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두 명의 노숙자가 김 아무개 전도사를 고소했다. 이 둘은 김 아무개 전도사가 운영하는 부산의 무인가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했었다. 이들이 자신을 돌보던 전도사를 고소한 이유는 뭘까. 내용은 이렇다. 이들은 한 달에 약 45만 원 정도를 기초 수급비로 지급받았다. 그런데 쉼터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 전도사가 이 돈을 다 가져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두 번이 아니고 수년간 지속된 일이라고 했다.

쉼터에서 생활하던 노숙자가 김 전도사를 고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3월, 서재수라는 노숙자도 그를 고소했다. 부산지방검찰청은 서재수 씨의 수급비 2510만 원을 김 아무개 전도사가 횡령했다고 인정했다. 7월, 검찰은 김 전도사를 벌금 1000만 원의 약식기소를 했다. 서재수 씨는, 자신은 전 재산 2510만 원을 잃었는데 김 전도사에게는 고작 100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진 것을 알고는 이의신청을 했다. 부산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12월 22일 2차 형사 심리가 열린다.

노숙자들과 김 아무개 전도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 전도사는 부산 지역에서 노숙자 사역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은 김 아무개 전도사를 약한 여자의 몸으로 거친 노숙자를 위해 사비를 털어 헌신하는 성직자라고 믿고 있었다.

▲ 부산의 무지개공동체는 무인가 노숙인 쉼터다. 운영자 김 아무개 전도사는 사비를 털어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고 대외적으로 홍보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숙자들 명의로 지급되는 수급비는 모두 김 전도사의 몫이었다. 자립할 날을 꿈꾸던 노숙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빈 통장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가 운영하는 무지개공동체는 오갈 곳 없는 약 20명의 노숙자들이 자립을 꿈꾸며 함께 생활하는 곳이었다. 쉼터에서 5년 이상 살다가 자립한 노숙자들은 김 아무개 전도사의 불명확한 금전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구청에서 지정한 기초 생활비 수급 대상자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자기가 직접 돈을 인출해 본 경험이 없었다. 김 전도사가 자신들의 신분증·통장·도장을 혼자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도 모르게 줄줄 빠져나간 수급비

김윤재 씨는 무지개공동체에서 생활하다 2011년 경남 합천의 다른 노숙인 공동체로 옮겨 갔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내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1999년, 그는 제주도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뒤 부산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2002년 길에서 만난 김 아무개 전도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쉼터로 오라는 제안을 했다. 김 씨는 그길로 무지개공동체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쉼터에 자리를 잡은 김윤재 씨는 2003년, 수급 통장을 만들었다. 지급되는 생활비를 모아 자립할 날을 꿈꿨다. 돈 관리를 못하는 자기 대신 통장 관리를 해 주겠다는 김 아무개 전도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잘 저축해 놨다가 나중에 목돈을 만들어서 돌려줄 것이라는 전도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대신 용돈을 타서 썼다. 김 씨는 용돈을 타서 쓸 당시를 회상하며 꼭 어린애가 엄마한테 백 원만 달라고 구걸하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10여 년을 무지개공동체에서 보낸 김 씨는 약속과는 달리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퇴소했다. 다른 공동체로 옮겨 간 후, 자신의 통장 거래 내역을 뽑아 본 김 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아 있어야 할 돈은 간 곳 없고 잔액 4만 5000원만이 찍혀 있었다.

▲ 2013년 12월 중순, 무지개공동체에서 생활하던 노숙자들은 김 아무개 전도사가 기초 생활비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아무개 전도사는 자신이 잘못했다며 각서를 작성했다. 김 전도사는 앞으로 노숙인 사역을 하지 않을 것과, 재산을 매매해서라도 빼돌린 수급비를 돌려줄 것이라고 각서에 적었다(왼쪽). 각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노숙인 서재수 씨는 김 아무개 전도사를 고소했다. 2014년 7월, 검찰은 횡령 혐의를 인정하고 김 전도사를 벌금 10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오른쪽). (자료 제공 서재수)

김윤재 씨의 경우보다 더한 피해자도 있다. 김윤재 씨와 함께 고소장을 접수한 김정식 씨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약 2년 동안 무지개공동체에서 생활했다. 그는 수급 통장의 존재조차 몰랐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그의 명의로 된 통장의 거래 내역을 조회해 봤다. 그가 쉼터를 떠난 2008년 이후로도 3년 동안 구청은 그에게 기초생활비를 지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활비가 지급된 5년 동안, 통장 명의자는 전혀 모른 채 모든 수급비가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현재 그의 통장 잔액은 0원이다.

김 아무개 전도사가 사람들의 수급비 통장을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노숙인들이 돈 관리에 허술하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숙인들이 통장을 달라고 요구하면, 한결같이 나중에 잘 모아서 목돈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그 말만 믿고 김 아무개 전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김 전도사, "횡령 아니다. 수급비는 생활비로 사용한 것"

<뉴스앤조이>는 제보를 받고 부산에 내려갔다. 김 아무개 전도사는 횡령 의혹을 부인했다. 노숙자들이, 수중에 돈이 있으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데 쓴다며, 전도사가 맡아서 잘 관리해 달라 부탁했다고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자신을 도둑 취급한다고 억울해했다. 잘 모아 놨다가 자립할 때 목돈으로 챙겨 주려고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전도사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노숙자들의 통장 거래 내역을 보면 이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장에서 돈이 인출되는 시점은 주로 수급비가 구청에서 입금된 다음 날이었다. 매달 지급되는 수급비를 잊지 않고 바로바로 인출한 것이다. 인출하는 방법도 매번 똑같았다. 같은 은행 지점에서 현금 지급기를 이용했다. 모아서 목돈으로 주려고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뽑아 놓은 현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출한 돈의 향방을 김 전도사에게 물었다. 그녀는 이내 말을 바꿔 공동체 생활비로 썼다고 했다. 부족한 생활비를 노숙자들의 수급비로 메꿨다는 것이다. 노숙자들도 김 전도사가 매달 돈을 뽑아서 생활비로 쓰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를 고소한 노숙자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자신의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급비가 매달 빠져 나가는 줄 알았다면, 마음대로 써 보지도 못할 돈을 자발적으로 맡길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 김 아무개 전도사는 피해자들에게 돈을 모아 놨다가 나중에 목돈을 만들어서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통장 거래 내역을 살펴보면, 구청에서 기초 생활비가 지급된 다음 날 돈이 빠져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제공 서재수)

생활비가 모자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무지개공동체는 노숙자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금정구청 마당에서 국수 장사를 하는데, 그 수입이 꽤 쏠쏠하다고 했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매월 약 60만 원씩 꾸준하게 수입을 올렸다. 그 외에도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2013년 후원금 내역서를 보면, 여러 교회와 개인들이 매월 약 200만 원 규모로 무지개공동체를 후원했다.

김 아무개 전도사는 자기를 고소한 사람들은 다 돈에 욕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악한 세력의 꾐에 넘어가 이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가족도 돌보지 않고 오직 노숙자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수급비를 횡령한 범죄자로 몰리니 억울하다고 했다.

상습적인 말 바꾸기...노숙자를 돈벌이에 이용

노숙인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자신들이 믿고 따른 사람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갈 곳이 없었던 자신들을 받아 준 김 아무개 전도사를 엄마처럼 따랐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비인격적인 대우와 수급비 갈취, 원치 않는 노동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노숙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무지개공동체 후원자들은 김 아무개 전도사가 상습적으로 말을 바꾸며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수급비 횡령 문제를 제기한 2013년 12월에는 잘못을 시인하고, 자신 명의의 재산을 팔아서 노숙자들의 돈을 갚을 것이라고 각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뒤, 김 전도사는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던 무지개공동체 건물을 딸에게 가등기 이전했다.

후원자들은 지역에서 김 아무개 전도사가 차지하는 위치가 수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사건이 접수되고 담당 형사가 3번이나 바뀌었다는 점이 수상하다고 했다. 후원자 한 명이 금정구청 사회복지과에 기초 생활비 부정 수급 의혹이 있다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럴 리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고 했다. 서재수 씨도 금정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구청장을 만났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대답뿐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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