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옥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전도사, 그리고 신학생이라는 직분은 걸쭉한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 입술에 물린 재갈과 같다. 성령이 임하시면 비로소 모든 결박이 풀린다고 했던가? 분명 성령은 아닌데 무엇인가 임하기 시작했다. 바로 세상의 소식들이다. 밀양의 소식, 안산의 소식, 그리고 국회의 소식들. 수많은 소식들을 내게 말을 건다. 그 소식들은 성령도 아닐진대, 그 많은 소식들이 내 입술에 물린 재갈과 같은 것들의 결박을 풀어헤친다. 그리고는 입술에서, 아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입술까지 온갖 욕설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제길, 이 지옥 같은 세상.'(물론 실제보다 상당히 순화한 표현이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괜스레 성경을 펼쳐 보기도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단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셨단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누군가는 교리문답을, 신조를 권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원고 학생이 전진하고 있고, 밀양의 할머니들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신조와 교리문답은 '공자 왈 맹자 왈'처럼 들린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들리는 기독교 전통들에 우리의 내면에서는 슬며시 이런 고백이 튀어나온다. '기독교는 그토록 무능한 것일까?'

1. 도대체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 <케이프타운 서약> / 로잔 운동 지음 / 최형근 옮김 / 조종남 감수 / IVP 펴냄 / 262쪽 / 1만 원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기반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물론 답은 '성경'이다. 여기서 그 어떤 누구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서로가 달라진다. 모두들 공통적으로 '성경이야말로 신앙의 근간'이라고들 하지만 각자의 신앙 양태는 다르다. 아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 보자. 문창극의 망발은 또한 신앙을 근간으로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우리에게는 새로운 질문이 남겨진다.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기반을 '어떻게' 성서로부터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요즘 '신조'와 '요리문답' 열풍이 불고 있다. 필립 샤프에 의하면 '신조'와 '요리문답'이란 성경에 탄탄히 기반을 둔 '고백'들이며, 그런 '고백'들 속에서는 믿음을 전제로 한 치열한 삶의 정황이 켜켜이 묻어난다고 한다. 우리네들은 흔히들 '보편'과 '객관'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꿈을 아직도 갖고 있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현실에도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적용되고 따를 수 있는 진리에 대한 망상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성서를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 특정한 상황, 특정한 시대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진리는 선언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현실에 적합한, 오늘날 같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진리를 발하고 있는 '신조'라던가, '요리문답'은 없을까? 오늘날의 이 '치열한 삶의 정황'이 켜켜이 묻어난 그런 신조, 요리문답 말이다.

2. 오늘날의 신조와 요리문답으로서의 <케이프타운 서약> 읽기

이번에 IVP에서 발간한 <케이프타운 서약>이야말로 오늘날을 위한, 오늘날의 삶의 정황의 치열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신조와 요리문답이 아닐까? 지옥 같은 삶의 현실 속에서, 온갖 분리와 부정의함, 폭력의 만연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박한 처지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언행들, <케이프타운 서약>은 바로 이러한 현실들 속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사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어떤 한 저자가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 책은 아니고, 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로잔대회의 공식 문서를 모아서 발간한 책이다. 로잔대회는 무엇이고,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지, 또 그것이 왜 오늘날 우리를 향한 요리문답이요, 신조로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일까?

본디 '로잔대회'는 1966년 선교와 복음에 헌신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빌리 그레이엄으로부터 시작된 대회이다. 이때야말로 '선교의 위기'에 직면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현 시대의 위기, 즉 선교의 위기에 응답하여 다양한 논의들을 시작했다. 단순한 사변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말이다. 특별히 존 스토트의 역할이 컸는데 그에 의해서 '복음 전도'라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결국 '사회적 책임'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연관되어 있다는 성경의 증언이 '로잔대회'의 향방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로잔대회는 소위 말하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개의 큰 어젠다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을 의논하는 복음주의자들의 대회로 발전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1974년 첫 번째 로잔대회가 열렸고, 1989년 두 번째 로잔대회가 열렸고, 이어서 2010년에 열린 세 번째 로잔대회가 열렸다. 이 세 번째 로잔대회의 공식 문서를 엮어 낸 책이 바로 <케이프타운 서약>이다.

따라서 본 책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의 고유한 상황을 살아 내는 복음주의자들의 삶의 치열한 현장, 이를테면 논물과 고통, 아픔, 좌절, 또한 가슴 속에 고스란히 묻어 낸 욕설들마저도 반영된 '오늘날 우리들을 위한, 그리고 우리들을 향한' 문서이다. '복음 전도'라는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들을 향한 문서 말이다.

3. 변화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

성경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고전의 힘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 보편에 대해 변치 않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자. 정말 우리네 인간의 현실은 변화하지 않았는가? 분명 빨리 변한다는 사실은 응당 당연하다. 성경의 시대에는 IT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으로 인한 사회문제, '지구촌'으로 대변하는 다양한 인종의 교류를 통한 사회문제는 전혀 없었을 테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여전히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현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네 정황을 <케이프타운 서약>의 서문은 고스란히 지적한다.

"우리가 살고 생각하고 서로 관계 맺는 방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점점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중략) 우리가 직면하는 어떤 것들, 즉 전 세계적인 빈곤, 전쟁, 종족 간의 갈등, 질병, 생태 위기, 기후 변화는 슬픔과 불안을 낳고 있다. (중략) 우리는 기독교 선교를 통해 우리 세대의 현실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지혜와 오류, 성취와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 손에 모든 역사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과거를 존중하고 애통하며 미래를 대면한다." (14~15쪽)

"세상은 점점 빠른 속도로 스스로를 바꾸어 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어떤 것들은 동일하게 남아 있다. 이 위대한 진리들이 우리가 선교적 참여에 나서야 하는 성경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인간은 상실을 경험한다. (중략)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중략) 교회의 선교는 계속된다. (중략) 이 세상 나라들이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새 창조 속에서 구속받은 인류와 함께 거하실 날이 올 것이다. (이하 생략)" (15~16쪽)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처한 소위 '지옥 같은 현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죄의 근원이기도 하면서, 그 양태는 어쩌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소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책 <케이프타운 서약>은 변화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성경의 응답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응답으로서 존재하는 책이다.

4. 변화하지 않는 '보편적' 현실에서부터 변화된 '상황적' 현실을 향해 말하다

본 책의 구성은 제3차 로잔대회에서 합의된 서약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서약문을 어떻게 함께 공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또한 3차 대회에서 합의된 서약문은 어떤 역사를 담지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1차 대회와 2차 대회의 서약문을 담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서약문은 변화하지 않는 현실과 변화하는 현실이라는 두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번 엄밀히 들여다보자.

케이프타운 서약의 1부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현실로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그리고 말씀, 세상, 복음, 백성, 선교에 관련된 복음주의의 신앙고백이 진술되고 있다. 이는 전혀 변하지 않는 성서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성서 본문을 터하고 있고, 일종의 서약문의 형태이기에 따분하고 재미없는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그만큼의 깊은 숙고와 고찰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케이프타운 서약은 불변하지 않는 성서의 증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2부에서는 구체적인 현실, 특히 변화되는 현실 속에서의 우리의 반응 양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2부는 크게 여섯 가지에 걸쳐서 오늘날의 문제를 기술하며, 그에 대한 복음주의의 신앙행동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먼저는 다원주의적이며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의 복음 증언이라는 문제, 이어서는 분열되고 깨어진 세상 속에서의 복음 증언이라는 문제, 타 종교인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이라는 문제, 세계 복음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는 문제(복음 전도의 방법론적 문제). 교회가 겸손과 정직과 단순성을 회복하는 문제(교회 고유의 현실에 대한 문제), 선교의 하나 됨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동역의 문제들을 다룬다. 또한 각각의 커다란 문제 안에서는 에이즈, 가난한 자, 교회지도자들의 성 문제, 직장 영역에서의 역할 등등의 각론들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케이프타운의 서약문은 변화하지 않는 '보편적' 현실에서부터 변화된 '상황적' 현실을 향해 말하고 있다.

5. 되새기고, 함께 공부함으로써

철저히 '환대'가 사라지고, 개인화되어지는 사회 현실. 어쩌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현실도 진배없어 보인다.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일에서부터 성장하여 복음을 살아 내는 일까지도 어쩌면 개인의 영역으로 구겨서 밀어 넣어지고 있다. 하지만 본디 복음이란 함께 공부하고, 함께 살아 내는 것일 터. 선교라는 사명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케이프타운 서약'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서 끝난다면 아쉬울 뻔 했다. 하지만 본서 <케이프타운 서약>은 함께 공부하는 법까지 한걸음 더 나아간다.(개인적으로는 본 책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신조요, 요리문답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프타운 서약>는 사실 다른 여느 책들처럼 읽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에 맞서서 행동하며 치열하게 씨름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따라서 오히려 '스터디 가이드' 부분이 앞의 본문들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더구나 '스터디 가이드'의 서문에는 다양한 공부 방식을 고려하며, 공동체적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 책을 펼쳐 보면 '말씀의 예시를 들어 보기', '어떻게 사람을 도울 것인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말씀이나 기도를 찬양으로 만들어 보자' '실천 향방을 찾아보자', '기사나 ppt를 작성해 보자' 등등과 같이 예상치 못한 다양한 도전을 제시한다.

물론 이 모든 질문에 응답하기는 조금 벅찰지는 몰라도, 다양한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스터디 가이드'를 따라서 복음주의 선교 단체 혹은 교회 공동체, 혹은 복음주의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루에 한 주제의 신앙고백을 꼼꼼히 읽고, 탐구하고, 또 성경 구절을 찾고, 각자에게 맞는 질문에 응답한다면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 버린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의 양태를 넘어서, 어느새 우리는 오늘날 복음주의권의 신조요, 요리문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케이프타운 서약>에 담긴 복음주의 영성에 흠뻑 젖어들게 될 것이다.

또한 본 책에는 이어서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이 수록되어 있다. 74년과 89년에 선언된 본 기록문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40여년 넘게 고민해 오고 씨름해 온 복음주의권의 치열한 삶의 향내를 맡을 수 있다. 또한 함께 공부하면서 비교해 보고, 또 시대의 정황을 대입해 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행동 양태를 치열하고도 깔끔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6, 이제 다시 일어서서

'제길, 이 지옥 같은 세상'이라고 말을 내뱉으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 촛불을 들든지, 짱돌을 들든지, 아니면 SNS에 들어가 욕을 남기든지 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많은 신앙인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간혹 촛불을 들고, 짱돌을 들고, SNS에다 욕을 퍼부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실까?'라고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 <케이프타운 서약>을 권한다. 오늘날의 신조요, 교리문답인 본 책은 우리게 다시 한 번 우리네 의무를 되새겨 줄 것이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책임을 다하라는 성경의 일갈들이 정제된 표현으로 담겨 있으니 말이다.

본 책은 사회적 책임을 본능적으로 다하면서도 신앙적, 신학적, 성서적 전거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또한 지옥 같은 세상사 속에서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기독교 복음에 회의하는 이들에게, 또한 총체적 복음을 지향해 내며 몸으로 구현하기를 대망하는 이들에게, 또 그런 공동체에게 적합한 책이다. 물론 본 책은 단순한 지침서나 해설서는 아니다. 온전한 복음이 무엇인지, 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낱낱이 서술하는 책이 아니다. 다만 본 책은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사회적 책임을 향해 뛰어든 이들에게는 자신 스스로의 땀과 피가 담겨있는 것 같은, 말과 삶을 지지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 같은 그런 책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둘러보자, 그리고 계시지 않는 듯 보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 모아 불러 보자. 그리고 본 책을 집어 들어 읽어 보자. 또한 함께 공부해 보자. 그때에 비로소 <케이프타운 서약>의 마지막 기도에 함께 참예할 수 있을 것이다. 온 몸과 마음을 모아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구원하시는 은혜를 믿는 믿음의 유일한 기초 위에서,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 성경적 제자도가 회복되고, 그리스도를 닮는 사랑의 혁명이 읽어나기를. 우리는 이 서약을 우리의 기도로 삼으며, 이 서약에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 분의 이름으로 섬기는 세상을 위해." (132쪽)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신학과 학부생. 학생과 전도사의 경계, 부산과 대구의 경계, 보수적 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의 경계, 인문학과 신학의 경계 사이에서 양자와 서로 대화하며, 갈팡질팡 방황하는 한 평범한 청년 전도사이자 경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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