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인 최초로 미국장로교(PCUSA) 총회장을 지낸 이승만 목사가 1월 14일 별세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질 예정이다. (사진 제공 이승만 목사 홈페이지)

이승만 목사가 1월 14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작고했다. 향년 83세. 이 목사는 지난 1월 초,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투병 중이었다. 가족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를 것이며 공식적인 추모 예배 일정은 추후 밝히겠다고 했다.

이승만 목사는 평양 성화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중에 동생과 함께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1956년 미국으로 이민, 루이빌대학(University of Louisville) 교목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1992년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을 지냈으며 2000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미국장로교(PCUSA)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1신] 전 미국장로교 총회장 이승만 목사 암 투병 중

이승만 목사(83세)가 암 투병 중이다. 이승만 목사의 자녀들은 1월 8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최근 아버지는 상태가 심각한 암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평생을 건강하게 살아 온 아버지이기에, 가족들은 지금 상황을 조금 당황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투병 과정을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아버지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다. (원문 바로 보기)

이승만 목사는 미국 한인 교계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미국장로교(PCUSA) 총회장을 역임하고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을 지냈다. 2000년, 백인 일색인 PCUSA가 이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자, <USA투데이>·<뉴욕타임스> 등은 교단 역사상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PCUSA가 116년 전 선교한 나라 출신의 목사를, 교단의 수장으로 선출한 것은 교회사에 유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 종교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평양 성화신학교를 졸업한 이승만 목사는 한국전쟁 때 동생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평생을 목회자로 살면서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이승만 목사의 노력은 한결같았다. 남북이 적대 관계에 있던 1978년, PCUSA 아시아 총무 자격으로 북한 방문을 시작했다. 이후 30여 차례 평양을 오가며 남북 화해를 위해 힘썼다. 평양 봉수교회 설립을 주도했다.

목회 은퇴 후에는 유니온장로교신학교(Union Presbyterian Seminary)에서 선교학 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고령에도 컬럼비아신학교(Columbia Theological Seminary)에 초빙되어 한미목회연구소 임시 소장으로 지내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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