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교리가 확립되기까지의 변천 과정

천주교의 모든 교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약 20세기 동안 내려오면서 온전치 못한 신앙과 악한 마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조작하여 낸 것이다. 그들은 시시 때때로 그들에게 편리한 제도와 의식을 만들어서 그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권위에서 말미암았다고 선언하며 또 시행하고 있다. 마리아 숭배 교리도 마찬가지로 여러 해를 내려오면서 조작되고 변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이 교리가 어떻게 변천하여 왔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마리아 숭배 교리는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의 변천 과정을 거쳐서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첫째 단계: 마리아를 신모(神母)라 부름
기원 3세기경에 동방교회(동로마 교회)의 신도들 사이에서는 마리아를 신모(神母)라고 부르며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단 교리는 점점 세력을 확대하여 기원 4세기에 와서는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이 교리를 반대하는 편이 우세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의 교부였던 네스토리우스는 이 마리아 숭배 사상을 극히 경계하였다. 마리아를 가리켜서 神의 어머니라고 했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神이란 예수님을 말하는데 곧 마리아는 신이신 예수님의 어머님이시니 마리아도 神이라는 말이 된다.

둘째 단계: 마리아의 영원 동정성(童貞性)
이것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 일생을 동정녀로 사셨고, 다른 죄 있는 자녀를 생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처음에 천주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제2세기경에 처음으로 어떤 책에서 발표된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교회는 이 책을 금지했으며 그 후에도 초기의 교황들은 모두가 이 주장을 반대하였다. 제3세기경의 터틀리안, 오리겐 같은 교부들도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도 다른 자녀들을 생산했다는 사실을 성경에 입각하여 주장하면서 마리아도 한 사람의 죄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이 주장을 가지고 당시에 일어났던 도케티즘(Docetism)이라는 이단 사상에 대항하였던 것인데 이 도케티즘이라는 것은 예수는 혈육을 가진 육신이 아니었고 다만 하나의 환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마리아의 영원 동정성을 교리로써 체계화한 사람은 제롬이었고 그는 387년에 쓴 <영원한 동정녀>라는 책에서 이것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천주교의 중요한 교리로서 채택된 것은 451년에 열렸던 칼케돈 공의회에서였다.

그러면 이 교리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예수는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하였고(마1:18)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 결혼하여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 그리고 두 딸을 자녀로 가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막 6:3). 그래서 누가는 예수 탄생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고 하였는데 예수가 맏아들이라 하였으니 앞으로 마리아에게 둘째 아들도 있을 것을 예고하심이 된다.

셋째 단계: 마리아의 무원죄설 혹은 무구회태설
무구회태설(無垢懷胎設)(Immaculate Conception)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마리아가 모든 아담의 자손들이 벗지 못하고 있는 원죄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분으로서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고 생각하는 교리이다. 원죄의 오염을 받지 않는 이는 전 인류 중 다만 성모 마리아 한 분뿐이라는 것이다.

이 설은 초대교회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거듭 역설하기를 아이라도 원죄를 지니고 출생하였다고 하였으며, 안세름 같은 후기의 교부도 마리아는 죄 중에 잉태되어 죄 있는 몸으로 출생한 하나의 인간임을 밝혔었다. 이 설은 12세기에 이르기까지도 마리아의 무구회태를 숭앙하는 어떤 행사도 하지 못하게 교부 성 버나드는 금지하였다.

그러나 교황 비오 9세가 1858년 12월 8일 회태절에 성 베드로 성당에서 추기경과 높은 지위의 사제들 앞에서 행한 선언문에서부터 이 교리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의 선언문의 요지를 보면 '찬양을 받을 동정녀 마리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권과 특별하신 은혜에 의하여 잉태하던 최초의 순간부터 일체의 더러운 원죄에서 무죄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 교리는 성서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지만 점점 더 널리 유포되더니 1954년 10월 11일 교황 비오 12세가 관하의 주교들에게 발부한 回章(교황의 의견서)에 의하여 확정되었는데 그 회장의 제목은 '하늘 여왕에 대하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954년 12월 8일에 교황 비오 12세의 칙령에 의하여 마리아 숭배 교리가 천주교의 정식 신조로 인정되게 되었고, 이후로부터는 매년 5월 31일을 마리아의 날로서 가톨릭교에서는 세계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무구회태설 교리로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후에도 계속해서 남편인 요셉과 성생활을 하지 않음으로 거룩한 몸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승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가족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막 6:3)"라는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는 네 사람의 남동생과 두 여동생이 있었다고 하니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후에도 남편인 요셉과 가정생활을 했음이 분명하다.

넷째 단계: 마리아의 육체 승천설
이것은 성경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고 묵시 문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마리아의 승천 기념행사를 처음 행한 때는 7세기인데 기록을 보면 그들은 하등의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마리아의 육체는 사망한 직후에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고 그와 같은 행사를 했던 것이다. 성경에는 아무 근거가 없으나 수백 년을 내려오는 중에 오늘날 천주교의 교리에서는 마리아의 승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마리아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을 취하셨는지라 천주께서는 마리아의 육체의 썩음을 원치 아니하사 그를 승천시켰다'고 하였다. 천주교의 미사경본 가운데 고유 미사 중 8월 15일 조를 보면 '성모 몸소 승천 침례'라는 제목 밑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성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가 복되게 천당에 올라가심을 생각하나니 천주의 모친이신 성 마리아는 육신으로 죽으셨으나 며칠 만에 부활하사 그 영혼에 결합하여 승천하심은 비록 신 덕 도리는 아니라도 항상 성 교회에서 믿어 왔도다. 성모는 천당에서 모든 천신과 성인의 모후가 되시며 우리의 중보가 되시느니라'고 했다.

이상의 두 인용에서 우리는 성경적인 근거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그것은 전혀 허무맹랑한 조작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다음 단계에서와 같이 어마어마한 무서운 교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서 지옥의 멸망으로 이끌어 가려는 사탄의 속임수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섯째 단계: 마리아에게 하늘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붙임
이 칭호는 이방 사람의 우상숭배에서 나온 말로서 구약 예레미야서에 보면 '시돈 사람의 가증한 것'이라고 불린 페니키아의 여신 아스도렛을 가리켜서 '하늘 황후' 또는 '하늘의 여신'이라고 칭하였다(렘 7:18, 44:17-19, 25)

위와 같은 여신(여왕)은 이방의 우상들 가운데 수없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바벨론의 세미라미스, 앗수르의 아스다롯, 애굽의 이시스, 헬라의 아프로디테, 그리고 로마의 베누스 등은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로서 이것들은 모두 하늘의 여왕으로서 숭배되었던 것이다. 이 여신 숭배 사상이야말로 인간이 조작해 낸 종교 가운데서도 가장 추악하고 부도덕한 것이라는 점은 성경의 교훈에 명백히 나타나 있는 바이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이와 같은 추악한 인간성에 토대로 한 신들과는 전혀 다른 하늘로부터 계시된 하나님과 그 아들을 믿는 것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을 믿는 점에서 세계의 모든 다른 종교와 판이하게 구별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세 위는 모두 남성 명사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상술한 바와 같은 '하늘의 여왕'이라는 가공적인 우상을 끌어다가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가톨릭교의 우상숭배야말로 참람하기 끝이 없는 일이며 가증한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물며 천주교에서 주장하기를 마리아가 인간의 중보가 되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 된다는 말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 숭배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외에 성모 마리아가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으로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의 십자가를 통하여 성전의 휘장을 가르신 후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완전한 길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히 10:20)"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이다.

2)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

앞에서는 마리아 숭배에 이르기까지의 천주교의 교리가 여러 번 변천한 과정을 통해서 그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었으며,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작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마리아에 관한 기록은 심히 적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데 그 몇 곳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누가복음 2장 41-49절에 마리아가 등장한다.
예수께서 12세 되던 때에 예수님은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유월절 예배를 드렸는데 부모님은 아무런 생각 없이 많은 군중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룻길을 가다가 동행중에서 예수가 함께 하지 않음을 알고는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나게 되자 어머니 마리아가 불평하면서 책망조로 예수께 말하기를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절)"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라고 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대답하신 말씀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생각할 말씀은: "내가 내 아버지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아버지란 하나님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神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신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예수 자신도 '神'이시라는 말이다.

둘째로 생각할 말씀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이다. 곧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신)의 아들로서 앞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하나님(곧 神)의 집에서 중대한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나 예수는 육신으로는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어머니도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나'(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셋째로 생각할 말씀은: 위의 두 말씀(48, 49절) 뒤의 50절 말씀을 생각해 보자.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눅 2:48-49)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50절). 그 부모가 위의 말씀들(48-50절)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깨닫게 되고 마리아는 120명의 신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였고, 성령 충만을 받게 되어서야 훗날 에베소 교회에서 신자로서 살면서 예수님을 잘 믿고 살다가 생을 마쳤다.

여기에서 가톨릭교인들은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 곧 聖母로 숭배한다는 것은 많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 2장 4절과 요한복음 19장 26절에 마리아가 등장한다.
가나의 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마리아에게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말 성경의 어감으로 볼 때는 어머니에게 대하여 "여자여"라고 한 말은 굉장히 불손해 보이는 말 같다. 그러나 그 당시 성경이 기록된 헬라 말 성경에는 'ϒύναι(여자)'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헬라에서는 'ϒύναι(여자)'라는 말은 왕이 왕후를 향하여 사용하는 말인데 여성을 최대로 존경해서 말하는 존칭어이다.

그런데 가톨릭교에서 사용하는 성서에 보니 "여자여"라고 기록된 말씀을 쓰지 않고 '어머니여'라고 번역했는데 그것은 성경에 없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보고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른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요 2장부터)는 '어머니'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도 마리아를 내려다보시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고 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3장 33-35절에 마리아가 등장한다.
마가복음 3장 10-11절에 보니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좇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기관들(율법학자들)이 말하기를 "예수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막 3:22). 예수의 소문을 예수님의 친척들이 듣고 예수를 붙들러 나왔다고 했다(23절) 왜 그렇게 하려고 했을까? 많은 성경학자들이 해석하기를 예수가 귀신의 왕이 들렸다고 하니 예수를 붙들고 집으로 가서 귀신을 좇아내는 일을 하지 않도록 만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의 친척들이 걱정하면서 예수께 와서 보니, 예수님은 귀신의 왕이 들어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좇아낸다고 율법학자들에 설명하였다. 그러자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더 비방하고 있었다(23-30절)

아마도 예수님의 친척들이 이 소식을 마리아에게 들려주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의 동생들에게 말한 후 대책을 의논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31-32절)"고 했다.

예수님은 그때 대답하시기를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34-35절)"고 하셨다.

예수님의 대답을 어머니와 동생들이 들었을 때 저들은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을 하였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의 요지는 "육신적으로 나의 모친이나 동생들이라고 해서 진정한 나의 가족은 아니고, 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그 사람들이 나의 진정한 가족이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왜 위와 같은 말을 했을까? 요 7:5에 보면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는 말씀과 막 3:23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이나 친척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거나 아니면 믿는다고 해도 믿음이 아주 연약한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누가복음 11장 27-28절에 마리아가 등장한다
한번은 예수를 둘러싸고 있던 군중 가운데서 한 여인이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눅 11:27)"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8)"고 하셨다.

위의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는 말씀일까. 한 여인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예수님을 잉태하고 또 낳아서 기른 마리아가 세상의 많은 여인들 가운데서 제일 복 있는 여인이라"고 너무나 마리아를 부러워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을 때 예수님이 답변하시기를 "나의 어머니 마리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훨씬 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머니 마리아도 그때까지 믿음이 없었거나 아니면 믿음이 있었다고 해도 그 믿음이 아주 연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부를 때마다 '여자여'라고 부르심으로써 마리아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여자로서 인간임을 강조하셨고, 다만 그는 여인 중에서 택함을 받아 예수의 성육신을 도운 하나의 도구에 불과함을 밝히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책망도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마리아보다도 더 복이 있다고도 하셨다(눅 11:27-28).

마리아는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동일한 죄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기도를 받을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가 육체로 승천해서 천국에 있으면서 지상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는 것은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하늘나라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분은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님뿐이시다.

※ 중보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중보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전적인 뜻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보란? '신(神)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화해시키고 교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을 말하는데 神性과 人性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으신 일'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했다.

그렇다고 하면 중보 기도란? 중보자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예수께서 하시는 기도를 중보 기도라고 한다. 마리아는 神人 兩性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중보 기도를 할 자격자가 되지 못한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 외에도 모든 사제들도 중보 기도를 한다고 하며, 이 교리를 이용하여 고해성사라는 교리를 만들어서 신자들로 하여금 만인제사장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너희(신자들)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제사장이다는 말이다. 이를 가리켜서 만인제사장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가톨릭교의 모든 사제들은 성도들의 왕 같은 고귀한 제사장직을 하지 못하게 빼앗아 가지고는 자기들만이 독점하여 행사하고 있으며 또한 이 사악한 일을 거룩한 이름을 붙여서 告解聖事라고 말하고 있으니 장차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당할 최대의 형벌인 지옥불의 벌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천주교의 신자들은 알지 못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가 역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목사의 말이라고 팽개쳐 버리지 말고 이 글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마다 성경을 인용하였으니 가톨릭교의 성경을 펴 놓고 읽어 주기를 바란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며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막 9:48-49)이라고 했다.

김수운 / 대구 은목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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