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화곡동에 있는 은성교회는 8년 전 20억 원을 가지고 600억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하다 파산했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지만 담임목사와 당회의 전결로 건축은 시작됐다. 교회 건물과 땅이 경매로 넘어간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교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담임목사를 옹호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로 나뉜 교회는 첨예한 갈등을 겪었고, 대다수 교인은 교회를 떠났다.

지난해 서울시 서초구에 초대형 예배당을 지어 입당한 사랑의교회도 건축을 둘러싼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4년 전 교회 예산의 4배 가까운 재정이 소요되는 공사를 전 교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추진해 논란을 일으켰고, 건축을 반대하는 일부 교인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마찰을 빚기도 했다. 건축 과정과 재정 집행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점은 교회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교회개혁실천연대(공동대표 방인성·박종운·백종국·윤경아)가 지난 1월 3일 발표한 활동 보고서를 보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건축과 관련된 문제로 상담한 교회는 100곳이 넘는다. 한 해 평균 10개 교회의 교인들이 건축 문제로 개혁연대를 찾았고, 이들 교회의 대부분은 교인들의 참여와 동의 없이 막대한 예산을 소요하는 건축을 강행하다 갈등을 빚었다.

예배당 증축 대신 '빚 없는 교회' 선택한 수원성교회

한국교회의 많은 교회가 건축 문제로 분쟁을 겪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방안과 소통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노력으로 건축이 중단된 교회가 있다.

▲ 수원시 율전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수원성교회는 작년 말부터 예배당 증축을 추진했다. 매주 11시 3부 예배에 300여 명의 교인이 지하에서 방송으로 예배하고, 교회학교 분반 공부실과 교역자 사무실, 성가대실 공간이 부족했다. 당회는 올해 2월 23일 교회 옆 건물을 헐고 예배당을 확장하기로 했다. (수원성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수원 율전동에 있는 수원성교회(안광수 목사)는 작년 말부터 당회가 중심이 되어 예배당 증축을 추진해 왔다. 매주 2700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데, 11시 3부 예배 때 300여 명의 교인이 자리가 없어 지하에서 모니터로 예배하기 때문이다. 교회 학교 분반 공부실과 교역자 사무실, 성가대실 공간이 부족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하지만 교회 내 사회 선교를 담당하는 사회환경선교부 부원들을 포함한 40여 명의 교인은 교회 증축을 반대하며 '녹색교회공동체'라는 명칭의 대안을 만들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단 1시간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회당을 증축하는 것보다 교인들이 기존 1200석의 예배당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진단했다. 사람이 몰리는 11시 3부 예배를 없애고 10시와 12시로 예배 시간을 조정하면 공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밖에도 교회 앞 주차장을 녹지 공원으로 탈바꿈하자고 제안했다. 공원 안에 비영리단체인 생활협동조합을 유치하고, 교회 내 카페를 공원으로 이전해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카페를 이전하고 남은 공간은 교역자실과 성가대실로 활용하고, 교회학교 분반 공부실은 각 교육 부서의 체제를 개편해 조율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증축 예산으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24억 원의 부채를 상환해 '빚 없는 교회'를 만들자며, 녹색교회공동체 방안을 당회에 제시하고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를 요청했다.

교인들의 제안으로 당회는 3월 9일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서 증축을 찬성하는 교인과 반대하는 교인들은 2시간 넘도록 교회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논의했다. 공청회 참석자 중 92명이 응한 설문 조사에서 85명이 증축에 반대했다.

공청회를 통해 교인들의 반대 의견을 확인한 당회는 3월 23일 공동의회를 열고 증축안을 상정해 찬반을 물었다. 투표 결과 많은 교인이 예배당 증축보다 '빚 없는 교회'를 선호했다. 교회는 건축안을 폐기하고, 공간 활용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삼일교회, 투명한 절차·소통 요구에 건축 전면 재고

4년 전 전임 목사의 성추행으로 내홍을 겪었던 삼일교회(송태근 목사)도 150억 원 예산의 교육관 건축을 전면 재고하기로 했다.

▲ 삼일교회는 교육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용산경찰서 뒤편에 있는 구 예배당인 A관을 교육관으로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진은 현재 교회 예배당인 B관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삼일교회가 교육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관 건축을 추진한 것은 작년이다. 당회는 건축위원회를 구성해 교회 A관을 지하 3층, 지상 5층의 교육 문화 공간으로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A관 옆 주택을 16억 원에 매입했다. 문제는 제직회의 승인을 얻지 않고 재정을 집행했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1일 제직회를 열고 사후 추인을 받았지만, 일부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건축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당회는 올해 2월 23일 건축 설명회를 열고 교육관의 필요성과 그간의 건축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일부 교인들은 건축위원회가 제직회의 승인도 없이 주변 시세보다 2배 이상의 돈을 들여 주택을 매입한 과정을 따지며, 합리적인 절차와 소통에 의문을 던졌다. 또 현재 A관은 차량 진입로가 좁고 복잡해 아이들을 위한 교육관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하며,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명회 이후 교육관 건축은 교회의 핵심 쟁점이 됐다. 삼일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A관을 교육관으로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과 목회자와 장로들이 권위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김 아무개 집사는 설명회에서 이 아무개 장로가 당회를 사주로, 교인을 종업원에 비유한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며, 목회자와 장로들이 권위 의식과 허세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 많은 교인이 댓글로 호응했고, 장로들의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삼일교회 장로들은 3월 21일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설명회 때 적절하지 못한 비유를 사용한 것을 사과하고, 낡은 관행들을 고쳐 나가겠다고 했다. 송태근 목사도 3월 31일 글을 올려 A관 재건축을 전면 재고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전문가들을 포함한 새로운 팀을 구성해 다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소통 통해 합리적인 대안 찾는 두 교회

건축을 두고 큰 갈등으로 번질 뻔했던 두 교회는, 소통을 통해 다른 대안을 찾기로 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교회 모두 당회의 권위를 의식해 건축을 강행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당회의 결정이 한 번 뒤집어지면, 계속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담임목사가 이들을 설득했다. 안광수 목사는 교인들의 반대 의견이 있을 때 전체 교인들에게 의사를 묻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 공동의회를 열자고 제안했고, 건축보다 교회 본연의 사역에 더 힘쓰라는 교인들의 의사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 송태근 목사는 3월 31일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교육관 건축을 전면 재고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당회가 수차례 모여 격론을 벌이면서 투표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건축을 찬성하는 교인이 많아 쉽게 이길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붙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반대 의견을 받아들여 전면 재고하기로 했다고 했다. (삼일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송태근 목사도 3월 31일 교회 홈페이지 올린 글에서 당회가 수차례 모여 격론을 벌이면서 투표로 가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건축을 찬성하는 교인이 많으니 이길 것이라는 공식이다. 하지만 송 목사는 그렇게 밀어붙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반대 의견을 받아들여 전면 재고할 수 있도록 의견을 부탁했다고 했다. 비록 진행하던 건축이 중단됐지만, 지금이라도 모든 교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더 큰 것을 얻었다고 했다.

교인들은 투명한 교회 만들기에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했다. 수원성교회 사회환경선교부 남 아무개 집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건축 공청회를 통해 공론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비본질이 가려지고 문제가 명확해졌다고 했다.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관행처럼 굳어 있는 소통 부재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삼일교회 김 아무개 집사도 많은 교인이 전임 목사의 성 문제로 아픔을 겪은 이후 투명하고 깨끗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관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보다 제대로 된 절차와 민주적인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당회가 건축을 강행하지 않고 반대 의견에 고개를 숙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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