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과 목회> 2014 여름호, 도서출판 쟁기와생기

옛날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월간지 또는 계간지 등의 잡지는 우리에게 지식 정보를 제공해 주는 하나의 루트가 된다. 나도 과거 한때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라든지 강원룡 목사가 운영하던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발행하던 <월간 대화> 그리고 짧은 시기였지만 함석헌 선생이 만들어 내던 <씨알의 소리> 등을 읽으며 지적 욕구를 달랬던 적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도 사이버 공간이 한없이 확장된 오늘날 이런 잡지를 보는 일이 많지 않다. 모든 게 변하는 추세에서 잡지라고 예외일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요즘 잡지는 나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만든다. 가끔 금융기관 등에 일 보러 가서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리게 될 때 그곳에 비치된 잡지를 손에 잡는다. 하지만 너무 현란해 금세 제 자리에 꼽고 만다. 읽을 내용은 거의 없고 광고용 칼라 사진에 화사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대의 반영이려니 하다가도 내 정서와는 합치되지 않음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요즘 잡지는 상품 광고지의 역할이 큰 것 같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광고들도 사람의 내면을 채워 주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외면의 드러냄과 관계되는 광고물이다. 화장품이라든지 옷, 또는 스포츠 레저 용품 거기에 재테크 금융 상품 광고 등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나와 무관한 것들이니 외면하면 그만이지 하면서도 나라 장래를 생각할 때 염려의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중에 1년에 네 번 빠지지 않고 나에게 배달되는 잡지가 있다. <농촌과 목회>라는 계간지이다. 내가 잘 아는 한경호 목사가 만들어 내는 농촌 목회 전문 잡지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런 잡지에서 외모엔 신경 안 쓰고 내용만 고집하는 옛 정취를 맛본다.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잡지가 무척 소박하다. 꾸밈이 없다는 말이다. 책의 무게로 보아 재질도 재생용지가 아닌가 싶다. 표지에 판화 작품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검정 많아야 붉은 색 글자가 가끔 가세하는 1950년대의 <사상계>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부터 농촌 목회 이야기, 목회 단상, 성경과 농사, 협동조합 이야기에 해외 농촌 선교 이야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농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이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하다. 탁상에서 나오는 농촌 목회 이야기가 아니라 실천 가운데 생산되는 이야기여서 얻는 유익이 크다. 나는 그중 편집위원장이자 실질적인 발행인인 한경호 목사의 권두언을 꼭 읽는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 목회관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힘을 내뿜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받은 <농촌과 목회> 2014년 여름호(통권 62호) 권두언 제목은 '세월호와 한국교회'였다. 그는 이 글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 사회의 자화상이란 것과 우리 기독교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폐기 직전의 배를 일본에서 수입, 개조해 사용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명의 소중함보다 이득이 먼저인 사고(思考)에서 이런 사건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성도를 더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예배당을 신축 증축하는 교회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목사는 이렇게 권두언을 마무리하고 있다. "…세월호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더 무겁다. '바알에게서 떠나 나에게로 돌아오라!' 이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의 귀로 듣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은 계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참으로 두려운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농촌과 목회>에는 매번 빠지지 않고 특집을 꾸미는데, 이번 기획 특집은 지난 호에 이어 '한국 기독교 사상의 광맥을 캐 본다(2)'이다.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등 민중신학을 체계화하는 데 힘을 보탠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분야 관련 학자들의 신학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우리의 신앙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교계에 일침을 놓는 글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의 이론 전개의 근거는 오직 예수님이다. 갈릴리 무지렁이들 가운데 즐겨 계신 예수님,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장애인들을 편애하신 예수님 말이다.

10년 가까이 <농촌과 목회>를 받아 보고 있다. 임지를 옮겼는데도 끊어짐 없이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정성에 값하지 못하고 있다. 구독료 보내는 것도 번번이 빠뜨리고 있으니까. 열심히 읽는 것, 그래서 나의 목회에 도움 도구로 삼는 것, 그리고 교계의 약한 고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내가 이 계간지를 읽으며 꿈꾸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농촌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전문 계간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고군분투하는 <농촌과 목회>의 무궁한 발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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