬으며 따라가면서, 우리 역시 부활이라는 그 놀라운 현실에 직면하도록, 그리고 그 달라진 현실에 기초하여 새로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도록 돕는다. 저자 자신도 잘 알다시피, 어쩌면 이는 예수의 부활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중략)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주는 무게와 절망감은 복음의 음성이 들리는 마당이기도 하다. 복음이란 애초부터 '죄가 가득한 곳에 은혜가 더 흘러넘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ㅡ (<일상, 부활을 살다>, 17쪽)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일단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사람인지, 세상에 대하여 경계를 하고 있는 불안정한 사람인지, 혹은 온갖 경계선 위를 돌아다니는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경계인'이라는 사실. 부산의 한 교회에서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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