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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시내산 율법에 나타난 부모와 자녀 관계

애굽의 파라오는 히브리인을 박해하여 영아 살해령을 내린다. 이 무슨 천륜을 어기는 만행인가?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헤롯이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마2:19). 이와 같은 폭력이 애굽이나 유대와 같은 왕국에서 자행되었다.

애굽을 탈출한 출애굽 공동체는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하나님과 체결한다.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출19장) 하나님나라의 대강령을 선포하시는데 이것이 십계명이다(출20:1~17). 이어서 백성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해설하여 계약법을 내려주신다(출20:22~23:33). 성막법을 제정하여 주시는 중에 백성이 금송아지를 섬겨서 하나님의 모든 구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모세의 중보를 받아들인 하나님은 백성과 새 언약을 다시 체결하신다. 새 언약으로서 레위기에 세 가지 법을 내려주시고 이어서 민수기에 보충법을 제시하여 주신다. 이것들을 꼽아 보면 모두 일곱 가지 법문인데 이것을 나는 '시내산 율법'이라고 칭한다. 이들 법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거기에 무슨 효 사상이 나타나 있는지 살펴보자.

1. 십계명
우상을 섬기는 자의 죄는 그의 자녀 손 삼사 대에 이르도록 갚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그의 자녀 손 천 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받는다(출20:5~6). 여기에서 모종의 연좌제와 같은 느낌이 든다. 아버지의 이가 시리면 아들의 이도 시리다는 속담이 있지만(겔18:2) 예레미야는 아버지의 죄벌을 아들이 갚아야 한다는 이론에 대하여 반대한다(렘31:29~30). 그러나 십계명과 예레미야의 말씀은 아버지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할 경우에 아들이 그것을 결단하고 끊어야 한다는 강한 결의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언설이 모순되지 않는다. 성서의 효는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되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경우에만 효가 가능함을 보여 준다.

십계명 윤리 조항의 맨 앞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규정이 나온다. '공경하라'라고 번역한 원어는 <카베드>인데 이 동사는 '무겁다'란 뜻을 기본으로 하는데 피엘형이 되면 '공경하다/honor'란 뜻이 된다. 이 계명을 효 사상으로 인정할 때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십계명이 처한 위치와 역할이 시내산 언약법의 서문으로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나라의 헌법이 십계명이다. 우상숭배의 세상 왕국을 바로 잡고 만민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다. 이 문맥에서 부모 공경의 법은 하나님나라의 언약을 실천하는 부모의 삶을 계대해야 한다는 뜻이 진하게 풍겨 나온다.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 효는 하나님 사랑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말이다.

2. 계약법
십계명의 뜻을 상론하는 것이 계약법이다. 존속상해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필살법(모트유마트)에 기록되어 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5). 부모를 저주하는 자도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21:17).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사울은 거꾸로 아들을 해치려고 하였다. 잠언은 아버지가 아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 모든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관한 교훈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법을 준행해야 한다는 정신이 깔려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에게 이 법은 무관하다. 여기서도 효의 기본 조건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3. 제사법
레위기 1~10장을 제사법이라 부를 수 있다. 각종 제사에 관한 상규가 주어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단에서 죽는 재앙을 당한다(레10:1~2). 아버지 아론의 심정이 비통하였지만 두 아들이 제단에 규정에도 없는 다른 불을 드렸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항변할 수 없다.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제를 올렸다는 뜻이다. 말씀 없는 예배는 사람이 제멋대로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된다. 그것을 주도하는 제사장은 죽어 마땅하다. 이 사건에서 우상숭배를 척결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4. 성결법
레위기 17~26장을 성결법(HC=Holiness Code)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살붙이에게 다가가 그 하체를 범해서는 안된다(레18:7~14). 애굽인들은 부모의 살붙이와 성관계를 맺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래서는 안된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선언이 성관계 법문에 서두에 나온다(레18:2). 레위기 20장에도 성관계를 규정하는 법문이 나온다. 거기에도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서문이 8절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 왕국의 법도를 날카롭게 대조한다. 성관계에 국한 하지 않고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규정한다.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지 말 것을 규정한다. 이 모든 규례는 이방 풍속과 정반대되는 거룩한 법이다(레8:21).

III. 광야 유랑기에 나타난 부자 관계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는 시므리와 고스비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민25:8). 비느하스의 결연한 행동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평화의 언약(브리트 샬롬)'을 주셨고 그의 행동으로 이스라엘은 속죄를 받았다(민25:12~13, 카파르). 아론의 가문에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아론의 제사장 가계를 빛낸 참 효자는 비느하스였다. 그는 사사 시대에 제사장으로 봉직하였다(삿2:28). 제사장 엘리에게 홉니와 비느하스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가문을 멸문지화에 빠뜨린 불효자의 대명사이다.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는 아론의 아들 엘리에셀의 비느하스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임을 민수기는 가르친다.

IV. 신명기와 신명기사가의 저작에 나타난 부모와 자녀

신명기에서 모세는 바알브올 사건을 회고한다.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4:2~3). 가문을 빛내는 것이 효라면 그 비결은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성결법과 마찬가지로 신명기법도 강조한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다'(신14:1~2). 신명기의 소위 '역사신조문'에 조상에 대한 의식이 명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람인이다(신26:5). 이스라엘의 번영과 쇠퇴는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고 따르느냐에 달려 있다. 자식의 가장 큰 효도는 조상의 기원을 명확히 인식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시니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신26:16~19).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V. 예언서에 나타난 부모 자식 관계 유비

예언서에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렘31: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점을 예언서는 누누이 강조한다(렘31:1). 이 백성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효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식으로 삼고 양육하였다(사51:18).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사1:2~4)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은 패역한 자식이다(사30:1, 9). 디아스포라에 흩어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식이다(사43:6; 63:8).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자식으로 부를 때 이스라엘의 효는 근본에서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배경이 된다.

VI. 지혜문학에 나타난 부모의 훈계

잠언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정립된다는 진리를 설파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할 때 잠언은 토라의 교훈을 지시하고 있다(잠1:8). 하나님의 계명이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아들에게로 전수되며 아들은 그 계명을 잘 지킴으로써 여호와를 알게 되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된다(잠2:1~5). 그래서 가장 큰 효도는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는 일이다(잠4:1; 6:20~21; 7:1~2; 8:32). 하나님을 믿는 아버지의 지혜를 잘 듣고 물려받는 아들이 효자가 된다(10:1, 5). 아버지를 조롱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잠30:17). 이 때에도 효의 기준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수호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믿는 선인은 흥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은 망한다(잠13:22). 악인의 가정에서 아무리 효도를 다 한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VI.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것은 육신의 아버지가 지닌 한계를 초극하는 효과가 있다. 예수께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보는 여성주의자의 견해는 말씀을 오해한 것이다. 참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며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구원주이시다. 이 고백은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를 낸다.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는 가슴에 큰 상처를 받고 일생을 어둡게 살게 된다. 이 자녀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하면 그 상처가 치유를 받는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고 또 사랑이시고 인애하고 자비로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 그 자녀들은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상처를 치유받고 더 나아가 그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영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부르는 순간 나를 괴롭힌 육의 부모가 다 용서되는 것이다. 용서함으로서 치유를 받고 사랑을 회복한다. 효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세상에서 박탈 당한 불쌍한 자녀들이 영혼의 치유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비로소 효도를 하는 자녀로 회복된다. 효도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를 참된 어버이로 잘 모시고 살 때 효도를 다하는 기쁨이 넘치게 된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성경에 나타난 효 사상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비추어 살펴보았다. 우리 전통의 가치관이 충효사상으로서의 효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효의 기준점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사는 아들이 참된 효자다. 하나님나라의 반대말은 세속 국가 내지는 세속 도시인데 이것을 성경은 '세상'이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세상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효는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선악과를 먹고 이기주의가 발달하고 그것이 가족주의로 확산되며 이윽고 민족주의 내지는 국가주의로 귀결된다.

로마제국과 같은 사회를 하나님은 죄악의 도성이라고 노여워하시며 심판하신다. 이 심판의 세상에서도 기초단위를 이루는 것이 가족이다. 가족을 악인의 멸망사를 계대하는 주체가 되지 않도록 구원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참 효도가 된다. 자녀들이 구원사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먼저 효도를 다하고 육신의 아버지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받게 하여서 그를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인도하는 일이 참 효도가 된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참 아버지로 부르고 효도를 다할 때 육신의 부모와 자녀로부터 받는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고 아름다운 가정으로 회복되며 그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이것이 우리네 전통의 효 사상과 성서의 효 사상 사이에 결정적 차이점이다.

※이영재 목사가 8월 28일 기독교효학회 제2차 학술 세미나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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