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의 최대 관심 지역은 단연 '수도권'이다. 이 중 경기도지사의 유력한 후보들은 모두 개신교인이다. 특히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의원은 같은 교회의 집사와 장로이다.

이들과 경합을 벌이는 후보 중에 목회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통합진보당 소속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온 기호 3번, 백현종 후보다. 2004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조일래 총회장)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백 후보가 선거에 출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를 위해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백현종 목사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연이은 두 번째 정치 출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2011년 12월 자신이 개척해 담임하던 나눔과섬김의교회를 사임했다. 백 후보는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교회를 떠났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돌봐야 할 목회자가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떠나 정계에 진출하려는 까닭이 무엇일까. 과거 극우 이념을 대변하면서 선거에 출마한 이들은 더러 있었지만, 백 후보처럼 진보 정당 후보로 선거에 나선 목회자는 최근 거의 없었다. 백 후보가 내건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박근혜 독재 심판'이다.

5월 15일 경기도 부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교(서울신대)에서 백 후보를 만났다. 선거에 뛰어든 만큼 기자와 만나기로 한 시각에도 학내 사람들과 인사하고 명함 돌리는 데 정신이 없었다. 이대로 두면 인터뷰가 안될 것 같아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다소 한산한 도서관에 자리했다. 백 후보는 미리 준비한 답변지를 들고 정치 출마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신학과 졸업 후 공장으로…<전태일 평전>이 세상 보는 눈 바꿔

백 후보는 어릴 때부터 목사 되는 게 꿈이었다. 강단에 올라 사람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1990년 대전에서 올라와 서울신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1997년 신학과를 졸업하고 그가 향한 곳은 교회가 아니었다. 경기도 부천의 원미동 춘의공단으로 향했다. 거기서 헤어스프레이, 무스 등의 헤어 제품을 포장하는 일을 시작했다.

"졸업하고 춘의공단에 간 것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노동 현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매일 가정 예배를 하는 독실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다 학교 앞에서 시위를 접했는데, 거칠고 폭력적인 현장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근본적인 것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대학교 신입생 때 접한 <전태일 평전>은 삶과 사회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하게 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를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불의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 횡행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일깨워 줬다. 대학 선배가 꼬드겨 학생 운동에 참가한 것도 계기가 됐다. 이후 '총장 직선제' 등 학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졸업 후 춘의공단에서도 지역 청년들과 함께 지내며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 등을 벌였다."

노동 현장에서 접한 가난의 문제는 개인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 사회의 불의한 구조적인 모순이 원인이었다. 이것 때문에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그것은 어둡고 낮은 곳을 향한 교회의 무관심이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예배에 잘 나오면 복을 받고 천국에 간다는 내용의 메시지만 성황을 이뤘다. 교인들과 교제하고 삶을 나누는 것은 늘 즐거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 경기도 부천에 있는 서울신대에서 백현종 후보를 만났다. 따뜻한 봄 날씨에 교정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었다. 서울신대는 백 후보에게 있어 학문의 본산이다. 학부와 석사 과정을 이곳에서 이수했고, 현재는 유석성 총장의 지도를 받아 기독교윤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이웃과 깨어진 관계 회복할 길은 '나눔'과 '섬김'"

목회자가 되는 길을 떠났던 백 후보는 1999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인턴으로 시민 단체가 연대해 만든 국정감사 모니터단의 사무국 간사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됐다. 춘의공단에서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무산되고 해고됐다.

"3개월 기윤실 인턴 활동을 마치고 기도원에 갔다. 어떻게 하면 사회 변혁 운동을 할 수 있을지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목회 현장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노동 현장에 있었던 것은 예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한 것이었다는 고백이 터져 나왔다. 기도원을 내려와 대학원 진학과 함께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다."

2002년 대학 후배들과 함께 원미동에 나눔과섬김의교회를 개척했다. 원미동은 전형적인 구도시로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노후 주택이 많은 곳으로, 1980년대 말 양귀자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무대로 그려지기도 했다. 백 후보는 교회에 사회복지위원회를 만들어 홀몸 노인들을 위한 무료 반찬 봉사,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 사역을 했고, 2005년에는 사단법인 나눔과섬김을 설립해 사회복지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의 의미를 관계의 깨어짐으로 이해한다. 주님의 십자가는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자기 고백과 기도, 예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행위라면 나와 너, 그리고 이웃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나눔과 섬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목회 내려놓고 출마

목회와 사회복지 사업을 병행하던 백 후보가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문을 두드린 것은 2012년 제19대 총선이다. 백 후보는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부천 지역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찾아와 뉴타운 재개발로 쫓겨나는 서민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했다. 결국 재개발을 막기 위해 2011년 12월 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올해 6·4 지방선거 경기도지사에 또 다시 출마했다.

▲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은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책임의 영역이라고 백 후보는 강조했다. 비도덕적인 사회 속에 있기 때문에 올바른 사회 구조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격려와 우려가 반반이었다. 우려하는 이들은 백 후보에게 목회에 열심을 내야지 세상의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충고했다. 흔히 정치는 세속적인 영역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백 후보는 목회와 정치를 양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교회와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책임의 영역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라고 명하셨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와 행위를 규정하는 선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자와 농민들이 비참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기독교 윤리학에서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언급하며 사회 구조와 제도,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개인의 윤리적 삶만으로는 어렵다. 제도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것부터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윤리적 삶이 절실하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탄식한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남북 분단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탐욕스러운 자본은 자신의 몸집을 더 키우기 위해 끝없이 가난한 이들의 것을 빼앗는다. 권력자들은 거짓을 조장하고 침묵을 강요한다. 모두 불의한 정권 때문이다. 그래서 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백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현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백 후보는 현실 정치를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기 직전"이라고 평가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아이가 희생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 독재를 심판하고 민주주를 회복하는 것이 이번 선거의 본질이다"고 강조했다.

선거 공약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한·중 FTA 및 쌀 시장 개방 저지 △물·전기·가스 쿼터제 도입 △공공 의료 강화 △무상 대중교통 실현 등을 담았다. 여기에 통일을 위해 남북 접경지대인 경기도에 '평화 특구'를 만들어 개성공단 같이 남북 경제협력의 실질적인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정책을 추가했다.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나온 백 후보의 지지율은 5% 안팎이다. 당선될 확률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백 후모는 "끝까지 선거를 완주하겠다"고 말했다.

▲ 백 후보는 지난 3월 27일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독재 심판'을 전면에 내세웠다. 백 후보는 "이번 선거의 목적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재와 무능을 심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현종 후보 블로그 갈무리)

백 후보는 후보자 등록과 오후에 예정된 언론 매체와의 기자회견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뷰가 지체되어 예상 시간을 초과했다. 수행 보좌관은 좀 전부터 계속 시계만 보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백 후보는 당연히 있다며 웃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부정의한 권력자들과 탐욕스러운 부자들에 저항해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것은 책임 회피입니다. 송파구 자살 사건,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 최근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무관심과 침묵이 만들어 낸 끔찍한 비극입니다. 부정의한 권력자들과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향해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를 말해야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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