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 9000권의 대학 장서가 25만 원에 고물상 폐지로 팔렸다. 책 한 권에 13원꼴인 셈이다. 그러나 책을 팔아 넘긴 직원은 학교로부터 아무 징계도 받지 않고 퇴직했다. 사진은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도서관. ⓒ 뉴스앤조이 구권효

1월 초에 <뉴스앤조이>는 침례신학대학교(침신대) 직원 유 아무개 씨가 보고 없이 신학 서적, 옛날 신문, 일반 도서 등 장서 1만 9000권을 25만 원에 폐기 처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교의 도서관 장서를 한 권당 13원꼴로 처분한 셈이다. 그럼에도 유 씨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퇴직금까지 수령해 학교를 떠났다. <뉴스앤조이>는 침신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봤다.

2천여 권 남겨 놓고 전부 처분…징계 전 퇴직

2010년 3월, 유 씨는 침신대 안성캠퍼스 관리직원으로 채용됐다. 안성캠퍼스는 옛 수도침례신학교(수도침신) 건물로 2006년 수도침신이 침신대와 통합한 이후로 건물만 남아 있는 상태다. 당시 침신대는 서울에 대학원을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를 대비해 안성캠퍼스의 도서 2만 1000권을 그대로 남겨 뒀다. 도한호 전 총장이 이 도서를 옮길 때까지 잘 보존하라고 지시해 침신대 직원들이 안성캠퍼스에 가서 서가와 도서를 비닐로 포장해 놓은 상태였다.

2010년 11월, 유 씨는 이 2만 1000권의 도서 중 1만 9000권을 고물상 업자에게 팔아 넘겼다. 학교는 이를 2013년까지 전혀 몰랐다. 2013년 11월에 비품 조사를 하러 안성캠퍼스에 간 직원이 이 사실을 발견했다.

<뉴스앤조이>가 확인한 결과 유 씨는 책만 팔아 넘긴 게 아니었다. 장서 1만 9072권 외에도 가구 및 주방 집기류(조리 기구, 싱크대, 선반, 가스통), 기름통, 화분, 난로, 폐지(신문 등), 컴퓨터 본체 및 모니터, 이동통신용 중계기까지 고물상에 팔았다.

이렇게 보고 없이 학교 장서 등을 무단으로 헐값에 처분했지만 유 씨는 대학으로부터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퇴직했다. 정상 퇴직이었기 때문에 퇴직금까지 수령했다.

2014년 1월, 학교는 유 씨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열었다. 조사위원회는 유 씨를 조사 후 총장에게 보고했고, 총장은 이를 참고해 유 씨의 징계를 요구하는 안건을 9월에 열리는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었다. 이사회가 열리기 얼마 전인 8월 31일, 유 씨는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유 씨의 사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9월 이사회에서 유 씨 징계안을 올렸지만 '징계 규정이 모호하니 규정을 먼저 정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총장이 직원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으면 1개월 뒤 자동 퇴직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다음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유 씨는 퇴직할 것이 거의 확실했다. 결국 2014년 12월에 열린 차기 이사회에서 총장은 유 씨가 이미 퇴직했다고 보고했다.

"책이 비에 젖어 못 쓰는 상태였다" vs "젖을 수가 없다. 말도 안 된다"

유 씨는 학교에서 보관 처리해 놓은 책을 왜 팔아 넘겼을까. 유 씨는 고의로 팔거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판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단지 비에 젖은 도서 등 상태가 불량한 것들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유 씨의 주장에 대해, 학교 관계자 A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서가를 통째로 가져가려고 전체를 비닐로 포장했는데 비에 젖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수도침신에서 18년간 근무한 B도 "햇빛에 바랠까 봐 창가 근처에는 책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가 들이친다 해도 서가까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 씨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조사위원회는 유 씨의 행동에 고의성이 없다고 봤다. 정리를 위해 지저분한 것을 버렸다고 주장한 유 씨의 말을 믿은 것이다. 침신대 사무처장 김 아무개 씨는 "문제가 있는 일부 책들이 있었다. 비닐로 책을 포장해 놓은 것은 맞지만 무슨 이유에서든지 지저분해진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또, 처분한 책들은 대전에 있는 것과 중복되고 희귀 자료는 없었다고 했다.

조사위원회는 유 씨가 처분한 책들의 구입 당시 가격이 약 8000만 원이라고 추정했다. 책값을 평균 4000원 정도로 보고 계산한 수치다. 그러나 조사위원회는 '사학 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 규칙'에서 규정한 도서의 수명이 5년이라는 규정에 의거해 2010년 당시 이 책들의 가치는 전부 0원이 된다고 했다.

학교의 다른 관계자 C는 이러한 사무처장과 조사위원회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2006년 통합 전까지도 수도침신은 책을 계속 구매해 왔는데 그러한 책들의 가치까지 어떻게 0원이 되냐는 것이다. 중복 도서라서 중요도가 낮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도서관에 책이 여러 권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다만 도서관에 공간이 없어 대전에는 가져오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유 씨가 징계받지 않은 것은 외압 때문?

유 씨가 징계 없이 정상 퇴직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학교 내부의 시각이 다르다. 학교 관계자 C는 그 이유를 유 씨가 학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전 이사의 조카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도한호 전 총장은 외압 때문에 유 씨를 채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18년 동안 근무했던 안성캠퍼스 관리자 B를 돌연 퇴직시킨 전례가 있다고 했다. C는 이번에도 유 씨의 삼촌이 학교에 압력을 넣어 유 씨를 징계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봤다.

유 씨를 채용한 도한호 전 총장은 <뉴스앤조이>에 "직원 채용은 총장의 권한이다. 총장이 직원도 마음대로 못 뽑는가"라고 되물었다. 압력이 있던 게 아니라 총장의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사무처장 김 아무개 씨도 '외압설'에 대해 반박했다. 학교는 유 씨 문제를 인지하자마자 즉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를 벌였고, 총장도 확실하게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외압이 있었다면 유 씨가 사표를 왜 냈겠냐고 반문했다. 자신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쉽게 나갔겠냐는 것이다. 김 씨는 "학교는 유 씨가 사표를 낸 직후 그를 징계할 수 있는지 노무법인에 묻는 등 계속 노력해 왔다. (징계 의지가 없었다면) 이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압설은 억측이라고 했다.

배국원 총장은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외압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오히려 유 씨를 징계하려고 해서 유 씨의 지인들이 섭섭해할 정도라고 했다. 다만 유 씨가 사표를 내기 전까지 이사회가 다른 이유로 인해 계속 열리지 않아 징계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률 자문 중…필요한 조치 취할 것이니 지켜봐 달라"

학교 관계자 A는 "왜 학교가 그동안 유 씨 사건을 경찰에 넘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 씨가 퇴직한 작년 8월 말부터 지금까지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성토했다. 이것은 징계 의지가 없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격분했다.

침신대는 현재 유 씨에게 민형사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학교 변호사에게 자문하고 있다. 그러나 1만 9000권에 대한 감정평가를 받는 비용이 감정 금액보다 더 나올 수도 있어 고민 중이라고 했다. 또, 유 씨의 생활 형편이 어려워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학교가 배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학교는 기자에게 유 씨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니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배 총장도 "유 씨 사건을 교육부에서도 알고 있다. 현재 조사를 받는 중이며 교육부의 지시가 나오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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