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연 목사가 총신대학교 5대 총장 후보로 추천받았다. 12월 6일 총신총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전대웅 위원장)는 출사표를 던진 7명의 총장 후보를 2명으로 추렸다. 길 목사의 대항마는 총신대 평생교육원 소속으로 목회학을 가르치는 박수준 교수다.

총신대 재단이사회 전원과 운영이사회 임원 등 18명으로 구성한 총장후보추천위는 12월 5일과 6일 이틀간 7명의 후보를 면접했다. 추천위는 후보자들에게 △학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목회 현장과 동떨어졌다고 지적받는 총신 신학 교육을 변화시킬 계획이 있는가 등을 물었다. 길자연 목사는 230억 원을 모금하겠다고 했고, 박수준 교수는 40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자신했다. 두 사람 모두 총신 신학 커리큘럼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천위는 1인당 두 명의 후보를 기입하는 1인 2표제 방식으로 운영이사회에 후보 2인을 상정한다는 원칙을 세워 무기명 비밀투표를 진행했고, 두 사람을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 예장합동 총회장, 한기총 대표회장 등을 역임한 길자연 목사는 이번 총신대 총장에 당선되면 교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셈이다. ⓒ마르투스 이명구

평양노회 소속인 길자연 목사는 예장합동은 물론 교계 정치권의 굵직한 인물이다. 1979년 왕성교회에 부임한 길 목사는 2012년 원로목사로 추대되면서 교회를 아들 길요나 목사에게 세습했다. 1998년 예장합동 83회 총회장에 오르면서부터 교단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3년, 2004년, 2011년 세 번에 걸쳐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내며 교단을 넘어서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6대 이사장, 칼빈대학교 3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신학교 요직에도 명함을 내밀었다. 요직을 두루 거친 길자연 목사는 이번에 총신대 총장에 당선되면 교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셈이다.

길 목사가 가는 곳마다 잡음이 일었다. 1997년 예장합동 부총회장 선거 때, 길 목사는 총대들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 이 일은 1998년 9월 <복음과 상황>에 '나는 고발한다 : 어느 교단 금권 선거에 대한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의 글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혼탁했던 97년 예장합동 선거, 그 중심엔 길자연 목사) 2010년 예장합동에서 한기총 대표회장 후보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금권 선거 논란에 휘말렸다. 2011년 칼빈대 총장 길 목사는 교원 임용 문제와 학교 기금 유용 등으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같은 해, 한기총은 길 목사의 대표회장 자격 문제로 파행을 겪었고, 결국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으로 나뉘었다.

박수준 교수는 길자연 목사에 비해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박 교수는 총신대, 총신대 신대원, 육군 군목 출신으로 서울 영생교회, 캐나다 밴쿠버중앙교회, 미국 복된소식교회 등에서 24년간 목회했다. 2007년 칼빈대 목회학 교수로 임용된 후 교목실장과 평생교육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총신대 평생교육원으로 옮겨 왔다. 박 교수 역시 평양노회 소속이다.

총장 후보 선출을 공정하게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던 총신대 학생들과 신대원생들은 후보 추천 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12월 10일 신대원 원우회는 성명을 발표해, 총장 선출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무너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총신 총장은 예비 목회자들이 모두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덕과 학식을 겸비해야 하는 사람인데, 현 후보들은 불명예스러운 과거 전적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거나,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나 경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신대원생들은 운영이사회가 후보 추천을 받을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해 달라며, 만일 운영이사회에서 후보 추천이 거부되면 다시 적합한 인사를 추천하되 금권선거 의혹을 받고 있는 후보를 반드시 제외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과정 없이 현재 추천된 후보들로 투표를 강행한다면 신대원생들은 수업 거부 및 등록 거부 등 강경한 행동에 나설 거라고 밝혔다.

12월 10일 총학생회를 비롯한 11개 학내 단체는 성명을 내고, 이번 추천위의 후보 추천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격렬한 학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추천된 인사가 있고, 총장에 준하는 경력이 전무함에도 뽑힌 인사가 있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선정 기준과 후보자들의 경력 사항을 온라인 및 오프라인을 통해 알려 달라"고 말했다. 12월 17일 열릴 운영이사회에서 총장 자격 기준을 세밀하게 명문화한 뒤, 배점표를 통해 후보자를 검증하고 그 자리에서 최종 후보를 확정하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은 이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현수막을 사당 캠퍼스에 걸었다.

요구 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학생들은 기도회 및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총학생회 주도로 12월 10일부터 총장 선거 당일인 17일까지 기도회를 연다. 1600여 명의 학생 중 현재까지 800여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이들은 학교 측이 요구 사항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학내 시위에 나설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 총신대 학생들은 후보 추천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현수막을 학내에 걸었다. ⓒ마르투스 이명구

추천위가 추천한 두 후보는 운영이사회에서 운영이사들이 후보 추천을 허락하면 투표로 선거를 치르게 된다. 당선을 위해서는 참석한 운영이사 2/3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1차 투표에서 당락을 가리지 못하면 3차 투표까지 진행하며, 4차 투표에서는 절반 이상만 표를 얻으면 당선된다.

운영이사들이 추천위가 추린 후보들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지난 8월 열린 운영이사회에서 일부 운영이사들은 후보 추천을 두고 운영이사를 거수기로 여기지 말라며 후보 추천 과정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를 고려해 운영이사회는 총장 선출을 위한 시행세칙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11월 8일 추천위는 총장 선거를 앞두고 규칙을 새로 만들 경우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며 세칙 제정을 보류했다. 한 운영이사는 "추천위의 후보 검증 과정이 불투명했다고 본다. 추천위원들은 두 후보의 자격을 문제없다고 판단했지만, 운영이사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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