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교인 좋은 크리스천> / 강덕영 지음 / 상상나무 펴냄 / 216면 / 1만 원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가는군요. 고등학교 선배 한 분이 후배들을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의 호스트는 영업 사원으로 시작해서 거대 기업을 일군 분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심이 깊어 주님의 청지기 정신으로 바르게 성장시킨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강덕영 회장이 우리를 초청한 분입니다. 그는 또 한 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평신도 교육을 위해 갈렙바이블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미술 음악 연극 등을 돕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라고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4월 22일 고등학교 동문 20여 명이 강덕영 회장 자택에 모였습니다. 동부인(同夫人)한 사람들까지 헤아리면 30여 명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면서 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 회장님과 사모님의 정성과 후배 사랑이 돋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러 영역을 넘어 신앙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첫 만남이기는 하지만 한 신앙인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해서 사업을 발전시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탁한 그의 믿음은 평범한 가운데 새벽별처럼 빛났습니다.

세 시간여의 방담 후 헤어질 때 받은 선물이 이 책입니다. <좋은 교인 좋은 크리스천>(강덕영 지음, 상상나무, 2013.12). 강 회장은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출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통해 강덕영 장로를 처음 만난 것이 됩니다. 책의 사이즈도 포켓판이군요. 정확하게 말하면 4.6판으로 문고판보다는 조금 크지만 손 안에 편안하게 잡히는 것이기 때문에 휴대하며 읽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지금 막 읽었습니다. 신앙 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는 책이라 가볍게 술술 읽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여느 책에 뒤지지 않는 무게를 갖고 있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강 장로도 국내외 1천여 명의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는 큰 기업의 회장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또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 즉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서 좋은 글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하지만 강덕영 회장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생각을 교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문필가의 반열에 벌써 올라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바쁜 와중에도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더군요. 시간 나는 대로 읽어 볼 그의 책은 <1%의 가능성에 도전하라>,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종교인과 신앙인> 등이 안표지 저자 소개란에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이 책과 더불어 <종교인과 신앙인> 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 고정적으로 연재한 신앙 칼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큰 인기 속에 글을 연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글은 이미 대중적인 검증을 마쳤고 따라서 그는 문필가가 되는 셈입니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제목을 달았을까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좋은 교인 좋은 크리스천>. '교인'과 '크리스천'은 같은 뜻입니다. 영어 '크리스천(christian)'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기독)교인'이 되니까요. 저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면, 유어(類語)를 반복함으로 뜻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으니, '교인'과 '크리스천'을 구별하여 평범한 신앙인(교인)과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신앙인(크리스천)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강 장로는 '좋은 크리스천'의 위치에 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 해당합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편씩의 글을 담고 있는 각 부의 명칭은 차례대로 이렇습니다. 1부 '좋은 교인 좋은 크리스천', 2부 '성경 속에서 배우는 진리', 3부 '바른 신앙 바른 가치관', 4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예수 향기를 전하는 신앙인이 되자는 내용입니다. 그는 행함이 따르는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천사, 교회에서도 천사가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신행불일치(信行不一致)의 교인들을 보고 교회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는 '가나안 교인'('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가 됨)이 100만 명을 넘고 있다고 그는 걱정합니다.

강 장로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는 보수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융통성 없는 꽉 막힌 보수는 아닙니다. 분명한 신앙의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해 줄 줄 알고, 또 진보주의 신학의 장점을 이해하려는 아량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충일 기념식 다른 편에서 열리고 있는 빨치산 축제를 보고 그 사람들도 6·25 동란 때 지리산 자락에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잃은 사람들(65쪽)이라며 그 한을 풀고 가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진돗개 전도법이 꼭 아니더라도 믿는 자가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해 주신다는 믿음에서 신앙의 넉넉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강 장로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은 그것을 맡아서 관리하다가 하늘나라로 간다는 이 정신은 크리스천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자세이기도 합니다(81쪽). 하지만 실제 이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청지기 정신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꼭 필요한 것임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신앙 교육을 위해서 평신도 신학 공부 프로그램(갈렙바이블아카데미)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가 삶의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이 성경 말씀의 중요성이며 하나님의 동행하심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없이 이 어려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용감한 사람'은 '미련한 사람'의 반어법적 표현일 것입니다.

강덕영 장로는 '보수 꼴통'이라는 말이 듣기 좋다고 했지만,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 또 그의 책을 통해서 느낀 바로는 '보수'이기는 하지만 '꼴통'까지는 아닙니다. 꼴통은 자기 고집이 강하고 다른 의견에 배타적이며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성향의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는 적어도 그런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절기 행사 때 교회에서 상행위(商行爲, 기관 수익 사업으로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등의)를 하고, 드럼과 전자 기타가 예배당 본당에 자리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101쪽), 예배 때의 의복 예절에 신경을 쓰는 것(105쪽) 등은 너무 개방된 시대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보수 신앙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정확히 뽑아 보진 않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를 들라면 '기도'가 빠지지 않을 텐데, 이것도 그의 보수 신앙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얘기하니까요.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여린 사람이라도 전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아니, 불신자가 읽어도 이해에 무리가 없을 만큼 쉬운 문장들입니다. 탁월한 저술가는 남녀노소, 계급 계층, 학식 유무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생산해 냅니다. 그런 점에서 강덕영 장로는 뛰어난 저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책자는 바른 신앙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모범 강 장로가 경험에서 습득한 내용들을 자신 있게 서술한 것들이어서 독자는 힘을 얻게 됩니다. 아무 때 어느 곳이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더 친근감이 갑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옥(玉)에 티 둘. 작은 거인의 풍모를 보이는 당당한 강 장로가 가끔 문장의 종결어미에 그답지 않은 표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가 앞으로 좋은 책을 많이 출판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는 지적입니다. 가령 '~생각해 보았다', ' ~기도해 본다', '~된 것 같다' 등의 평서문 종결어미가 자주 눈에 띕니다. 이런 어미는 자신감 결여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습니다. '~생각했다', '기도한다', '~되었다' 등으로 확신하는 종결어미를 사용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물론 저자는 겸손의 의미로 이렇게 표현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확신의 부족으로 받아들여질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또 책의 체제에 대한 것인데, 머리말로 시작해서 에필로그로 끝맺고 있습니다. 머리말로 시작했으면 맺음말로 끝을 내야하고, 에필로그로 맺음 하고자 하면 프롤로그로 시작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지엽적인 것을 서평에서 지적한다는 것은 이 책이 완벽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면서 글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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