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감리교 중강당에서 '이현주 목사 고희 출판 축하회'가 있었다. '신앙과 지성사' 출판사에서 고희 잔치를 준비했나 보다. 잔치는 한마당 놀이 축제 같았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덩실덩실 춤추며 한바탕 웃었다. 나는 모처럼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린 것 같은 풍성함으로 돌아왔다. 잠시 소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지라 거짓이 없어 더욱 향기로웠다.

최병천 장로의 사회와 기독예술단의 예굿으로 사물놀이가 시작되었다. 아담한 강당에는 풍악이 울리며 잔치는 무르익었다. 이곳 분위기상 찬양이 우선인데 사물놀이가 팡파르를 날리며 모두를 깨웠다.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요즘 하나님께서 잠시 주무시는 것 같아서 풍악 소리로 먼저 하나님을 깨우고 있어요."

의미 있는 말로 다가오며 모두가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잠시 후 조언정 목사와 김미영 사모의 구성진 진도아리랑이 흥을 돋우며 예배는 시작되었다.

▲ 이현주 목사. (사진 제공 국인남)

어머니의 사랑

그곳에는 달변의 설교도 거룩한 찬양단도 없었다. 그러나 산제사처럼 모든 절차는 살아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서는 삼 남매 이야기였다. 삼 남매가 지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나눈 대화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헐벗고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의 우주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삼 남매는 스스로 움직이는 교회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참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 역할을 삶 속에 서 실천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신 마당에 홀어머니 혼자서 자녀들을 키우기에는 너무나 가난했던 시대였다. 오죽 했으면 셋 중 하나를 고아원으로 보내야 했을까. 이덕주 교수는 그 당시 셋째 아들인 자신이 고아원으로 가야 할 처지임을 깨닫고 슬퍼했다.

또한 고명딸이신 이정희 장로를 남의 집 식모로 보낼 뻔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그 딸을 악착같이 가르쳤다. 뭇사람들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까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길 안내를 감당하셨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가족 공동체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분명 그 어머니는 살아 있는 교회, 살아 계신 하나님 역할을 잠시 감당하신 분이다. 갈라진 대지의 가난한 어머니 역할로 잠시 그들 곁에 머물렀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고통과 아픔이 있는 절박한 곳에서 늘 함께하셨다. 그리고 한 여인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 주셨다.

이현주 목사의 사랑

이현주 목사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엉뚱했다. 동생들이 형의 일그러진 과거사를 논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기억이 안나요." 마치 청문회장에서 권세를 쥔 자들이 대답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모두가 청문회 하는 것 같다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 삼 남매 토크쇼. 왼쪽부터 송대선 목사, 이현주 목사, 이정희 장로, 이덕주 교수. (사진 제공 국인남)

이렇듯 그의 천진한 행동들이 그를 작가의 길로 가게 했는지 모른다. 이 목사의 글은 삶의 체험에서 나온 글이기에 더욱 가슴에 파고든다. 긴 세월 삶을 당당하게 살았고 불의와 억압이 있는 곳을 모른 체하지 않았기에 따르는 길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현주 목사가 원하지 않아도 이미 후배들의 이정표가 되셨기에 말이다.

김기석 목사는 헌정사 중에서 "우리 후배들이 이 목사님보다 더 큰 영성으로 남는 것이 이 목사님께 대한 최고의 예우"라 말했다. 이렇게 이날 모인 사람들도 거반 그의 삶과 사상을 존경하고 아끼는 사람들이다. 필자 또한 이현주 목사님을 책으로만 만났기에 언젠가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 후배들이 드리는 찬송. (사진 제공 국인남)

원래 필력이 강한 사람은 감성이 탁월하다. 그래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기 쉽다. 또한 사랑과 불의에 도전하고 사랑과 권력에 패하며 상처도 크다. 그만큼 세상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우주 공간에 갇혀 있었다. 아직도 사랑에 대한 고뇌가 긴 터널처럼 어둡고 깊어만 보였다.

그가 사랑 안에 머물면 금세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평생 사랑을 알고 싶었지만, 사랑은 공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스스로 햇볕 같은 사랑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자신은 빛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삶 속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스스로 터널 속으로 들어가 은밀한 곳으로 숨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전처가 자신에게 마지막 남기고 간 말을 가슴에 담고 그 문제를 풀고 싶어 했다.

"나 많이 섭섭했소. 나는 당신이 전부였는데 당신은 나에게 전부가 되지 않았소"란 전처의 말을 새기며 다시 창조주가 기회를 주신다면 "한 여자의 전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꼭 경험해 보고 싶다" 했다.

지금 그가 사랑이 얼마나 애매하고 어려우면 사랑이라는 공부를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

그렇다. 인간의 사랑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것이 사랑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스치는 바람이 될 수 있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 그 사랑이 잠시 평안과 만족을 주지만 세월과 함께 감정은 물이 마른 강바닥처럼 갈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이 무한하다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찾겠는가.

불안전한 인간의 사랑 사이에 하나님은 항상 그 사이에 앉아 계신다. 그분은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곳, 가난하고 아픔이 있는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피조물일 뿐이다.

잠시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도 자기만족에서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에로스 사랑이다. 에로스 사랑은 시 공간 안에서 잠시 머무는 정류장과 같다. 세월과 함께 서로가 느꼈던 집착과 감정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지만, 인간은 또다시 불안한 사랑 안으로 빠져든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나약한 한계선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을 다 모르고 갈 수밖에 없다. 사랑을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감히 하나님의 전부를 안다는 것과 같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과 그 무한한 아가페적인 사랑을 다 알 수 있겠는가. 평생 모르고 헤매고 사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그가 내려놓은 연약함 안에 하나님은 당신이 하실 일, 아가페적인 사랑을 행하고 계실 것이다.

어느 사이 긴 시간도 지났다. 모든 순서가 끝나자 사물놀이 패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몰아서 식사 장소로 안내했다. 쿵덕궁 장구 소리와 뎅뎅 울리는 징 소리가 어우러지며 밤하늘을 깨웠다. 괭과리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하늘의 우렛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넘어져도 절망 속에서도 그래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만이 나에게로 오는 길이요 진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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