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는 회사 건물 6층 대표실에서 기자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기자들은 최 대표로부터 <뉴스앤조이>의 생생한 역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최 대표는 주식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자였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과 교회의 본질을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사회 과학자나 신학자 못지않았다. 그는 교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수록 사회 문제와 한국교회 문제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뉴스앤조이>에는 8명의 이사가 있다.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여타 기독교 언론과는 다르게 목사가 2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또 하나는 이 중 대여섯 명이 10년 이상을 함께 동고동락해 왔다는 점이다. 14년의 짧은 <뉴스앤조이> 역사에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한 것이다.

비영리단체 전문 컨설팅 업체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는 올해를 끝으로 지난 10년간의 <뉴스앤조이> 이사직을 내려놓는다.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 동안, 목회자도 아닌 그가 교회 개혁의 기치를 내건 <뉴스앤조이>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앤조이>는 그의 인생에서 어떤 것이었을까.

7월 16일 오후, <뉴스앤조이> 기자 5명이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도움과나눔 사무실로 출동했다. 기자들보다 훨씬 오래 <뉴스앤조이>와 함께한 최영우 대표에게 한 수 배우러(?) 간 것이다. 그는 <뉴스앤조이>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초심을 잃지 말고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고민, '교회 개혁'

최영우 대표가 교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시기는 80년대 중반, 그가 대학에 다닐 때다. 그는 1984년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진학했고, 한국기독학생회(IVF)에 가입하면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접하게 됐다. 성경 속 예수의 급진성을 발견한 최 대표는, 이 불의한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운동권' 출신은 아니다. 오히려 '전도'에 열심을 내는 전형적인 '교회 사람'이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운동권 친구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담뱃값과 술값을 대 주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며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던 그들에게, 교회에서 통용되는 '정의의 하나님'은 너무 나약한 존재였다.

"운동권 친구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을 열심히 따라다녔던 적이 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불의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틈나는 대로 설명해 줬다. 하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목숨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 그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은 너무나 나이브한 존재였다. 그때부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왜 정의의 하나님은 될 수 없는 것이냐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가 바라본 한국교회는 불의한 정권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대형 교회 목사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최 대표는 풍요의 복음만을 외치며 교회의 본질에서 자꾸만 멀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목격했다.

그런 그에게 대안으로 다가온 것은 '희년' 사상이었다. 20대 후반 최 대표는 희년 운동에 심취했다. 특히, 토지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푹 빠져 있었다. 그 후 약 10년 동안 헨리조지협회 초대 간사를 거쳐, 해비타트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당시 기독교 영성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보자는 친구들이 모였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졌지만, 기독교 영성으로 사회 변혁을 꿈꾸던 분들이 주로 모였다. 희년 운동과 교회 개혁 운동에 주력했다. 경제 정의를 실천하고자 설립된 시민 단체인 '성경적토지경제정의를위한모임(성토모)'도 거기서 만들어졌다. 해비타트 활동도 열심히 해 사무국장까지 올라갔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 시기에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뜻이 명확해 보였다. 겉은 휘황찬란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 한국교회를 향해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글은 거칠고 전투적이지만,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바로 이사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가 이제 막 조직을 세우고 이끌어 가던 때라, 모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직은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하는지, 경영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

▲ 도움과나눔은 △비영리단체의 모금 △기업 사회 공헌 전략을 설계해 주는 전문 컨설팅 기업이다. 최영우 대표가 8년간 일해 온 해비타트를 그만두고 도움과나눔에서 일하게 된 것은 2001년이다. 그는 대표이사로 도움과나눔에 입사해서 인터넷 기부 사이트였던 회사를 전문 컨설팅 회사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주요 대학을 비롯한 수많은 비영리단체 자문을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구독료 없애고 길동무 만든 게 가장 잘한 일

"<뉴스앤조이> 이전에는 교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태를 사실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언론이 없었다. 비판에 익숙지 않았던 한국교회 교인들은 <뉴스앤조이>가 교회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금권과 교권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교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용기가 오늘의 <뉴스앤조이>를 만들었다."

그는 <뉴스앤조이> 이사로 활동하며 몇 번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종희 대표가 <미주뉴스앤조이>를 창간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에 머물렀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재정적으로 정말 어려웠다. 이때 정기 구독료를 없애고 길동무(후원자) 체제로 전환하자고 제안한 것이, 10년 동안 이사로 지내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가 지금은 종이 신문을 발간하지 않지만, 2001년 3월부터 2012년 초까지 종이 신문을 격주로 발간했다. 당시 독자들에게 1년 구독료로 3만 원을 받았다. 이것 가지고는 적자를 면할 길이 없었다. 그럴 바에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000명의 길동무'라는 이름으로 <뉴스앤조이>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에게, 한 달에 1~2만 원이라도 후원을 받자고 제안했다.

도움과나눔에서 이 일을 진행했다.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 <뉴스앤조이> 온라인 회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도움과나눔 텔레마케터들이 후원 요청을 시작했다. 몇 달의 노력 끝에 1000명 정도의 후원자를 확보했다. 이 길동무들은 지금까지도 <뉴스앤조이>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현재는 1400명가량의 길동무들이 <뉴스앤조이>와 함께하고 있다."

나는 치어리더 역할을 했을 뿐

최영우 대표는 <뉴스앤조이>가 다른 기독교 비영리단체들과는 달리, 목회자가 아닌 전문 경영인들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어 건강하고 실용적인 단체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사들은 '교회 개혁'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 아래,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기존의 기독교 비영리단체들은 이름 있는 목회자 몇몇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힘 있는 이사들이 조직의 운영 전반을 좌지우지했다. <뉴스앤조이>는 그 틀을 깼다. 이사 중 목회자는 원래 방인성 목사님밖에 없었고, 지난해에 홍민기 목사님이 합류했다. 이사들은 <뉴스앤조이>로부터 뭘 얻어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없다. 모두 '교회 개혁'이라는 분명하고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했다.

다른 이사들은 대부분 사업가다. 굉장히 실제적이고 자기 일에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이사회에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걸 명확하게 짚었다. 이사들은 조직을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이사들은 경기장에서 분투하는 선수들이었고, 나는 옆에서 사기를 북돋아 주는 '치어리더'였다."

비영리단체의 이사직은 6년 이상 맡으면 안 된다는 게 최 대표의 원칙이다. 비영리단체는 조직의 정관과 핵심 가치가 중요한데, 한 사람의 이사가 오랫동안 활동하면 단체가 초기 목적을 잃고, 이사의 가치관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대표가 이사직을 6년 수행했을 때 <뉴스앤조이>는 재정·조직적으로 힘든 시기를 걷고 있었다. 자신만 빠져나가는 것은 다른 이사들에게 짐을 떠넘기는 행동인 것 같아 4년 동안 이사직을 내려놓지 못했다고 했다.

"비영리단체의 이사 지배 구조는 장로교회의 정치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교회는 장로가 종신직이 되어 버려서, 장로와 목회자가 교회를 지배하는 구조가 됐다.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장로들의 임기가 제한돼 있었다. 장로들에 의해 교회 정치가 장악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비영리단체의 이사들 역시 종신으로 이사를 해 먹는다. 선한 의도든 악한 의도든 이사직을 오랫동안 수행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사의 영향력이 커지면, 단체의 핵심 가치는 흐려지고 성장은 정체된다. <뉴스앤조이>가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다. 힘들었던 시기에는, 다들 고생하는 데 나만 도망치는 것 같아 주저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빠져도 욕먹지 않을 시기인 것 같다."

더 날카롭게, 더 예리하게

최 대표는 <뉴스앤조이>가 더욱 날카로운 시각으로 교회 문제를 취재하고 보도해 주길 당부했다. 그동안 날 선 시각으로 한국교회의 문제를 해부해 왔지만, 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는 긍정적인 시각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교회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을 명확하게 판단해 주는 게 지금 한국교회에 더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교회는 상식에서 일탈해 있다. 어중간한 비판으로는 부패한 목사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 줘야 한다. '이건 교회가 아니다', '당신은 목사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그게 필요하다. 그 역할을 <뉴스앤조이>가 해 주기를 바란다.

나이가 적고, 기자 경력이 짧다는 이유는 아무런 변명이 되지 못한다. 기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존재이지 사실을 생산하는 존재는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기자가 갖는 특권이다. 책 읽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바른 지향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뉴스앤조이>를 통해 흘려보낼 수 있는 역할을 하라."

최영우 대표는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의 성공담이나 노고는 일절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뉴스앤조이> 이사이기 전에, 수십 년간 '교회 개혁'을 고민한 신앙의 선배로서 기자들에게 조언했다. 최 대표는 기자들이 일이 고되더라도,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고 한국교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이 되기를 원했다. 

▲ 최영우 대표는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다는 것은 기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자의 특권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바른 지향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라고 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뉴스앤조이>를 통해 흘려보낼 수 있는 기자가 좋은 기자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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