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개울에 종이배 띄우고 물결을 따라다녔다. 산골짝 맑은 시냇물이 아니라도 흘러가기만 하면 배를 띄웠다. 부두에 매인 배를 보면 타 보고 싶었다. 멀리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보면서 바다를 가로질러 보이지 않는 곳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이들은 유원지 오리배 타면 환상의 세계로 가는 것처럼 좋아한다. 어릴 적에 탄 갯배는 아련히 따스함을 전해 준다.

사람들이 배를 좋아하자 도시 한가운데 배 모양 음식점을 만들었다. 산 위에 배 모양 호텔을 지었다.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어 바닷속을 보는 배도 있다. 직접 소형 배를 만들어 울릉도, 독도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럼 배를 서점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배에서 선교 훈련을 하면 어떨까? 지금은 가능하겠지만 40년 전이라면 어떨까?

▲ <로고스 스토리> / 일레인 로튼 지음 / 이자영 옮김 / 이영규 감수 / 좋은씨앗 펴냄 / 280면 / 1만 3000원

시작

로고스호는 국제 선교 단체인 오엠의 선교선(船)이다. 오엠은 1970년 10월, 1949년 건조한 중고 배를 사서 선교선으로 쓰기 시작했다. 덴마크 코펜하겐부터 42만 8275km를 항해하며 103개국 258개 항구를 다녔다. 이 책은 로고스호가 1988년 1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기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비행기는 너무 비싸서 오엠 선교사들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인도로 갈 때는 두 달 동안 황무지와 눈 덮인 산을 넘어가야 했다. 고생이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지만 선교사가 이겨 내야 할 고난이라 생각했다. 조지 버워는 다르게 생각했다. 선교지로 가면서 겪는 고생을 참아 내고 선교지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자체를 하나님 일로 만들고 싶었다.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는 소박한 이동 수단, 선교지로 이동하면서 기독 서적을 배포하고 복음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싶어한다. 저마다 생각하는 '하나님 뜻'이 달라서 부딪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한다. 하나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려면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아 불확실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허락하는 뜻인지 발을 내디뎌 봐야 한다. 인도로 떠난 윌리엄 캐리, 중국 내지로 향한 허드슨 테일러처럼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로고스호 사역도 조지 버워가 꿈을 꾸면서 시작되었다.

조지는 선교사를 태워 주면서 예배도 드리고 책도 판매하는 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배를 구하지도 못하고 돈도 없으면서, 선장을 고용하고 선원을 구하러 다닌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난 선원들이 아직 사지도 않은 배에서 헌신하겠다고 참가한다. 보이지 않지만 실상으로 나타나리라 믿고 시작한다. 배는 물론이고 구입 비용, 배를 소유할 때 갖추어야 할 법적인 문제에 대한 준비 하나 없이 시작한 일이 결국은 이루어진다.

특징

로고스호는 기발한 배다. 운송 수단이면서 서점이다. 전도 팀을 데려가는 전도 도구이다. 교육팀, 세미나팀을 갖춘 선교 기관이며 훈련 장소이다. 하나님의 외교사절이면서 동시에 국가를 오가는 외교사절이다. 의료 봉사선이 되었다가 구호선으로 변하기도 한다. 호기심을 끄는 관광지도 된다. 서점에 가지 않는 사람도 배 안에 있는 서점이라면 왠지 가 보고 싶어진다. 사역 기간 동안 700만 4800명이 서점을 방문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슬람 지역에서도 서점을 열었다. 기독교 서점을 세운다고 하면 테러가 일어날 나라에서 로고스는 예배를 드리고 기독 서적을 팔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배였기 때문이다. 구경 삼아 온 사람들이 책을 사고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이슬람권, 공산권에서도) 전도지를 받아 갔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식의 배 사역이 사람들 마음을 열었다.

육로나 항공을 이용해 선교팀이 사역하러 가면 까다로운 입국 심사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슬람권, 공산권, 일부 독재국가와 불교 국가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배라는 특성 때문에 로고스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때에 사이공에 갔다. 중국이 문을 걸어 잠군 1978년에 중국에도 갔다. 인도와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이 전쟁 중일 때 두 나라를 오가며 구호물자를 날랐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략했을 때에 레바논에도 갔다. 일반 선교팀이라면 관심 대상도 되지 못했겠지만 특별한 배라서 대통령과 각국의 정부 요인들이 방문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셨다. 로고스호만이 겪은 신기한 일을 보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사역

로고스호는 배 안과 밖에서 사역한다. 항구에 정박하면 배에서는 선상 서점을 연다. 식당에서 세미나를 하고 현지 사역자들 모임과 예배를 한다. 로고스 사역자들이 배를 떠나 노방전도를 하고 각 나라의 필요에 따라 의료봉사, 구호 등의 활동을 한다.

1) 서점 / 책 판매는 로고스호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항구에 닿으면 현지인들을 선상 서점으로 초청한다. 기독 서적뿐만 아니라 교육, 아동 서적과 전문 서적도 판다. 책을 들고 나가 판매도 한다. 오래도록 사고 싶었던 화학 교재를 한 보따리 사고는 감격해서 우는 수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책을 그토록 원한 사람에게 책을 가져다주는 건 축복이다. 가까운 서점에서 아무도 사 가지 않던 책을 배에서 팔면 불티나게 사갔다. 하늘에서 서점이 떨어지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로고스 서점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책을 사가게 만드는 서점, 최고다.

2) 선교 / 로고스호를 소유한 오엠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 단체이다. 항구에 정박하면 전도가 허용된 곳에서는 노방전도를 한다. 복음이 닫힌 곳에서도 어떻게든 기회를 찾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8000명이 모인 실내 경기장에서 복음을 전했다. 베트남에서는 불교 승려가 찾아와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들은 다른 스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절에 머무르며 자신들을 '예수님의 중'이라고 고백했다. 배 서점이 특별해서 방송에도 나고 덕분에 더 쉽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략해서 전쟁이 한창일 때 레바논에 갔다. 가지 말아야 할 상황이지만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복음을 들고 갔다. 레바논에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레바논 현지 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3) 연합 / 로고스호 사역자들은 현지 기독교 모임과 단체를 찾아 협력해서 사역한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함께 실행한다. 교파와 교단을 막론하고 함께 예배하고 세미나에 초대한다. 로고스호가 오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연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고백을 여러 번 듣는다. 로고스호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교단과 단체를 하나로 모아 주었다. 연합 모임을 만들고 함께 일하며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게 돕는다.

4) 성장 / 배는 자기 일만 알아서 잘하면 되는 곳이 아니다. 앞으로 나가려면 손발이 맞아야 한다. 각자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배 사역자들은 오래도록 배에서 손발을 맞춘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 일을 한다는 목적으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며 사역을 해야 했다. 다른 문화에서 자랐고, 전문 분야가 다르며, 하나님을 믿는 방식도 다르다. 로고스호에 탄 사람들 모두 선교사로 참가했지만 좁은 배 안에서 본성을 드러내며 다툰다. 항해사 그룹과 기관사 그룹이 다퉜다. 좁은 공간에서 방을 정하면서 다퉜다. 서로 믿지 못해 용접 전문 선원을 놔두고 용접공을 불러 돈을 주며 일을 시켰다. 곳곳에서 의견이 부딪쳤다. 서로 믿지 않으니 혼자 결정하고 또 다투고….

좁은 공간, 문화 차이, 무시하고 싶어도 날마다 부딪치고 함께 일해야 하는 괴로움은 관계와 믿음을 흔든다. 완벽한 사람, 완벽한 사역은 없다고 알지만 직접 겪으며 견뎌 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랭던 길키는 <산둥수용소>(새물결플러스)에서 폐쇄된 공간에서 사람의 본성이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로고스호도 같은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보내셨다. 다투면서 문제가 드러나게 하셨고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셨다. 항상 사랑하고 오래 참고 다투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연합했다.

로고스는 훈련선이다. 다투고 미워하고 때론 싸우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좋았다.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배에서 대단한 사역을 했다면 '대단하다' 하며 책을 덮었을 것이다.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 이름으로 죄와 허물을 덮고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5) 구조 / 1980년 로고스는 남중국해에서 8미터 정도 되는 고기잡이배에 빼곡히 타고 있는 53명의 피난민을 구해 준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기 영토에 난민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도 구해 준다. 난민 사역 단체조차 음식과 구호품을 주는 정도로만 돕고 배에는 절대로 태우지 말라고 했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하나님 명령을 더 귀하게 여기고 말씀대로 행했다. 이틀 뒤에 베트남 해역에서 물과 식량이 떨어져 이틀이나 굶은 베트남 보트피플 40명을 또 구해 준다. 승선 정원을 훌쩍 넘기지만 먹이고 입히며 최선을 다해 돕는다. 배가 정박한 태국, 배가 소속된 싱가포르 모두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아 두 달이나 배에 머무른 끝에 영국으로 가게 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지만 우정을 나누며 하나님을 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의미

로고스호는 연결한다. 사역을 책과 연결한다. 책과 사람을 연결한다. 한 곳의 필요를 다른 곳에서 공급하고 여기서 넘치는 것을 저기 부족한 곳에 연결한다. 이런 배가 있으면 좋겠다. 교회가 로고스호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사람들을 돕고, 배에 탄 사람이 함께 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고스호는 암초에 걸려 좌초할 때도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우린 모두 배를 타고 있다. 만나는 사람, 활동하는 곳 모두 다르지만 부딪치고 문제를 만나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푯대를 향해 나아간다. 이 책은 이런 과정을 잘 정리해서 보여 준다. 서점 이야기를 읽으면 그냥 흐뭇했고, 전도 이야기를 읽으면 선교사 위인전과 선교 보고를 듣는 것 같았다. 난민을 구하고 구호물자를 나르는 이야기는 긴장감이 넘쳤다. 기가 막히게 시간 맞춰 일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놀랐다.

한국교회가 로고스호 같으면 좋겠다. 다툼이 있고 위험도 있지만 연합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로고스호는 좌초했지만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모두 살아 나왔다. 발에 깁스를 한 사역자도 무사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비상 탈출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선장이 끝까지 배에 남아 형제자매를 도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선원들이 로고스호 선원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계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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